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 금리 탓 아냐…기업에만 돈 쌓이는 구조가 문제”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앞서 금리 인하론과 금리 동결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한은은 가계빚 증가가 우려되지만, 경기 부양이 더 급하니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일단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은의 이런 판단에 고개를 젓는 전문가들도 많다. 대표적인 금리인하 무용론자인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6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 있는 박 위원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금리가 높아서 기업 투자가 부진한 것도 아니요, 가계가 소비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한은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의 핵심 논거인 낮은 물가상승률에 대해서도 박 위원은 “국제 유가 하락이라는 일시적 요인이 물가를 끌어내렸을 뿐, 올 하반기에는 물가 상승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위원은 경기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원인으로 임금 상승 미흡과 기업 저축(사내 유보 등)의 증가를 지목했다. 그는 “기업이 저축한 돈을 가계가 빌려 부동산을 사는 기형적인 구조를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며 “금리 정책으로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2018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 실질임금 하락 속도는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업소득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안 중 하나로 기업소득 중 금융소득에 대해선 높은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제도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저축하고
가계는 그 돈 빌려 집 구매
이 기형적인 구조 고쳐야
기업 금융소득 고율과세를
기업-가계 소득차 줄이려면
정부 인위적인 개입 필요
대기업 세제혜택 없애고
중소기업 성장하는 데 써야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연구원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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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가? 소비자물가가 매우 낮다.
“물가 상승폭 둔화는 국제유가 때문이다. 일시적 요인이라는 뜻이다. 당장 올 하반기엔 유가가 전년동월비로 따지는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는 힘이 크게 줄어든다. 내년이면 소멸할 것이다. 지금 유가 수준이 유지된다 해도 그렇다.”
-기대인플레이션율(가계가 예상하는 향후 1년간의 물가 상승률)도 조금씩 내려간다.
“만약 정부가 이를 정말 우려한다면,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유가하락에 따른 원가 감소분을 공공요금에 덜 적용하면 된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디플레도 나름이다. 좋은 디플레도 있고 나쁜 디플레도 있다. 대표적인 나쁜 디플레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 디플레이다. 공통점은 디플레에 앞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크게 폭락했다는 것이다.
자산가격 폭락이 담보가치 하락으로, 다시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 손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지금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나? 주가는 2000선 안팎에 머무르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급락 징후는 없다.”
-좋은 디플레는 뭔가?
“지금 같은 경우 아닌가. 유가가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유가 하락은 기업의 생산비를 줄여준다. 올 상반기에 물가가 하락한다고 해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성장률도 둔화되고 있다. 박 위원은 작년에 장기침체론을 제기했다.
“장기침체는 특별한 게 아니다. 경기순환이 매우 미미하다. 2012년 4분기부터 순환상 경기 확장국면으로 볼 수 있는데, 그 폭이 매우 좁다. 1970년 이후 모두 11번의 확장국면이 있었다. 그 중에 이번이 소비는 가장 부진하고, 투자는 두번째로 부진하다. 수출은 중간쯤된다. 이런 미미한 경기 확장이 두번 반복되면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간다.”
-그러면 금리 인하가 더 필요한 거 아닌가.
“금리 정책으로 풀기 어렵다. 금리를 내리면 소비가 늘까? 조금은 늘겠으나 의미있는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다. 가계는 저축이 바닥이고 부채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기업의 투자 부진이 금리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2001년에 금리를 낮춘 뒤 그 다음해 소비가 크게 늘었다. 이런 현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
“통상 가계는 저축하고, 기업은 가계의 저축을 빌려 투자한다. 우리는 이 구조가 역전돼 있다. 기업이 저축을 하고 가계는 그 저축을 빌려 소비한다.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도 이 거꾸로된 구조 탓이다. 누군가는 저성장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 구조를 바꾸면 성장률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규제 완화 등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기업에 쌓인 돈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내 기억에 2005년부터 정부가 투자활성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내놨고, 얼마 뒤에는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을 하면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하지만 투자 부진은 지속됐다. 10년 해봤으니 그런 방식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기에 불확실성이 높다고 한다.
