"군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지만 저의 현재 모습은 그야말로 군대 덕분입니다." 지난 10일 GE에너지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으로 승진한 최치훈 사장(49)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외국생활을 했다. 군인 출신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고 최경록 전 교통부장관)를 따라 브라질 영국 미국 등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군 면제를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지만 1982년 18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건 바로 군대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한국인이라면 군대에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군 장교로 3년6개월을 복무했죠.군 제대 후 당시 한국의 전투기 사업(KFX)에 사활을 건 GE 등 미국 군수 업체들은 외국에서 교육받고 경영학석사(MBA)를 딴 한국인 공군 장교 출신을 찾았고 당시 요건을 갖춘 사람은 전 세계에 저 밖에 없었습니다."
군대 덕분에 GE에 입사한 최 사장은 2004년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GE의 오피서(Officer·한국 기업에선 등기이사 정도의 최고경영진으로 전세계 GE에 170여명에 불과)로 선임되기까지 한 번도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흔한 영어 이름 하나 짓지 않았고 GE의 최고 경영진임에도 불구하고 비자 문제로 미국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가능성이 보이는 인재에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도전적인 일을 맡기는 GE의 인사 시스템 덕분에 오피서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중앙일보 권혁주]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미국 GE에 한국인으론 처음 '오피서(officer)'라고 불리는 최고위 임원이 탄생했다. 최치훈(49.사진) GE에너지 아시아.태평양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발전 장비 사업 등을 하는 미 GE에너지 본사에서 영업을 맡다가 지난 10일 아.태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피서는 제프리 이멜트 회장(CEO) 바로 아래 직급으로 전세계 GE 사업장에 170여명이 있지만 아시아인은 10명 뿐이다.
일본 도쿄의 아.태 본부 부임 직전 한국에 들른 그는 15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운이 좋았지만 결코 쉽게 된 건 아니다"러고 말했다."GE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내게 맡겨가면서 능력을 계속 시험한 게 나의 운이었다"는 설명이다.
최 사장은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1967년 초등학교 2년 때부터 멕시코.영국.미국 등지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대학과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군 장교로 3년간 복무했다. 그는 "군대생활은 공백이 아니었고 오히려 군대가 인연이 돼 GE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사업과 관련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인이면서 미 MBA 출신 중에 한국 공군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자신을 뽑게 됐다는 얘기다. 그의 한국말 구사능력은 어려운 한글단어를 쓸 정도로 완벽했다.
회사가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힘겨운 일을 맡겼을 때는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98년 아.태 에너지 영업 담당(전무급)으로 발령을 내더군요. 외환위기로 아시아 경제가 최악인데다가, 항공기 사업부에서 넘어왔다고 직원들이 상사로 인정해 주지도 않고…. 사표를 낼까 하다가 1년간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실적이 올라가자 비로소 저를 상사로 대접하더군요."
이에 앞서 93년엔 GE 본사에서 "시민권이든 영주권이든 원하는 걸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엄연한 한국인이고 언젠가 한국에서 살겠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고 했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한국국적으로 미국 비자를 받아 왔다갔다 하다가 2004년 초엔 미 입국 심사대에서 문제가 생겨 서울로 되돌아 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영주권을 얻을 생각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두 살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한 아들(고교 1년) 도 한국군 복무를 의무로 여긴다고 그는 말했다.
"GE는 석탄을 때면서도 공해 물질은 적게 뿜어내는 기술(청정석탄기술)을 갖고 있어요. GE가 두산중공업에 발전 장비 제조를 많이 맡기듯이 청정석탄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함께 할 한국 기업을 찾아보겠습니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최치훈(49·사진)씨가 지난 10일자로 GE에너지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맡게 됐습니다. 고유가와 친환경이란 세계적인 흐름에 부합하는 에너지를 개발하고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개척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거죠. 그는 현재 GE의 경영진(Officer· 사장)의 일원입니다. ‘오피서’는 32만명의 GE그룹을 이끌어 가는 부문별 최고경영자들로 전 세계에 걸쳐 170여명에 불과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그가 처음이며 유일하죠. 성공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그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국으로 나가 미국에서 MBA까지 마쳤지만 그는 공군장교로 3년3개월을 복무했습니다. 국적을 포기하지도, 6개월짜리 석사장교를 선택하지도 않았죠. 남들은 그의 선택을 비웃었지만, 군 경력은 그가 GE에 입사하는 토대가 됐습니다. 88년 한국 전투기사업에 뛰어든 GE가 한국인 중 ‘외국에서 공부한 공군장교 출신’을 찾았을 때 그는 자격요건을 갖춘 유일한 후보였거든요.
역경 앞에서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잭 웰치 전(前) 회장의 눈에 든 그에게는 98년 ‘GE발전서비스 사업부문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과장에서 전무로 승진한 셈이죠. 그렇지만 당시 아시아 시장은 외환위기로 망가져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하더군요. 그 결과 회사는 2년 만에 2배로 성장했습니다.
