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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보다 값진 경험한 가족의 배낭여행기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0. 11. 08:13

사교육보다 값진 경험한 이승곤씨 가족의 배낭여행기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사교육이 주는 유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죠”

또래 아이들은 중요한 시기라며 방학 특강에 매달려 있을 때, 한 달간 훌쩍 여행을 다녀온 가족이 있다. 세 명의 아이를 둔 이승곤씨네 가족이다. 이 과감한 가족이 선택한 여행지는 관광지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이 위치해 있는 발칸반도. 이들의 특별하고 즐거운 지구촌 여행기를 들어본다.

평일 낮의 방문이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있을 때 만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월요일 오후 2시라는 시간을 내주었다. 이승곤·김연숙씨 부부는 모두 교사고, 아이들은 모두 학생이니 8월에는 온 가족이 방학이다. 중학생인 쌍둥이 형제 길로, 바로와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큰딸 미루가 해맑은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학원에 가 있을 시간이었다. 거실 한쪽에 놓인 바이올린이 이 집에 분위기를 가늠하게 했다. 역시 기대했던 바였다. 지난달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을 낸 가족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배낭여행을 시작하다
이승곤씨 가족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난 건 10여 년 전부터였다. 오랜 교직생활을 해온 이승곤씨는 학생들을 지도해오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다른 집에서 엄두 내지 못한 것을 조금 시도했을 뿐이에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대견하지만 반면에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많이 느끼게 돼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떻게 키울까 구체적인 안이 없었죠.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이들이 해외여행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좋아해 가족은 국내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캠핑을 다니곤 했다.

“마흔이 되기까지 가까운 외국 한번 나가본 적이 없어요. 외국 여행은 호사스러운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주변에서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자꾸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번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첫 해외여행지는 중국 국내성이었어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죠. 인천에서 배를 타고 배낭여행을 시작했어요.”

미술교사 남편과 국어교사 아내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고구려 문화 유적을 만날 수 있는 중국 국내성이었다. 인기 있는 관광지도 아니었고, 비자 발급부터 여행 일정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지만 진정한 배낭여행의 시발점이 됐다.

“패키지여행은 유동성이 없잖아요. 자유여행은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어디에서 잠을 잘까’ 선택하면서 실수도 하고 불편함을 겪죠.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기대치 않은 감동이 쏟아져 나와요. 국내성 여행은 길도 험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그 안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버스 안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죠. 보편적인 관광 루트였다면 전혀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에요.”

막상 여행을 다니다 보니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 가기 몇 달 전부터 생활비를 아꼈고, 여행지에서는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다 보니 오히려 돈이 남았다. 김연숙씨의 힘이 컸다.

“예산을 최대로 줄이고, 여행지에서는 긴장하면서 절약하니 오히려 국내에 있을 때보다 덜 쓰게 되더군요. 발칸반도는 워낙 물가가 쌌고, 유스호스텔을 이용하니 숙박비도 많이 들지 않았어요. 항공권은 여러 번 경유하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저가 항공권으로 구입했죠.”

특별한 여행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전 준비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게 가능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아이들을 돌보고 컨트롤해야 하는 게 여행 중 가장 큰일이에요. 24시간 비상사태거든요. 매 결정마다 책임이 따르고 결국에는 싸움이 되기도 하죠. 그땐 참아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주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여행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시중에 정보가 거의 없는 발칸반도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연숙씨는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자격 고사를 보기도 했다. 지리를 익히는 테스트였다. 색칠 공부를 하듯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유럽 지도에 바다를 색칠하고, 각 나라 이름을 적은 후 수도 이름을 표시하는 일이었다. 또 아이들에게 각각 역할을 나눠주고 미리 준비하게끔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자기 몫의 배낭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예요. 가족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려고도 하죠. 바로에게는 ‘그리스 신전 가이드’의 책임을 줬더니 여행을 가기 전까지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보더군요.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길로에게는 키릴 문자를 담당하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공부해도 어려운 키릴 문자를 길로가 읽더라고요.”

발칸반도에 위치한 나라들,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그리스, 터키… 이 중 그리스와 터키 이외의 나라는 국내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나라들이다. 어째서 이들은 척박한 발칸반도를 여행지로 선택한 걸까.

“늘 여행을 마치면 그동안 기록했던 메모나 일기를 가제본해 묶어놓거든요. 이번에는 본격적인 출판을 염두에 두고 여행지를 물색했어요. 책을 내야 했으니 블루오션, 즉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죠. 러시아, 남미 등을 떠올리다가 발칸반도 쪽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쳤죠. 물가도 저렴하고, 여행의 취지와도 잘 맞았으니까요.”(이승곤)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 선택했지만, 여행 준비는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셀프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라별로 나뉜 가이드북을 모으니 그 분량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료 조사에만 두 달 이상을 소비했다.

