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축구장 544배'.. 없는 게 없는 '전세계 생활잡화의 수도'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입력 2019.04.19
中 이우시 현지인 80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세계 최대 소상품 도매시장로 성장..인건비 상승 등에 전자상거래 적극 육성
"전세계 소상품의 수도" "이우에 없으면 세계 어디에도 없다"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이우에서 준비한다" 중국 저장성의 현급 작은 도시, 이우시를 향한 찬사다. 현지인구 80만 명의 이 중소도시는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장신구, 완구, 생활용품 등 각종 소상품(생활잡화)의 중국 내 제조 및 집산지로 성장하면서 세계 최대 소상품 도매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가 발달하고 중국내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이우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육성, 일대일로 사업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이우시를 둘러봤다.
◇이우의 랜드마크 국제상무성…축구장 544개 규모=중국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이우시. 지난 12일 찾은 이 곳의 랜드마크 국제상무성 1동 건물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규모에서부터 압도했다. 1층에는 조화와 완구를 주로 파는데 수많은 점포들로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1동에서 영업하는 점포만 모두 8000여개. 하루에 8만 여명의 고객들이 찾는다. 이중 3000여명은 외국 상인들이다. 이들은 이곳 제품들을 자국에 들여다 판매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런 건물들이 모두 다섯 동이 여기 있다. 각 동별, 층별로 판매되는 상품의 종류가 다르다. 이 5개 동을 포함한 국제상무성 전체의 영업 면적은 400만여㎡에 달한다. 일반 축구장(7350㎡)의 544개 규모다. 입점해 있는 점포만 모두 6만개, 근무인원은 20만명에 달한다. 이곳을 꼼꼼히 둘러보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며칠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점포들은 대부분 도매 판매만 가능하지만 별도로 소매 판매가 가능한 점포도 있었다. 전부 8000개인데 이런 점포는 따로 마크가 붙어있다. 도매 판매를 하는 점포들 역시 중국의 국민 모바일 메신저 '위챗' 등을 통해 주문하면 소량 구매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제무역성 관계자는 "하루 20만여명의 고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면서 "외국 상인들 가운데는 자국에 제조 기반이 없는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손재주+정부 지원+ 물류 등 통해 성장=이우는 자연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현지 사람들의 손재주는 남달랐다. 가내 수공업으로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서 자연스럽게 도매 시장이 형성됐다. 92년 시 정부와 저장성 성부가 도매시장 육성정책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았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야 했던 성 정부는 이우시에 부가세 면제 혜택과 물류 기반 등을 제공하면서 키웠다. 그러자 공장들이 몰려들었고, 해외 상인들도 가세했다. 2000년 이후는 국제상무성 같은 대규모 국제 상업 타운을 건설하고 소상품 박람회 등으로 전세계 상인들을 끌어모았다. 현재 매년 약 5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 상인들이 이우를 찾고 있다. 이우의 상품은 21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 수출된다. 거래의 65%가 해외로 나간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현재 현지 호구를 갖고 있는 이우 인구는 81만8362명에 불과하지만 외지에서 온 상주인구가 그 두 배에 가까운 142만9758명에 달한다. 무역 거래 등을 위해 상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1만3000명이다.
이우에서 팔리고 있는 세부 상품은 대략 210만 종으로 추산된다. 장신구, 양말, 완구 생산 판매량은 중국 전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시 전체 판매 면적은 640만㎡에 이르고 모두 7만5000개의 점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이루는 셈이다.
이우가 세계적인 소상품 도매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다른 원동력 중 하나는 물류다. 차량 운송을 통해 중국내 200개 대, 중도시에 직접 연결이 가능하고, 6개의 화물 전용 철도도 있다. 저장성 중부 지역 내 민영 공항을 가진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닝보, 상하이항과 인접해 해상 물류도 유리하다. 이우에서 물류 사업을 하고 있는 신퉁그룹의 덩더겅 동사장은 "이우의 택배 배송량은 중국 내 전체 대, 중도시 가운데 광저우, 상하이, 선전에 이은 4위"이라고 소개했다.
