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칼럼] ‘열심히’보다는 ‘행복하게’
사람들은 앞만 보고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 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김용택, ‘자화상’)
김 시인과 달리 우리 대다수는 앞만 보고 부지런히 앞질러 간 사람들일 것입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40대 직장노동자입니다.”라는 어느 남성의 블로그 고백처럼 자신을 잊은 채 살기 십상입니다.
물론 우리라고 앞만 보고 달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러지 않으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지요. 경고에 겁먹은 채 무작정 달려온 우리는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같은 경고를 보내면서 삽니다.
아이가 또래들에게 뒤처질까봐,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한마디 영어 연습을 시켜야 안심이 되는 게 우리네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엔 밖에 나가 일을 보면서도 학원엔 갔는지, 시험공부는 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지 않으면 불안한 게 우리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그래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맹신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우리 사회는 스트레스 사회가 됐습니다. 스트레스성 질환인 과잉행동장애가 유치원 어린이부터 나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는 높아만 가, 중고생의 절반가량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지경입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은 직장생활의 정점에 있는 45~59살 장년층 남성 5명 가운데 1명은 우울증 환자이고 그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또다른 조사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놀라운 일은 전체 자살자 가운데 40~50대가 가장 많은 33%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우리 가정, 우리 사회가 이토록 병들어 있는데도 우리는 계속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될까요?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아니, 대안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잊었던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하면 됩니다. 이기는 것이 지고의 가치가 되는 경쟁체제 속에선 1등조차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 입학생이 ‘들어오느라 수고했다’는 교수의 위로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니까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가치를 회복하지 않고는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는 이런 지독한 경쟁사회를 행복이 삶의 중심 가치가 되는 사회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구현하려 노력하는 게 북유럽 복지국가들입니다. 이들 나라의 국민들은 내가 어려워지면 사회가 나를 도울 것이란 확신을 갖고 납세의 의무를 집니다. 우리도 세금을 안 낼수록 좋은 억울한 지출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거나 병들 때를 대비한 보험이자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하려면 국가는 그 혜택이 중산층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에게 미칠 수 있는 복지시스템을 만들어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어줘야겠지요.
경쟁의 쳇바퀴에 빠진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내려면 맹목적으로 열심히 사는 대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종교 등 개인적 차원에서 그 길을 찾을 수도 있지만, 더불어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제도를 만들어내는 데서 그 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출처: 한겨레 신문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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