“투자는 원래 불확실한거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 나 같은 학자가 연구할 게 없다고 말하거나 운동선수가 더 이상 기술 연마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작년에 우리 경제 상황을 진단하면서 ‘임금없는 성장’이란 표현을 썼다.
“기업 저축이 늘어난 것은 분배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생산성이 개선된 만큼도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2008년에 실질임금이 정체됐고, 2011년부터 아래로 막 내려가고 있다. 기업 저축과 가계 소득 간 벌어지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필요하다.”
-같은 문제의식에서 정부도 작년에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내놨다.
“근래 보기드문 정책 이노베이션(Inovation)이다. 다만 처음 만든 탓에 엉성하다. 현대차가 사옥을 짓기 위해 부동산을 매입한 것도 투자로 인정했다. 국민계정상 부동산 소유주가 바뀌는 의미밖에 없다. 부가가치 창출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도 자체나 문제의식은 높게 평가한다.”
-기업은 반발한다.
“제도가 엉성해도 기업이 호응을 하면 효과는 난다. 하지만 호응하지 않는다. 정부가 공무원 임금을 3.8%까지 올리며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줬는데, 재계(한국경영자총협회)는 1.6% 임금 가이드라인을 던진다. 호응은 커녕 정부와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거부한다. 기업들이 전략적 판단을 못하고 있다.”
-전략적 판단?
“환류세제 실효성은 올해 말이면 확인된다.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어떤 여론이 형성될까. 실효성 없는 환류세제는 그만두고 법인세 올리자고 할 것이다. 임금도 안 올리고 투자도 안한 기업들로선 방어 논리를 찾기 어려울 거다. 얼마 안되는 환류세제 피하려다 더 큰 법인세를 물어야 된다. 이명박 정부 때 감세로 덜 걷힌 법인세가 2013년 한해만 7조원이었다.”
-법인세 인상 필요한가?
“법인세 인상보다 환류세제 실효성을 높이는게 더 좋다고 본다. 환류세제는 수익 창출 기여자에 소득을 나눠주는 것이다. 반면 법인세는 정부가 일괄로 걷어서 (재정지출로) 나눠주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누수가 발생한다. 환류세제가 수익기여자 수혜 원칙에 더 부합한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도 크다. 환류세제는 이 격차 해소엔 도움이 안된다.
“현재 동반성장기금 출연액도 환류세제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납품가 등 적정 대가를 지급할 때 세제상 혜택을 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의 금융소득에 대해선 일반 개인과 마찬가지로 고율 분리과세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자. 그렇게 하면 돈으로 돈 버는 행태를 자제하라는 강한 메시지가 된다.”
-야당은 ‘임금(소득) 주도 성장론’을 꺼내든다.
“저축률은 바닥, 빚은 산더미인 가계 상황을 보면 소득을 늘려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소득의 대부분은 임금이다. 임금없는 성장을 말하며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나의 주장이나 임금 주도 성장론은 큰 틀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생산성 향상분 만큼은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벌 대기업에 여전히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기업 저축률이 높은 것은 그만큼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엔 이 인센티브를 다 없애야 한다. 이런 기업은 연구개발비는 자기돈으로 해야 한다.
왜 세제 혜택을 주나. 산업용 전기료도 올려야 한다. 글로벌화 멀티내셔널(다국적)화된 기업은 원래 국민 경제와 따로 움직인다. 밖에 나가서 떼돈을 벌도록 정부는 독려하되, 그 대신 혜택은 없애야 한다.
그 돈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써야 한다. 소나무숲에 가면 소나무만 있고 풀은 없다. 한국 경제가 딱 그 모습이다.”
-끝으로 덧붙일 말은?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는 특별한 게 아니다. 직원에 적정 임금을 주고, 납품업체엔 적정 대가를 지급하는 거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임금을 절반만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런 사람들은 과거 민주화투쟁으로 부당한 인신구속을 당한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부당함을 느낀다. 경제민주화는 사회정의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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