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세계·한국 경제 진단
투기자본에 안 넘어갈 장치 필요
지분 30% 저커버그, 의결권 과반
차등의결권 주는 것도 방법
미·중 무역전쟁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기술 고도화돼 한국 직격탄
북한과 미국 간 2차 정상회담과 맞물릴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미ㆍ중 무역전쟁과 세계 경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G2(주요 2개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개발경제학의 세계적 대가로 꼽히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난 1일(현지시간) 단독 인터뷰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장 교수는 “미ㆍ중 무역 전쟁은 관세 전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패권 전쟁”이라며 “단기적으로 미국이 이기더라도 장기적으로 중국 기술력 업그레이드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고급화 전략으로 대응하거나 관세 부과를 피해 베트남 등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면 생산성 낮은 산업이 제거되는 효과가 난다”며 “중국의 기술 고도화는 한국에 직격탄”이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와 대기업, 노조와 시민단체, 학계가 참여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정부가 대화와 정보 교환을 통해 장기 산업정책을 짜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중국에 대응할 구체적인 기술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대기업을 글로벌 투기자본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신 세금을 더 내도록 해 복지국가를 만드는 패키지 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씨, 정씨 집안이 삼성과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 즐겁지만,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는 형태가 되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망할 경우 상속세를 주식으로 국민연금에 기탁하게 하면서 세율을 60%에서 25%로 대폭 깎아주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국가 경제 차원에서 경영권을 지켜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장 교수는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 경제 침체를 예상하는 시각이 있는데, 올해와 내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재작년, 작년보다 가라앉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등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미ㆍ중 무역전쟁도 어떤 식으로 갈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에다 각국 정부가 적자 재정을 냈고 이자율도 역대 최저다. 양적 완화까지 해 주식ㆍ부동산에 거품이 끼고 가계 부채도 늘었다.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려 응급처치를 해놨는데 또 충격이 오면 못 버틸 수 있다. 외채를 많이 끌어 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에서 문제가 터지기라도 하면 대응할 수단이 없다. 1~2년 사이에 무슨 일이 난다는 건 아니지만, 경제 체질이 약해져 굉장히 걱정스럽다.”
- 미ㆍ중 무역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나.
“관세 전쟁 자체는 심각한 건 아니다. 중국의 세계 무역 규모 2조3000억 달러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는 3% 수준이다. 무역 전쟁은 전초전이고 사실은 패권 전쟁이라는 게 중요하다. 미국이 중국을 찍어 누르려 하지만 미국에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은 제품을 고급화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과거 일본이 미국과 유럽으로 자동차 수출량이 제한되자 렉서스 등 고급 차를 만들어 값을 올린 식이다. 또 중국이 동남아 등으로 공장을 옮겨 생산성 낮은 산업이 없어지고 거기서 나온 자원으로 생산성을 올리는 데 투입할 수도 있다. 그 점이 한국에 중요하다.”
-중국 경제의 성장 감속도 영향을 미치는데.
“대다수의 예상과 달리 중국이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불평등 문제가 악화해 저성장 체제로 가면 불만이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일본도 1985년 미국이 압력을 넣어 엔화 가치를 세 배로 올려버리니 수출이 안 되고 부동산 거품이 꺼져 잃어버린 10년, 20년을 겪었다. 중국도 거시금융정책을 잘못하면 의외로 꼬꾸라질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중국의 휴대전화, 조선, 철강, 항공산업 기술이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태양광과 나노 테크, 인공지능 등은 이미 선진국과 겨룬다. 한국은 중국과 경쟁과 협력을 어떻게 할지 전략을 짜야 한다. 휴대전화에서 중국이 쫓아오는데 어느 선에서 막을 거냐, 조선은 그러면 버릴 거냐, 태양광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투자해 따라잡아야 하냐 아니면 다른 대체에너지로 가야 하냐 등을 정해야 한다. 대체에너지도 풍력발전이 강한 독일이나 덴마크와 손을 잡을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전략을 짜야지 가만히 앉아 어떻게 되겠지 해선 안 된다.”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면.
“단기적으로는 그럭저럭 갈 것이다.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한국 경제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높은 편이라는데, 인구증가율을 고려한 1인당 경제성장률을 봐야 한다. 지난 7~8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 독일은 1.8%다. 한국의 인구증가율이 0.5%이니 1인당 경제성장률은 2.5%이고, 독일의 인구증가율이 -2%이니 1인당 경제성장률은 2%다. 우리가 대단히 잘하는 게 아니다. 향후 1~2년이나 최저임금 몇천원 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중국의 추격을 막고 다 같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지 장기적인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타협할 것은 하고 정책 도입할 것은 해야 10~20년 후 더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산업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어떻게 하자는 건가.