◇오프라인만으로는 한계…전자상거래 집중 육성=지난 11~13일 이우 국제박람센터에서는 '2019 중국 국제 전자상거래박람회 겸 디지털무역박람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직접 상품을 파는 기업 외에도 포장, 행정서비스, 판매 플랫폼 기업 등 다양한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들이 참여했다. 이 행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우시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의 한 단면이다. 탁월한 가격 경쟁력, 다양한 상품으로 세계 소상품 시장을 호령했지만 최근에는 인건비 상승과 전사상거래 확산 등으로 만만찮은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작은 제조업체들은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알리바바, 징둥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물건을 사는 고객이 늘어나면 매장을 찾는 고객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오프라인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우 입장에선 불리할 수 있다. 이우는 돌파구로 전자상거래 시장에 직접 뛰어들기로 했다. 중국 중앙 정부도 이우의 이런 변신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국무원은 중국 국경간 전자상거래 종합시험구를 추가로 22곳 지정하면서 현급 도시 가운데 이우를 유일하게 포함시켰다. 이유시에 속한 국유기업인 루강그룹은 이곳에 루강뎬상샤오전이라는 전자상거래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80억8000만 위안(1조3655억원)을 투자해 3.3㎢의 부지에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구축중이다.
기존의 기업 및 물류 인트라가 탄탄했던 덕분에 전자상거래에서도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이우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우시의 전자상거래 거래액은 지난 2013년 856억 위안(14조4664억 원)으로 같은 해 일반 소상품 거래액 683억 위안을 처음 앞질렀다. 이후 격차를 벌려 지난해에는 2368억3000만 위안(40조243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일반 소상품 거래액 1358억4000만(22조9569억 원) 위안 보다 1000억 위안 이상 많다.
제조 기업이나 판매 업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타오바오, 아마존 등 유명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한 이우 업체들의 판매 채널만 31만개에 이른다. 이중 17만개는 중국 국내, 14만개는 해외 거래를 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제조해 판매하는 이우캉천안경 관계자는 "국경간 전자상거래 덕분에 빠르게 매출이 늘고 있다"면서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이 35% 늘었고, 올해도 30%대 매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도 이우시의 새로운 동력이다. 이우시는 세계 최장인 1만3052㎞의 '이우-스페인' 마드리드 구간을 비롯해 9개의 유럽행 화물열차 노선을 운행중이다. 화물열차를 운영하는 톈멍실업투자유한공사 관계자는 "아직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지만 항공 운송에 비해 가격이 싸고 선박 운송에 비해서는 운송 시간이 짧은 강점이 있어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인들도, 이우에서 새 기회 있을 것"='세계의 소상품 수도' 이우는 한국 기업인들에게도 기회의 땅이었다. 이우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직접 제품을 생산하거나 구입한 제품을 한국으로 보내 판매하는 무역업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인건비와 사업환경 변화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제조 원가가 상승한데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해외직구 채널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무역거래가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 김완수 이우한국상회 수석부회장은 "2008년 쯤에는 이우에만 한국교민이 1만명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2000명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우의 변신과 함께 새로운 기회도 생겨나고 있다. 기존 무역업을 전자상거래로 대체하는 것이다. 한 교민 관계자는 "한국과 이우에 각각 직원을 두고 전사상거래 형태로 사업을 하는 젊은 한국 기업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B2B(도매)에서 B2C(소매)로 전환하면 이윤도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또 이우를 비롯한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질 높은 제품을 찾는 경향이 생기고 있는 것도 참고할만하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다른 교민 관게자는 "디자인 등에 있어선 중국이 아직 한국인들을 절대 못따라온다"면서 "중국에서 제조를 하되 한국형 디자인 등을 가미해 제품의 퀄리티를 높인다면 중국의 거대 시장에서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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