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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별세계 ‘게스트하우스’

성공을 도와주기 2010. 10. 12. 23:17

서울 속 별세계 ‘게스트하우스’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그곳의 하루

경향신문 | 글 이로사·사진 정지윤 기자 | 입력 2010.10.12 21:25 | 수정 2010.10.12 22:13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서울

 
서울을 여행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호스트로서 이들을 맞아주는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또 누구일까. 시작은 호기심이다. 서울엔 이미 30여개의 저가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세계엔 어떤 '전복'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라는 이국적인 단어를 대할 때 우리가 어렴풋이 가졌던 '게스트'라는 느낌.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게스트를 전전하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호스트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부대끼며 다시 외로운 게스트가 될 날을 꿈꾸고 있다. 그곳은 분명 서울에 있지만, 서울이 아니다. 손님과 주인이 뒤바뀌고, 낯익음과 낯설음이 혼재하는 별세계다. 서울 시내 골목,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별세계들을 소개한다. 일과 생존투쟁에서 벗어날 듯 말 듯한 삶이 거기에 있다.

지난 9월3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의 나무게스트하우스. 프랑스 파리에서 이날 아침 막 도착한 모드(22)는 거실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다. 하루 먼저 와 있던 같은 학교 친구 샌드린(22)과는 이미 재회의 인사를 마친 후였다. 샌드린은 거실에서 지도를 펴 놓고 이날의 여행지를 고르는 중이다. "DMZ에 꼭 가볼 생각이에요.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있는 거니까. 직접 가서 보면 뭔가 느껴지지 않겠어요? 근데 어제 3만5000원에 구두를 샀는데, 그 정도면 싸게 산 건가요?"

나무게스트하우스는 이승용씨(39) 부부가 운영하는, 이들의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다. 부부는 2004년부터 2년 동안 세계를 떠돌았다. 2006년 라오스에서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하는 수 없이 한국에 돌아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지척에 있다. 이곳은 다세대주택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외양은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거실과 안방, 침실과 두어개의 작은 방들. 거실엔 전날 저녁밥 지은 냄새에 오늘 아침 손님들이 먹을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냄새가 섞여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한시적 가족이 된다. 짧게는 3일, 길게는 몇 달씩. 6인, 4인, 3인용 도미토리가 각각 하나씩, 더블룸이 하나 있다. 예산, 일정, 취향에 따라 골라 묵는다. 화장실, 부엌, 거실은 공용이다.

룩셈부르크에서 온 크리스(25)는 세수도 안 한 부스스한 차림으로 식빵에 계란 프라이를 먹는 중이다. "세계여행 중이에요. 미국 횡단 여행을 마치고 어젯밤에 여기 도착했어요. 첫 인상요? 밤에 도착해서 마중나온 친구랑 술 마신 게 전부라…그냥 컴컴했다, 정도? 하하하."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들이란 대개 이런 식이다. 미리 호텔을 예약하고, 여행사의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 날마다 일정은 있기도, 없기도 하다. 크리스의 오전과 오후 또한 비어 있다. 전날 마중나온 한국 친구가 퇴근하는 오후 8시까지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했다. "여행지에선 그냥,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계획 없이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크리스가 계란 노른자를 먹으면서 붉은 얼굴로 말했다. 오랜 여행자의 얼굴이다.

여유로운 여행자들과 반대로, 매니저의 아침은 어수선하다. 매니저니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투숙객들로부터 쏟아지는 질문들을 처리하고 있다. 여행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조언자다. 벌써 '서울 마스터'가 되었다며, 그가 말했다. "아침마다 정신이 없어요. 아침 식사 준비하고, 체크아웃하고 나가는 손님과 체크인하는 손님들이 섞이고, 그날 여행 떠나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은 어디가 맛있는지부터 공연 정보 등 별별 걸 다 물으니까. 다 나가고 나면 그제야 한시름 놓죠."

오전 11시쯤, 어수선한 아침이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주인 "리"(이승용)가 등장했다. 그날 새로 온 손님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잠시 후 7살 안팎의 아이들 십여명을 몰고 왔다. 이웃의 마음 맞는 부모들과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뉴질랜드 출신의 마이클을 보며 말했다. "얘들아, 이 오빠는 마이클이래. 이 오빠는 영어로 말하는데, 그냥 한국말로 말 걸어도 괜찮아. 말은 몰라도 마음이 통할 거야. 우리 마이클이 온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볼까?" 그러고는 지구본 위의 뉴질랜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서울과 뉴질랜드, 한국말과 영어, 아이들과 어른이 한데 섞여 깔깔댔다.

