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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물 개방 20년, 우리 식탁 어떻게 바뀌었나]총 3만 ㎞ 건너온 밥상 위의 ‘불청객’

성공을 도와주기 2014. 11. 7. 12:59


 

 
 

[농수산물 개방 20년, 우리 식탁 어떻게 바뀌었나]총 3만 ㎞ 건너온 밥상 위의 ‘불청객’

글 이재덕·사진 김기남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4-11-06 23:09:18수정 : 2014-11-07 10:19:56

ㆍ19년차 주부 이정희씨네 식탁에 켜진 ‘푸드마일’ 비상등

▲ “수입은 호주산 쇠고기뿐일 것” 국산만 고집하는 베테랑 주부
곳곳에 숨은 외국산에 ‘깜짝’
유통과정서 보존·첨가제 투입… 식품안전 정보 부족 식탁 위협


지난 2일 서울 목동에 사는 이정희씨(43) 가정의 저녁 식탁. 평소 이씨와 중학교 1학년인 둘째 딸만 자리한 단출한 식탁에 오랜만에 가족 4명이 모두 둘러앉았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남편이 서둘러 퇴근했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첫째 딸도 집에 왔다.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 되도록이면 국산 식재료를 써온 이씨는 정성을 다해 한 상을 차렸다.

이날 주메뉴는 임연수어 구이, 청국장, 동그랑땡이었다. 다이어트하는 두 딸을 위해 샐러드도 준비했고 반주로 맥주 마실 남편을 위해 안주용 골뱅이 무침도 만들었다.

이씨는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은 대부분이 수입 식재료로 만들겠지만 우리집에서는 원주 사는 외삼촌이 준 채소들이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산 국산 식재료를 사용한다”며 “수입이라고 해봐야 호주산 쇠고기 정도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찬에 사용된 식재료를 살펴보니 19년 베테랑 주부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외국산들이 꽤 많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글로벌한 식재료’가 식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골뱅이 무침의 골뱅이는 8500㎞ 떨어진 영국 북해산이었고, 러시아 오호츠크해산 임연수어(700㎞), 중국 지린(吉林)성산 두부(600㎞), 호주 퀸즐랜드산 쇠고기(7200㎞),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산 캐슈너트(5700㎞), 터키 흑해 인근에서 생산된 헤이즐넛(7200㎞) 등 생소한 지역의 식재료가 많았다. 이들의 ‘푸드마일’을 직선거리로 계산해보니 2만9900㎞에 달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 정도이니 이날 이씨 가족의 식탁에 오른 식재료들은 지구 4분의 3바퀴를 돌아온 셈이다.

농수산물 시장 개방 이후 수입 먹을거리가 일상이 됐다. 명태·오렌지·망고처럼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농수산물은 러시아, 미국, 대만 등에서 싼값에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몇몇 수입 농산물은 믿을 수 없고 안전하지 않은 먹을거리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지 20년이 지났고 한국이 2004년 칠레와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지 10년이 지났다. 소비자들의 식탁은 한층 풍성해졌지만 안전성은 오히려 후퇴했다.

통상 푸드마일이 길수록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는 줄어들고, 유통과정에서 보존제 등 첨가제가 들어가는 등 위험도는 커진다. 외국산일수록 산지 정보가 필요하지만 정작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원산지’ 외에 거의 없다.

이씨 식탁을 좀 더 꼼꼼히 따져보자. 임연수어 구이에 사용된 임연수어는 러시아산으로 북태평양의 오호츠크해에서 잡혔다. 국내산 임연수어가 잡히지 않아 상당량이 러시아에서 수입된다.

냉동 임연수어는 통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모인 뒤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다. 이씨는 프라이팬에 캐놀라유를 두르고 튀김가루를 묻힌 임연수어를 구웠다. 캐놀라유의 주재료인 유채씨는 캐나다에서, 튀김가루 주재료인 밀가루는 미국에서 수입됐다. 캐놀라유나 식용유에 사용되는 수입 유채씨와 대두는 상당수가 유전자변형식품(GMO)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콩기름, 간장, 캐놀라유 등 최종 가공제품에서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으면 GMO를 사용했어도 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밀의 경우 최근 미 오리건주의 밀밭에서 승인받지 않은 유전자변형 밀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미 농림부는 한국 정부에 유전자변형 밀이 수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통보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미국산 밀가루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조사 결과 GMO가 검출된 밀가루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역으로 GMO 안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국내 생산량이 적은 골뱅이는 국내 수요의 90% 이상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입한다. 골뱅이 무침에 들어간 파, 오이, 양파, 고춧가루 등은 모두 국산이다. 골뱅이 무침 위에 뿌려진 참깨와 참기름은 외국산이다. 오뚜기에서 생산한 해당 제품에는 ‘참깨 수입산’이라고만 명시돼 있었다. 오뚜기 측은 “인도·말레이시아 등의 참깨를 함께 사용하지만 인도산의 비중이 크다”며 “국산 참깨를 사용하면 제품 단가가 너무 비싸진다”고 밝혔다.

샐러드에 사용된 양상추와 어린잎 채소, 방울토마토는 국내산이다. 이씨는 샐러드 위의 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견과류를 한 움큼 올렸다. 호두와 블루베리, 크랜베리는 미국산, 캐슈너트는 인도산, 헤이즐넛은 터키산이다. 청국장은 외삼촌이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들었다. 청국장에는 ‘유기농 두부’를 넣었다. 국산인 줄 알고 샀지만 중국 지린성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들어졌다.

이씨는 “동그랑땡에 한우보다 값이 싸면서도 믿을 만한 호주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돼지고기는 국내산이다. 이씨는 “덴마크에서 수입한 냉동 돼지고기를 한번 사서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돼지고기는 꼭 국산을 산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인 이마트, GS마트, 하나로마트 등에서 장을 본다.

그러나 대형 마트에서조차 먹거리의 원산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씨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국내산과 외국산 원산지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가공식품도 ‘수입산’이라고만 해놓고 어디에서 수입한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표기가 없다”며 “정보가 없으니 믿을 수 있는 재료인지 걱정을 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 그냥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푸드마일(Food Miles)

농산물 등 식재료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말한다. 푸드마일이 길어지면 식품에 사용되는 농약·보존제·첨가제 양이 증가해 식품의 안전성은 떨어지고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식품에 관한 정보도 줄어든다. 한 국가의 식량자급 수준이 낮거나 농산물 시장의 개방 정도가 클수록 푸드마일은 급격히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