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 집중하여 성공한 기업 사례
한 우물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한 우물 경영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성공할 지라도 초우량 기업의 반열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우물 경영의 함정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2005년 3월 한국상장사협의회의 자료에 의하면 국내 상장 및 등록 기업 중 38개 기업이 1981년부터 2004년까지 24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흑자 배당을 계속 해왔다고 한다. 특히 이 결과에서 주목 할 사항은 이들 기업들 중 상당수가 한 가지 제품군에 주력하는 한 우물 경영을 해왔다는 점이다.
IMF 이후, 주력 제품군에 집중하는 한 우물 경영은 줄곧 칭송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면면을 자세히 보면 한 우물 경영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설립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연 매출 5,000억원 이하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이 대다수이며, 쇠퇴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기업들도 상당수이다. 즉, 수십 년 동안 흑자 경영을 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취약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우물 경영의 신화
사실 한 우물 경영은 1980년대 미국 기업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핵심 사업에 집중하던 일본 기업을 배우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 미국 증권 시장은 웨스팅 하우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GE, RJR 나비스코 등 복합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GM의 경우도 당시에는 가정용 기기로부터 굴삭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강한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주력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한 기업들만이 성공적으로 경쟁을 이겨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멕킨지의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맨은 그들의 저서 ‘In Search of Excellence’에서 당시 초우량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고, 기업들에게 주력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 속에서 웨스팅 하우스는 미디어 그룹인 CBS로 환골탈태했고,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반도체 사업에만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주식 시장에서 단일 업종에만 종사하는 업체 비중이 1979년 38%에서 1988년에는 58%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기업 환경의 변화와 우물의 함정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우물 경영의 신화는 빛을 잃어가고 있다. ‘In Search of Excellence’에서 주요 사례로 다루어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43개 우량 기업들 중, 30%가 넘는 14개 기업이 10년도 채 되지 않아 재정적으로 대단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비즈니스위크가 분석한 그 이유는 변화에 대한 반응과 대응의 실패였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 소매 전문 업체인 시어스가 몰락하고, 할인 유통의 기린아 K마트가 무너졌다. 필름 시장의 강자 이스트만
코닥, 즉석 카메라로 유명한 폴라로이드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고 한다. 미국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록 완구의 대명사인
덴마크 기업 레고는 1998년 이후 심각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2004년에는 자기자본수익률 (ROE) -46.3%라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산업 환경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우물 경영의 신념이 기업의 잘못된 대응을 이끌기 때문이다.
신생 기업의 경우에는 당연히 핵심 제품군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생 기업이 진출하는 산업은 보통 신흥 산업인 경우가 많고, 핵심 성공 요소가 만들어지는 성장기 산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즉, 산업 자체가 경계가 확실하고 그 자체로 성장하는 시기에는 자원을
집중하여 한 우물 경영을 하는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창업 이후, 뛰어난 경쟁 전략을 통해 전문 기업으로서 입지를 굳힌 성숙 기업에서 발생한다. 이 시기에는 경쟁 전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을 유지시켜 주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특히 카메라, 비디오, PC등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드는 산업이 많아지고, 규격화된 산업 보다는 산업간 컨버전스가 일상화된 지금 시점에서는 기존의 성공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신 수종 사업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이를 통해 성장을 지속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우물 경영에 익숙한 많은 기업들은 주력 제품군 이외의 사업에 둔감하고, 자사 역량에 대한 확신으로 산업간 제휴를 무시하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기존의 핵심 사업을 버리고 과감한 변신을 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소매 기업의 최강자 시어스는 할인점 시장을 철저히 무시했으며, 폴라로이드는 디지털 카메라의 도래를 먼저 인지했지만 자사 기술에 대한 자만심으로 모든 것을 혼자 개발하려다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한 우물 함정을 탈출하는 방법
이처럼 한 우물 경영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은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요구되는 전략 변화를 거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어떻게 한 우물 경영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전문 기업으로 우뚝 선 이후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성장하는 선진 기업의 사례를 통해 그 방법들을 알아보자.
