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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국산1호 `오일쿨러` 양산 기술력…신일본제철도 반했다

성공을 도와주기 2009. 9. 28. 12:44

성산 ‥국산1호 `오일쿨러` 양산 기술력…신일본제철도 반했다

 

1975년 설립 사출성형 공장이 모태
日덤핑 피해 열교환기로 업종 전환
'No 차입경영' 외환위기때도 급성장
日시장공략… 내년 매출 200억원대

권찬용 성산대표가 경기도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출고를 앞둔 대형 열교환기 완제품을 점검하고 있다./김포=정동헌기자dhchung@hankyung.com
지난 20일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가현리에 있는 열교환기업체 ㈜성산.1600㎡ 크기의 조립공장 안에 들어서자 '칫~칫'하는 날카로운 공기마찰음이 귓전을 때렸다. 70여가지 부품이 결합된 완제품 열교환기 표면에 묻은 쇳밥과 먼지를 떨어내는 에어건(Airgun) 소리다. 공장 내부를 소개하던 권찬용 대표(41)는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원통 모양의 열교환기를 가리키며 "세계적인 제철소인 일본의 신일본제철로 보낼 제품"이라며 "현지 검증을 통과하면 줄잡아 수백억원 이상의 주문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1980년 설립된 성산은 발전소 지하철 등 열 발생이 많은 시설이나 장비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를 29년간 만들어온 전문업체다. 열교환기란 이들 시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를 물이나 공기,기름 등의 냉매로 식혀준 뒤 다시 이 냉매가 냉각작용을 하도록 보일러 주변으로 넣어주는 산업설비를 말한다. 뜨거운 설비를 식혀주기도 하지만,차가워진 설비를 덥혀주는 예열기능도 한다.

권 대표는 "차갑게 식은 발전관련 설비가 갑작스럽게 가동되면 균열이 나거나 가동 효율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며 "설비에 필요한 적정 온도를 찾아내 맞춰주는 게 열교환기의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성산은 매출이 50억원 정도로 업계 중간 수준.그러나 기술력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이어서 '강소기업'으로 통한다. 열교환기의 일종인 오일쿨러는 대기업보다 빠른 1982년 일찌감치 양산에 성공했다. 수입장비를 쓰지 않기로 유명한 신일본제철로부터 샘플 요청을 받아 선적을 앞두고 있는 것도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는 국내 첫 사례다.

"10만원짜리 산업용 열교환기는 물론 구리나 티타늄으로 된 수십억원대의 발전소용 열교환기 등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100%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냅니다. 다양한 형태와 규모,재질의 제품과 씨름하다보니 정밀설계와 조립기술에서 차별화할 수 있었습니다. "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자부심이 크다는 얘기다.

열교환기는 안전한 기계 작동을 위한 보호장비 역할도 한다. 대표적인 게 서울지하철과 새마을호 열차의 문이다.

"지하철과 열차의 문은 공기실린더로 움직이고,브레이크도 공기로 작동합니다. 이러다보니 문안의 공기가 쉽게 뜨거워질 수밖에 없죠.이를 식혀주지 않으면 바로 고장이 나고 운행이 멈춥니다. 그래서 한 개가 고장날 때를 대비해 똑같은 스페어(예비) 한 개를 더 장착해두는 게 원칙이죠."

권 대표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92년 평사원으로 성산에 입사한 뒤 지난해 법인 전환과 함께 대표에 취임,창업자인 권오경 회장(72)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창업주 권 회장은 공업고를 나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현대유압이라는 사출성형기 제조업체에서 일한 기술자였다. 늘 묵묵하게 일하는 권 회장의 성실성을 눈여겨봐둔 당시 사장의 권유로 영등포구 양평동에 성형사출기 등의 기계설비 제작 및 설비공사 전문 업체인 '성산기업사'를 차려 1975년 독립했다. 5년 뒤인 1980년 설립된 성산의 모태다.

"아버님은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현대유압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20년간 하셨어요. 동종업체들이 스카우트 전쟁을 벌였지만 '한솥밥 식구를 버릴 수 없다'며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

사장이 그런 권 회장에게 "우리 주문물량만 소화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며 독립을 권한 것이다. 첫 2~3년은 사업이 잘 됐다. 현대유압이 주문하는 기본물량도 있었지만,1970년대 붐을 이룬 발전소 건립에 힘입어 기계설비 제작 주문과 설치공사 의뢰가 쏟아졌다. 섬진강 수력발전소 1,2호기 건설 때 직접 작업반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사의 일부를 함께 맡았던 일본 업체들이 시장 확대에 눈독을 들이고 덤핑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일감이 하루아침에 뚝 끊긴 것.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2년여를 놀던 권 회장은 발전소 공사에서 봐둔 열교환기를 떠올렸다.

맞춤형으로만 생산하다보니 제작 시간이 많이 걸리고,이를 기다리느라 발전소 공기가 길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기본모델을 선택한 뒤 필요한 부분만 맞춤으로 만드는 '절충형'을 도입하면 납품 기간도 짧아지고 가격도 저렴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1980년 회사 이름을 '성산'으로 고치고,열교환기 제조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당시 양평동에서 문래동으로 옮겨 다시 차린 20평짜리 공장에 고객들이 몰려와서 서로 먼저 열교환기를 달라고 선금을 공장 바닥에 던져놓고 가기도 했다"고 권 대표는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는 큰 어려움 없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조금씩이나마 매년 꾸준히 사세를 불려왔고,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부채도 없다. 회사 설립 때부터 '과욕을 부리지 마라'는 창업주의 지론에 따라 외형 확대보다는 기술개발과 고정고객 확보에 주력해온 결과다. 하지만 이같은 '실속경영'은 경쟁업체 절반 가량이 문을 닫은 외환위기 당시 오히려 20~30%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권 대표는 아버지가 일궈놓은 탄탄한 성장기반 덕분에 기술연구와 영업 등에 전념할 수 있었다. 5명의 석사급 연구원으로 구성된 기술연구소를 따로 설립한 것도,제품 설계에서 완제품 조립까지 생산공정을 표준화해 다수의 ISO 인증을 받아낸 것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권 대표는 내년 창립 30주년을 계기로 성산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10여개국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신일본제철에 보낸 샘플이 인정받을 경우 일본 진출도 곧 가능해질 전망이다.

권 대표는 "일본 등 현재 3~4개 업체에서 들어온 주문량이 연간 매출보다 많은 70억원대"라며 "내년에는 수출까지 포함해 약 2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