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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쓴 藥, 한국기업을 글로벌 강자로 만들다

성공을 도와주기 2009. 9. 28. 12:41

‘세계 최고들’ 제치고 선두로 나선 비결

튼튼한 기초체력-오너 체제 과감한 투자
작년 소니 노키아 도요타 GM 주춤할 때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포스코 뜀박질


소니, 마쓰시타, 노키아, 모토로라, 도요타, GM, 신일본제철….

이름만 들어도 ‘세계 최고’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는 글로벌 기업들이지만 올해 세계시장에서 받는 대접은 달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같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이들 기업을 제쳤거나 성장성에서 앞선다고 평가받는다.

이들 기업이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글로벌 구조조정의 승자가 된 것은 분명 지난해 말부터 치솟은 환율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환율을 뛰어넘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이 한국 기업을 글로벌 시장에서 강자로 만들었을까.

○ 외환위기의 경험이 약이 됐다

지난해 금융위기는 세계 자동차시장에 지금껏 겪지 못한 변화를 일으켰다. 어떤 경제위기에서도 커지기만 하던 세계 자동차시장의 수요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빅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몰락했고 ‘10년 불황’도 이겨내 경영학 교과서에 성공 사례로 언급된 일본 도요타마저 흔들렸다.

하지만 현대차는 달랐다. 5%대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7.3%로 끌어올리며 닛산을 제치고 세계 6위 자동차 기업이 됐다. 내실도 좋았다. 2분기의 영업이익률은 8.1%로 도요타(―5.1%) 혼다(1.3%) 폴크스바겐(3.4%)을 크게 앞질렀다.

LIG투자증권 안수웅 리서치센터장은 “1970년대 이후 세 차례의 엔고를 겪으며 비용 절감과 기술력 향상으로 위기를 극복했던 도요타는 급격한 수요 감소를 처음 겪었고 대처가 늦었다”고 진단했다. 2년 전 미국 텍사스에 대형 픽업트럭 공장을 짓는 등 도요타는 최근 7, 8년간 GM을 따라잡으려고 생산 능력 확대에 집중하던 터였다.

반면 80%에 이르던 공장 가동률이 순식간에 60%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은 현대차엔 이미 익숙했다. 1998년 외환위기,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거품 붕괴 때는 가동률이 30% 가까이 떨어졌던 것. 현대차는 국내 공장의 가동률을 낮추는 대신 소형차를 생산하는 중국, 인도의 공장 가동률은 유지했다. 상대적으로 경제위기의 충격이 덜했던 신흥시장을 소형차로 공략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반면 GM은 미국시장만 내다보고 중대형차 개발에 골몰해 시장 다변화에 실패했다.

○ 재벌 체제가 오히려 빛났다

아직도 IT 분야의 원천기술은 일본이 앞선다. 하지만 생산기술은 한국이 한 수 위다. 오너 체제 아래 큰 비용이 드는 과감한 투자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TV. 한때 소니가 주름잡았던 TV 시장은 브라운관에서 디지털로 TV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삼성전자, LG전자가 우뚝 섰다. 그 배경에는 액정표시장치(LCD)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LCD가 브라운관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 2008년에도 수조 원(삼성전자 3조4000억·LG디스플레이 2조6000억 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충남 아산 탕정지구, 경기 파주를 아예 단지로 만들기도 한다. 재벌 체제 아래 ‘패널에서 TV까지’ 수직 계열화된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대신증권 구희진 리서치센터장은 “아날로그 TV는 비슷한 기술력을 가진 많은 부품업체에서 브라운관을 사다 쓰면 그만이었지만 디지털 TV로 넘어가면서 LCD 기술이 TV 회사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며 “소니, 마쓰시타 등 경쟁사는 그런 흐름을 읽지 못했거나 투자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끝없는 신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휴대전화 시장도 마찬가지. 의사결정 구조가 빠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벤츠폰’ ‘아몰레드폰’ ‘초콜릿폰’ 등 트렌드를 주도하며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린 사이에 중저가폰에 주력한 노키아와 ‘레이저폰’ 이후 히트 상품 개발에 실패한 모토로라는 시장점유율이 떨어졌다.

○ 기초체력이 튼튼했다

IT,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서로의 기반이 되는 산업분야가 제각각 기초체력이 튼튼했기에 시너지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있다.

좋은 중화학 소재가 있어야 LCD 패널을 개발할 수 있고 IT, 철강산업이 자동차산업을 키운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부사장은 “대만의 IT기업이 세계시장의 헤게모니를 쥘 수 없는 것은 중화학 공업이라는 산업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독특하게 주요 4개 산업분야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온 점이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