● 우물을 더 넓게 파라
주력 시장과 제품군을 한정하는 것은 산업의 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산업간 컨버전스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스스로 올가미를 씌우는 자승자박의 행위이다.
선도적인 한 우물 경영 기업들은 편협한 사고를 버리고 자사의 사업범위를 기존의 산업분류 체계가 아닌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로 재정의하고 있다. 즉, 사업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허물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회장인 하워드 슐츠는 자신이 커피 사업에 종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커피를 포함해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문화를 판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고 출판업에 진출했으며, 비슷한 이유로 최근에는 HP와 합작으로 음원 사업에도 진출했다. 이러한 소비자 관찰을 통해 커피 브랜드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승화 시킨 스타벅스의 시장 확대 전략은 식음료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비즈니스위크지 (2005년 8월 1일자)의 세계 혁신 기업 19위로 선정될 정도로 주목 받고있다.
애플 역시 자사의 사업 영역을 PC 및 OS 사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디지털 유목민 (Digital Nomad)에게 디지털 디바이스를 제공하는 “iLife”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애플은 온라인 음원 시장을 개척한 아이튠즈(iTunes), HDD형식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포드(iPod)를 개발해 엄청난 실적 개선을 이루어내고 있다.
목표 시장을 넓히는 것, 즉 우물을 좀 더 넓게 파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사업 범위를 좁게 한정하면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고, 심지어는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1등 아니면 2등을 차지하는 것을 모토로 내세워 큰 성공을 거둔 GE 조차도 대부분의 사업부가 1등이 되었을 때, 목표 시장의 크기를 인위적으로 10배 확대(10X)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1등을 추구하기 위해 시장을 좁게 정의하거나, 1등에 안주하여 시장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GE의 발전 사업부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배전 사업은 논외로 두고 대규모 발전 시장만을 목표로 시장 점유율 1등을 추구하는 폐단을 보였다.
아그파포토의 경우는 더 심하다. 14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이 회사는 2001년 최대 필름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 범위를 사진기의 보조품인 필름으로 한정한 결과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 확산에 따른 매출 격감으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 익숙한 핵심 역량을 활용하라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경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그 동안 쌓아온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전략이다.
세계 최대의 PC 제조 업체인 델은 자사의 핵심 역량인 원가 관리 역량을 십분 활용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델은 2003년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를 떼어내고, 조립 PC를 통해 쌓은 공급사슬관리 역량을 확대 적용해 PC에서 프린터, 이제는 LCD TV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캐논 역시 핵심역량에 기반 하여 사업을 확장했다. 카메라 사업을 통해 갈고 닦은 핵심 역량인 광학기술을 이용해 카메라에서 복사기로 다시 디지털 카메라로 성공적인 사업 확장을 이루었다.
반면, 소니는 자사의 핵심 역량에서 벗어난 컨텐츠 사업 진출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소니의 컨텐츠 사업 진출은 기존의 하드웨어 역량에 새롭게 창출한 소프트웨어 역량의 결합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소니의 최대 강점인 하드웨어 산업의 경쟁력 약화, 즉 제조 역량의 약화로 나타났다.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 바이오 PC 등 하드웨어들이 역량의 분산으로 안정적 시장 입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 우물을 파면서 쌓아온 성공 전략 패턴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Beyond the Core’의 저자 크리스 주크에 의하면 새로운 제품 시장, 혹은 지역 시장에 진출함에 있어 맞닥뜨리게 되는 수 많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대표적 스포츠 용품 전문 업체인 나이키를 살펴보자. 나이키는 스타 시스템을 이용한 스포츠 제품군의 확장 이후 글로벌 확산이라는 반복적인 패턴을 활용한 전략을 펼쳤다.
구체적으로 골프 관련 사업 진출 사례를 통해 나이키가 활용하는 전술 패턴을 살펴보자. 나이키는 1988년 골프화 출시를 통해 골프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6년 대형 스타인 타이거 우즈와 1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맺고 스타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타이거 우즈의 브랜드를 붙인 골프 의류를 출시하였고 소프트 액세서리 제품을 출시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나이키는 같은 브랜드로 골프공을 만들었고 이후 아이언, 우드 순의 하드 제품군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동시에 각 제품을 판매하는 지역을 넓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했다.