“산업정책에 성공한 나라들은 대화와 정보교환이 핵심이었다. 개별 산업의 요구도 다르고, 할 수 있는 것도 달라 막연히 연구·개발(R&D) 예산 늘리자는 식은 답이 아니다. 정책 입안자와 기업, 노동자까지 참여해 대화하며 협동할 것은 하고 경쟁할 것은 해야 한다. 과거 한국은 산별 기업단체도 많고 정부와 정보를 교환하며 산업정책을 짰는데 그런 메커니즘이 와해됐다. 그러니 정보를 교환할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로 경제개발계획이나 중화학 육성정책처럼 통합된 비전을 제시할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대체에너지라도 태양광을 할 건지 풍력을 할 건지, 아니면 원자력을 더 할지 논의해야 한다. 자동차도 전기차를 한 건지 수소전지차를 할 건지, 아니면 석유 엔진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른 규제로 자동차 소유를 억제하며 공유차량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구체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싱가포르가 자유 방임 경제 같지만, 산업성이 토론을 통해 제조업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20%로 유지한다는 합의를 해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경제팀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해야 한다고 하고 기업과 자주 대화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그런데 기업과의 대화가 민원 해결 차원이어선 안 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자리여야 한다. 기업에 어느 지역에 투자해달라 하고, 기업이 애로가 있다면 그것 터주겠다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조선과 철강에서 몇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라 그렇게 해결될 차원이 아니다.”
-정치권과 대기업에 대타협을 요구했는데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보나.
“이씨, 정씨 집안이 삼성과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 즐겁다. 하지만 쫓겨나는 형태가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는 게 되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 삼성과 현대는 재벌개혁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씨, 정씨 집안 게 아니다. 주주만의 것도 아니다. 이들 기업을 성장시키려 국민 세금으로 지원했으니 국민의 기업이다. 재벌 문제를 풀 때는 한국 경제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지 실용주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방법은 이미 많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주식 보유량이 30% 미만인데 의결권은 과반수다. 그런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최근 법을 만든 것처럼 오래 주식을 보유하면 의결권을 더 주는 방법도 있다. 독일은 공동결정제라고, 경영이사회 외에 노조 추천 이사가 절반인 감독이사회를 둔다. 감독이사회는 큰 결정에 관여하는데, 이런 제도 덕분에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에 적대적 인수합병이 한 건도 없었다.”
-한국에선 대기업에 대한 주주 견제 목소리가 높은데.
“그래서 대타협을 강조하는 거다. 과거 삼성은 어패류를 일본에 수출하다 제당을 만들고 나중에 전자와 반도체, 휴대전화로 업그레이드했다. 주주 자본주의 논리로 삼성을 모두 개별기업으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가능했겠나. 왜 잘 버는 삼성 계열사가 못 버는 다른 계열사에 돈 대주냐는 논리였다면 지금 삼성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기업집단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합의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이 사망할 경우 상속세를 주식으로 국민연금에 기탁하게 하면서 세율 60% 낼 것을 25%로 확 깎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경영권을 지켜줄 수도 있다. 방법은 많으니 정치권과 대기업이 타협해 투기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대타협은 대통령이 주도해 여·야 정치권을 참여시켜야 할 것 같다.
“과거 노사정 협의체도 만들지 않았나. 한국은 노조가 10%에 불과하니 시민단체나 학계, 중소상공인 대표 등이 같이 참여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들과 토론해 합의하라는 거다. 그런 것은 안 하고 진영 논리에 갇혀 한쪽은 왜 노조와 시민단체가 끼고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하느냐고 하고, 다른 쪽은 재벌이 없어져야 하는데 생존하는 것도 고마워하라고 한다.”
-카풀 도입을 놓고 택시기사들이 자살하는 등 일자리 갈등이 심각하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익 공유제를 하면 대기업 하청업체만 혜택을 보니 보편적 복지국가가 해법이다. 산업 로봇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복지국가를 달성한 스웨덴은 노동자가 실직하면 기존 임금의 60~70%를 2년간 주며 재교육해 다른 직업을 알선한다. 신기술이 나와도 노동자가 반발하지 않는 이유다. 덴마크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58%이지만 불만이 없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도 의료, 육아, 교육 등 모든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 조금 더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한국도 복지국가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사회보험을 싸게 하고, 노동자 재교육을 해주면서 그를 통해 구조조정도 하면 된다. 기술 혁신을 위해 산업정책을 세우고 기업과 사회적 타협을 하는 패키지 딜을 추진해야 한다. 타협하면 세금도 더 걷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것은 정부가 해달라고 하고 정부는 그러려면 세금이 더 필요하다고 협상한다면 법인세를 1%포인트 올리자는 결론도 나올 수 있지 않겠나.”
-문 대통령과 식사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나.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린 다음 그걸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내가 지적하는 한국의 문제는 최소 20년 된 것이어서 세계적인 초인이 와도 2~3년 안에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촛불 혁명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고 대통령이 된 분이고 끌어안고 타협하는 정신이 있는 분이니 계속 대화와 타협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타협이나 산업정책을 위한 대화와 정보 교환은 6개월간 회의해서 보고서 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야 한다. 그 틀을 만들 분이 문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인터뷰에서 한국이 경제 비상사태에 있다고 했다가 유시민 전 장관 등으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는데.
“한국은 복지 지출이 OECD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적다. 그러다 보니 자살률은 1위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쫓아오고 주력산업이 붕괴하고 있으니 수수방관할 수 없는 비상사태라는 의미였다. 이걸 진영 논리에 따라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쪽에선 경제가 안 좋다는 얘기이니 문재인 정부가 잘못했다고 하고,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은 경제가 괜찮은 편인데 왜 나쁜 얘기를 하느냐고 하더라. 진영 논리가 이렇게 극복하기 어려운 거다.”
케임브리지=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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