같은 날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백패커스 인사이드 게스트하우스. 아침의 열기 대신 저녁의 소란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날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5~6명의 여행자들이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성균관대 주변 주택가의 한 빌딩 2층에 자리잡은 이곳의 인테리어는 외국의 소규모 백패커스 호스텔에 좀 더 가깝다. 그러나 분위기만은 어느 곳보다 가족적이다. 거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스테프(24·미국)는 "꼭 집 같다. 사람들도 가족처럼 친근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주인 유민용씨(29)는 냉장고에서 귤을 꺼내와 테이블 위에 잔뜩 쌓아 놓았다.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공동의 공간인 거실이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세탁·조리 등을 할 수 있는 주방이 한 공간으로 연결됐다. 그 반대쪽으로는 좁은 복도를 따라 양쪽에 7개의 방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유씨는 "사람들을 만나는 공동의 공간인 이곳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모두가 이곳을 거쳐갈 수밖에 없도록 일부러 동선을 그렇게 짰다"고 했다. 잠을 자다 거실로 나온 폴란드 출신의 파비안느는 다소 숫기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내 저마다 혼자인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중 몇몇은 "코리안 바비큐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이 어디냐"고 묻고는 밖으로 나갔다. 남아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고스톱 게임 어떠냐"고 제안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 여행자들은 서울에 왜 왔을까

△ 조안나(29·폴란드)
"한국문화와 한글에 반해"


"온 지 12일 됐다.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자면 굉장히 긴 이야기인데…. 폴란드에서 관광 가이드 일을 하다가 1년 전에 그만뒀다. 시간이 많아져서 영화를 많이 봤다. 그중에서도 한국영화를 많이 봤다. < 달콤한 인생 > < 비열한 거리 > < 6월의 일기 > < 열혈남아 > < 빈집 > …. 한국이란 나라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나누는 문화,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 다정함, 함께하는 것의 경이로움…. 그런 게 저는 좋았다. 한국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8~9개월 동안 인터넷 레슨을 들으면서 독학했다. 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한국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여기에 와서, 이곳에 앉아서 한국 주스를 마시고 있다(웃음). 도착했는데 나는 완전히 혼자 뜰에 내놓은 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외국인이 거의 없어 어떤 면에선 완벽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청계천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웃음). 서울은 천 가지의 냄새가 있는 도시다.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쉽지만 3일 후면 돌아간다. 오늘은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간다."

△ 크리스(25·룩셈부르크)
"우연이란 여행의 묘미 찾아"


"독일인인 여자친구와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2년 전에 대학을 마치고 1년 정도 돈을 모았다.

지난 4월부터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을 했다.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탄 거다(웃음). 그리고 다음 여행지가 여기 한국이다.

한국에는 어젯밤에 도착했다. 독일에서 함께 공부하던 한국 친구가 있어서, 그도 볼 겸 왔다. 여자친구와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후 베트남, 라오스, 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먼저 여행할 것 같다. 호주, 뉴질랜드도 가고 싶은데 돈이 허락될지 모르겠다(웃음).

저와 여자친구는 진짜 삶에 목이 말랐다. 세상 곳곳을 직접 다니면서 발견하고 싶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한 것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 좋아서다. 호텔은 아무리 싸도 골방에 혼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연에 기대는 게, 여행의 묘미다. 한국에는 5일 정도 머무를 것 같다. 계획? 없다. 뭐하면 좋을지 얘기 좀 해 달라."

△ 켈리(23·미국)
"아이돌 쫓아서 여기까지"


"어제는 찜질방에 갔는데 너무 좋았다. 더워서 질식할 것 같기도 했지만…. 두 달 예정으로 한국에 왔다. 지금은 온 지 2주 정도 됐다. 웬만한 데는 다 돌아본 것 같다. 서울타워, 창덕궁, 경복궁, 홍대, 인사동, 명동, 남대문시장 등등. 저는 한국 음악의 팬이었다. 한국 음악은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 샤이니, 비스트, 슈퍼주니어…. 꺅!(옆에 비스트 CD가 놓여져 있다). 미국에서 슈퍼주니어 콘서트에도 갔었다. 그들은 재능은 물론이고, 친구처럼 친숙해 보인다. 미국의 스타들은 우리와는 다른, 높고 먼 세계에 있는 느낌인데, 이들은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앞에 앉은 친구를 가리키며) 얘도 한국 아이돌 쫓아다니다가 알게 돼 여기까지 같이 오게 됐다. 여기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싶다. 일단 어떤지 좀 둘러보고 익숙해지려고 왔다. 한국말도 반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웃음). 서울은 도시 생활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깨끗하다. 부산과 제주에도 가고 싶은데 예산이 부족해서…."

< 글 이로사·사진 정지윤 기자 r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