결단력과 모험정신도 그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잘 나가던 2000년 회사 내의 입지와 수 백만달러의 스톡옵션을 스스로 포기하고 최 사장은 인터넷 회사로 옮겼죠.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GE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어떤가요. 역시 성공의 비결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알고 있는 상식을 실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GE 에너지 최치훈 아태지역본부장|작성자 로사
[CEO & CEO] 최치훈 삼성전자 디지털프린팅사업부 사장매일경제 09/20 16:13
최치훈 삼성전자(주가,차트) 디지털프린팅사업부장(사장)에게 지난 17일은 뜻깊은 날이었다. GE에서 삼성으로 옮긴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삼성 서초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 2년 동안의 소감을 물었다. "잊고 지냈는데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네요"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최 사장에게는 삼성 입사는 이번이 두 번째. 공군장교 생활을 마치고 1985년 첫 사회생활을 삼성에서 시작해 4개월가량 일했다. 24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한 셈이다.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프린팅사업부를 맡은 최 사장은 적자이던 이 사업부를 취임 8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우선 국내 프린터 시장의 삼성 점유율부터 끌어올렸다. 작년 상반기 49.7%(수량 기준)이던 것을 1년 만에 58.2%로 높인 것이다. 올 2분기에는 흑백 레이저 복합기에서 삼성전자(주가,차트)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23.4%(세계 1위)까지 높였다. 이 같은 실적은 글로벌 프린터 시장이 작년에 5%, 올해 들어 10% 이상 줄어든 가운데 달성한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GE 재직 시절 최 사장에게는 '최초' '초고속'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1988년 GE에 입사해 2004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직원 32만명 그룹을 이끄는 170명의 'GE 경영자(GE Officer)' 중 한 명으로 뽑혔으며 2006년에는 GE에너지 아시아ㆍ태평양(주가,차트) 지역 사장으로 승진했다. GE는 항공기 엔진사업부로 입사한 그에게 인공위성, 선박엔진 등 해상 분야, 원자력발전 사업 등 20년간 5개 사업부문을 거치도록 했다. 공대 출신도 어렵다는 사업 분야에서 경제학도인 그가 승승장구한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GE에 있을 때 자신을 아껴줬던 존 라이스 GE 부회장이 내린 평가를 들려줬다. "최 사장은 두 가지 점에서 남들과 달랐다. 우선 리스크를 겁내지 않았고 새로운 임무를 맡기면 계속 배우면서 일을 처리했다." 정작 최 사장의 얘기는 달랐다. "모든 인간은 리스크를 싫어한다. 나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리스크를 감수했다." "미국인들은 상식적 범위에서 생각해본 후 어렵다고 판단되면 "못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한국인인 나는 일단 "해보겠다"고 말하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헤쳐 나갔다." 약 10년 전 최 사장은 10억달러짜리 딜(Deal)을 따내지 못했다. 많은 사람은 '최치훈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잭 웰치 당시 GE 회장은 그를 홍콩 법인 책임자로 승진 발령했다. 자신은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윗사람들은 기대 이상의 일을 해냈다고 평가해 더 큰일을 맡겼다. 최고경영자는 최 사장의 책임감 있는 주인의식을 높이 산 것이다. 최 사장은 남의 탓을 하는 직원을 용서하지 않는다. 만일 마케팅팀이 상품 판매가 저조한 이유로 "요즘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제품에 대한 개발이 안됐거나 특정 스펙(제품)의 생산물량이 너무 적었다"고 말한다면 꾸지람을 듣기 십상이다. 비록 마케팅팀 소속이라도 개발팀이나 생산팀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일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도와주라는 것이 최 사장이 요구하는 주인의식의 핵심이다. 외국 회사 근무 후 국내 기업 전직은 힘들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짧게나마 삼성에 근무했지만 삼성DNA가 남아 있었고, 신입사원 연수 당시 들었던 '인재제일'과 '사업보국'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홉 살 때부터 멕시코 영국 미국을 거치며 길러진 적응력도 한몫했으리라.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치고는 한국어가 유창해 비결을 물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꺼려 대학 다닐 때는 수업시간에 발표가 적은 경제학을 택했을 정도다. 그러나 회사에선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앞에 서야 했다. 2004년 초 GE 핵심 간부 500명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한 달간 연습했다." 지독한 연습벌레인 최 사장의 이런 태도는 어릴적 가정환경과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의 선친은 육군 참모총장과 교통부 장관을 지낸 고(故) 최경록 장군인데 최 사장은 두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아버지가 외국에 장기간 체류하는 바람에 내 기억으로는 일곱 살 때 아버지 얼굴을 처음 봤다. 당시 내가 문을 열고 곧바로 집밖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본 아버지는 혹시 차량이 지나가는지 좌우를 살핀 후에 나가는 연습을 반복하도록 명령했다. 이 훈련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했다." 외국에서도 교육은 계속됐다. "외국 대사들을 만나면 나에게 반드시 "How do you do, Sir"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깜박 잊고 ""How do you do"라고만 했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세우고 내리도록 했다. 'Sir'를 안 붙인 대가로 나와 형은 집까지 7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인터뷰 말미에 요즘 그의 관심사를 물었다. 주저하지 않고 "삼성프린터를 2013년까지 세계 선두 주자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재 잘하고 있는 B2C 분야에서는 더욱 잘하고, B2B 부분은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부문에서는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삼성 프린터가 선두권인데 앞으로 1~2년 안에 이 부문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하고, B2B(기업 간 거래) 분야에서는 3년 안에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최 사장이 쓸 또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He is … △1957년생 △미국 터프츠대 경제학과 △조지워싱턴대 MBA △삼성전자 해외본부 비디오수출부 △GE항공기 엔진 △GE파워시스템 한국지사장 △GE파워시스템 서비스 부문 영업총괄 사장 △GE에너지 아ㆍ태 지역 사장 △삼성전자 CEO 보좌역(2007년 9월) △삼성전자 디지털프린팅사업부장 사장(2008년 5월~현재) [김대영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바일로 읽는 매일경제 '65+NATE/MagicN/Ez-I 버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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