이러한 나이키의 확장 전술은 최초 조깅화 사업에서 시작되어 농구, 축구, 배구 등의 사업 확장에 그대로 반복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 독불장군의 자세를 버려라
현대인의 대표적 필수품인 핸드폰을 보자. 초창기의 핸드폰과 달리 현재의 핸드폰은 통신 기기 이상의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심지어 이제는 카메라, MP3 등의 부가적 기능이 제품의 주요 구매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제품의 생산과 서비스에 있어 기업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재하기 힘든 상황이다. 장인 정신은 존재 할 수 있지만, 컨버전스의 시대에 어느 한 제품에 있어서도 완벽한 장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이키는 유통 분야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유통 분야의 일류 기업인 UPS와 긴밀한 기업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나이키는 첨단 기술 및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유통 과정은 UPS에게 위임하고 있다. 이는 물류 및 유통에 관해서는 UPS가 훨씬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재고 관리 및 포장, 배송, 반송, 고객 콜센터 운영 등 물류에 관한 모든 활동들을 적은 비용으로 수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고객은 나이키에 운동화를 주문하지만 그 주문의 이행은 나이키와 UPS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업 협력뿐만 아니라 제품 개발에 있어서도 오직 자기 기술만을 최고로 여기는 소위 ‘NIH (Not Invented Here) 신드롬’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 기술에 대한 확신과 자만은 시장을 선도하기 보다는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PC의 등장을 도외시 하고 자사의 강점인 대형 컴퓨터가 시장을 계속 지배할 것이라고 자만한 IBM은 결국 극심한 매출 부진과 수익 악화 속에서 1990년대 초 도산의 위기를 겪었다.
반면, 전 세계 이동통신분야에서 수년째 부동의 선두를 지키고 있는 노키아는 제품 개발과 시장 선도 기술 개발 등의 핵심사항에 있어서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대처하기 위해 노키아 벤처조직 (Nokia Venture Organiza-tion)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 조직은 자체 프로젝트 이외에도 자국의 울루테크노폴리스, 스웨덴의 시스타,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 전 세계 클러스터 내 벤처 기업들뿐만 아니라 지멘스 등 경쟁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공동 기술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벤처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 매년 전 세계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벤처 선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채택된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완벽한 변신을 꿈꾸어라
1865년에 설립된 노키아는 제지업에서 출발하여 고무, 화학, 가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커다란 사업의 위기 속에서 기존의 주력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고, 그 이후 휴대폰, 네트워크, 솔루션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이동통신에 집중하여 부동의 세계 1위의 성과를 이루어 냈다.
‘살아 있는 기업’의 저자 호이스 교수가 연구한 27개 장수 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생애를 통해 평균적으로 최소한 한 번씩은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경험이 있다.
경영 성과가 좋지않고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현재 성과가 좋더라도 산업 자체에 비전이 안 보이는 경우 비록 파던 우물이 그것뿐 이더라도 메우고 나와야 한다. 즉 기업의 영속을 위해서는 핵심 사업을 과감히 접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스토라는 광산업에서 출발해 현재는 제지 및 화학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40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스미토모는 구리 주물업에서 성장해 현재는 은행 및 화학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 우물 경영을 넘어서
한 우물 경영이 각광 받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떤 측면에서는 한 우물 경영이 유효하다. 신생 기업의 입장에서, 산업의 경계가 확실하고 경쟁의 룰이 명확한 상황에서는 한 우물 경영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산업간 컨버전스가 활발한 이 시기에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신사업을 발견하고 키워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더 가치가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영학자로 추앙 받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는 마치 산업구조가 신에 의해 정해진, 고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산업구조란 것은 하룻밤 사이에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 우물 경영은 발전을 위한 단계일 뿐, 그 자체 일 수는 없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우물이 마르기 전에 또 다른 우물을 파야하는 것이다.
내용출처 : LG경제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