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누워계신 어르신이 없는 나라!
책이 한 권 도착했습니다. 수년 전 보험료 상담을 인연으로 만난 어르신이 자신이 직접 번역하신 책을 감사하다며 보내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문득 책을 펼쳐 본 어느 날, ‘누워 있는 노인이 없다’는 한 구절에 마법처럼 이끌렸습니다. 늙고 병드는 것은 북유럽 사람들도 똑같을 텐데, 몸져누워 있는 노인이 거의 없다니 ….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나라’를 제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일과 덴마크의 노인요양 시설을 방문하러 간 것입니다.
놀랐습니다.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신 어르신들은 정말로 누워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모든 프로그램들은 노인들이 그저 누워 있는 일이 없도록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놀이와 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퇴행을 완화하고, 시끌벅적한 모임도 일상적으로 열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추억의 방’이었습니다. 1940년대에 발행된 오래된 잡지책부터 1950년대 구식 다이얼 전화기까지 가지가지 옛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어르신들은 그 방에 놓아둔 잡지를 보면서 청년 시절로 돌아갑니다. 이미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어르신도 전화기 다이얼을 익숙하게 돌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 합니다. 우울증에 걸려 입을 다물었던 분도 그 방에만 들어서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신다고 합니다.
정원에 나서 보니, 갑자기 형형색색 풍선과 깃발이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소풍날이랍니다. 도시락을 싸고 보물찾기 쪽지를 만들고 온통 어수선합니다. 요양시설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소풍놀이라니? 의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소풍을 간답니다. “어디로요?” 하고 물으니, 대개 요양시설 앞마당인데, 전날 비가 왔고 날씨가 쌀쌀해서 오늘만 실내에서 한다고 합니다. 방마다 소풍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기운을 북돋워주고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주려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다행히 작년 7월부터 우리도 ‘세대간 효 품앗이’라고 하는 다섯 번째 사회보장 제도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작하여 이제 열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한 달에 40만~60만원 정도인 금액이 부담되어 혜택을 주저하는 분들도 계시는 반면, 제도 시행 초기부터 부정청구를 하는 사례들도 있고 요양보호사들의 교육 문제, 현장에서의 서비스에 대한 일부 불만들도 있지만 점점 개선이 될 것으로 봅니다. 우선은 고령사회에 대비한 요양시설은 너무나 빈약한 3.3% 수준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저마다 공공시설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종교단체나 대기업의 사회공헌도 고령화 시대에 맞춤하면 더욱더 좋을 것입니다.
출처: 한겨레 신문 독자칼럼 정영선/국민건강보험공단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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