“자료가 없으니 인터넷을 통해 작은 자료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다 모았어요. 외교통상부 사이트에 나와 있는 지리, 역사, 기후와 같은 기본 정보부터 세세한 거리까지 구할 수 있는 건 모두 구했죠.”

여행을 특별하게 하는 힘, ‘기록’
이들 부부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 이승곤씨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고 틈틈이 기록을 남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기록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했다. 평소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그에게 여행에서의 기록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어요. 현장 기록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함께 다니면서 저희 부부가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주지만 개개인의 관심 분야가 다르고, 느끼는 부분이 다르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을 각자 시시콜콜 기록하는 거죠. 여행 중 잠깐 쉴 때라든지, 저녁 때 숙소에서 쓰곤 했는데, 가급적이면 자세하고 충실하게 쓰게끔 하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빡빡한 일정 중 매일 기록을 남기는 건 쉽지 않았다. 이를 격려하고 지도하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었다.
“일기를 써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잘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쓰더라고요. 빨리 쓰느라 마구 쓰게 되지만요(웃음).”(김연숙)

이렇게 매일매일 기록된 이야기는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여행」은 특이하게도 다섯 명 가족의 기록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되었다.

“가족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우리 가족이 함께했구나’ 이런 추억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테고요. 일종의 매듭인 것 같아요. 그 매듭은 과거를 묶어놓는 기념품 같은 거죠.”

이승곤씨 부부의 특별한 자녀 교육
책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이들 부부가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이가 부족한 과목이 있을 때는 과외지도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여느 아이들과 비교하면 거의 안 하는 편이다.

“큰애가 사교육비를 절감시킨 좋은 모델이죠. 학원에 보냈더니 큰아이가 돈이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고 하더라고요. 오고 가는 시간, 옷 갈아입는 데 드는 노력, 중복되는 내용 등을 계산하면 혼자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건 하지 않고 올해 고3이 되고 보니 수학이 부족한 것 같아서 그것만 과외를 받고 있어요.”
스스로 공부하는 미루처럼 쌍둥이 동생들도 사교육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지 않는다.

“쌍둥이 아이들은 바이올린 레슨을 받거나 영어 학습지 정도 해요. 부족한 부분은 제가 가르쳐왔죠. 그런데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큰애가 대학에 들어가면 내년부터는 동생들 교육을 맡기려고요. 큰애 용돈 벌이도 되고, 작은 애들 사교육비도 아끼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이승곤씨네 식구들은 TV를 보지 않는다. 오래된 TV가 한 대 있기는 한데 간혹 DVD나 비디오를 볼 때나 켤 뿐 TV와는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TV를 멀리하게 됐어요. 아이들 장난감에 넣을 배터리가 필요해 TV 리모컨 배터리를 빼면서부터예요. 그렇게 안 보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TV와 멀어졌어요. 아이들도 자연스레 TV를 보지 않게 됐구요. 가까이 사는 애들 고모가 녹화해주는 다큐멘터리나 좋은 비디오 보는 것으로 만족하죠.”

TV를 멀리하니 자연스럽게 독서량이 늘어났다. 가족 모두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만약 TV를 보기 시작하면 저는 설거지도 못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책을 안 보는 이유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잖아요. TV를 안 보니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은 자전거 탈 때를 제외한 시간에 책을 읽었어요. TV를 안 보더라도 정보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아요. 신문을 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거든요.”

그간 TV를 둘러싼 수많은 유혹이 있었다. 친척이 좋은 TV를 준다고 했을 때도 있었고, 교육방송을 봐야 할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TV를 안 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TV를 보지 않는 상황이 가능한 건 가족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희 어머님도 TV를 안 좋아하세요. 책을 읽고 일기를 쓰시죠. 드라마는 가짜 이야기라 즐기지 않으시고요. ‘시간 있으면 한 글자라도 더 봐라’가 어머니 모토죠. 지난번에 가족과 외식을 하며 TV를 보게 됐는데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유치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요즘 각 가구당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그 비용만큼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과도한 사교육 속에서 아이들이나 부모들 모두 지쳐간다. 이들 가족을 만나면서 여행이 사교육보다 좋은 이유를 몇 가지 발견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어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앞으로 아랍어나 러시아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고요. 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데 통번역과에 지원하려고요. 한국 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미루)

“사회 시간에 동유럽에 대해서 나올 때는 집중하게 되는 거 같아요. 오래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는 세계사 책을 찾아 읽어보곤 해요. 내가 여행했던 곳을 TV나 책에서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죠.”(길로)

“다른 친구들은 게임하면서 지내는데 우리는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을 많이 경험했으니까 뿌듯해요.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과 비교해보고 문제점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는 쓸모없는 간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바로)

언어와 세계에 대한 관심, 한국 바로보기 등 아이들이 느끼는 점은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행이 준 가장 큰 수확인 듯했다

 

출처: 레이디경향 200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