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1854년 인디언 추장인 시애틀(도시명 시애틀은 이 추장의 이름에서 유래)은 미국 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인디언이 살고 있는 땅을 팔 것을 제안하자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로 시작되는 장문의 답장을 보낸다. 그 후 인디언들은 철저하게 백인들에 의해 ‘섬멸’돼 150년이 흐른 지금은 20여만 명에 불과하다.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백인 제국은 위기 탈출의 구세주로 흑인인 버락 오바마를 선택했다. 뜻밖에도 오바마의 핏줄에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를 키운 외할머니인 고 매들린 더넘 여사는 영국계 이민자의 후손인데 외가 쪽에 체로키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과연 백인과 흑인,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오바마의 혼혈만큼 변증법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체로키의 피가 흐르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백인들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디언들의 지혜가 빛나는 책이다. 숲속 오두막집에 손자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에게 ‘숲의 감정’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살 것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연과 동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지혜를 통해 백인 문명의 허위를 접하게 해주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① 톡·톡·톡= 인디언은 절대 취미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아버지는 분개하곤 하셨다.
② 톡·톡·톡= 할아버지는 숲을 손상시키지 않고 숲과 더불어 산다면 숲이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 하셨다.
③ 톡·톡·톡= 개울에서 물을 튀기며 다니는 바람에 옷이 젖었지만 할머니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체로키들은 아이들이 숲에서 한 일을 가지고 꾸짖는 법이 절대 없다.
인디언들은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는다.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물들도 마찬가지라고 할아버지는 손자(이름이 ‘작은 나무’)에게 들려준다. 또 할아버지는 설령 짝짓기를 하고 난 다음이라도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들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인간도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동물들의 번식기인 봄과 여름 동안에는 주로 물고기만 잡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인간이나 동물이나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들려준다. 탐욕을 부리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빼앗기게 마련이며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돼 전쟁 등 위기를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그 예로 꿀벌을 들어 설명해 준다. 꿀벌은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둔다는 것. 그렇지만 그 꿀들은 곰에게 빼앗기고 또 체로키에게 빼앗기고 만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꿀벌의 욕심을 인간의 욕심에 빗대 손자에게 설명해 준다.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똑같다.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 오고 싶어 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④ 톡·톡·톡=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⑤ 톡·톡·톡= 칠면조란 놈들도 사람과 닮은 데가 있어. 이것 봐라. 뭐든지 다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자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보려고는 하지 않아. 항상 머리를 너무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배우는 거지.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의 탐욕에 눈먼 문명 세계를 질타하고도 남는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 짝짓기를 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하나의 마음이 있는데 영혼의 마음이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다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 알만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은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 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⑥ 톡·톡·톡=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⑦ 톡·톡·톡=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⑧ 톡·톡·톡=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神)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⑨ 톡·톡·톡=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다음엔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두 낭비하게 된다.
이 책에는 위스키에 대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스코틀랜드 피를 가진 혼혈 인디언인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와 함께 스코틀랜드 쪽 가계로부터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비법으로 위스키를 만든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위스키 ‘숙성’에 대해 불신했다. “참나무통에 오래 담가둔다고 결코 고급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위스키를 오랫동안 통 안에 넣어두면 나무통의 냄새와 색깔이 위스키에 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래된 숙성 위스키에서 나오는 향기는 통 냄새에 불과하며 부자 위스키 업자들의 농간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진위를 떠나 위스키 애호가들이 한번쯤 새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⑩ 톡·톡·톡= 밤이 되면 살을 에듯이 차가운 바람이 건물을 감싸고돌며 울부짖었다.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겨울바람이 좋았다.
인디언 할머니가 손자에게 강조한 ‘숲의 감정’이 이런 것일까. 그런데 이는 기형도의 시 ‘바람의 집’을 연상시킨다. 기형도는 어린 시절 혹한의 밤 저 산에서 내달리는 겨울바람 소리를 들추며 유년의 날들에 대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최효찬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