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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반하다” 벽안의 한옥지기 피터 바돌로뮤

성공을 도와주기 2009. 10. 15. 22:39

한옥에 반하다” 벽안의 한옥지기 피터 바돌로뮤

리빙센스 | 입력 2009.08.21 14:37

 





"한옥에 대한 사랑으로 집을 배우다"

대문을 열고 정돈되지 않은 풀길을 따라 걷다 두 번째 대문을 열면 한옥이 객들을 맞이한다. 대문 밖 정경과는 사뭇 다른 세계다. 정원 가운데에는 "이렇게 빨리 클 줄 모르고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나무 그늘과 양옆 대나무 숲 정원이 이곳을 아주 고요하고 청량한 공간으로 만든다. 그곳에 한옥 지킴이 피터 바돌로뮤 씨가 있다.

그가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거주지인 동소문동 한옥 마을의 재개발 지역 지정 취소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서부터다. 앞장서서 한옥을 부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정부, 앞장서서 한옥을 지키는 사람은 외국인…. 우습고 창피한 일이다. 녹음기 단추를 누르고 맨 먼저 한 질문이 "원래 문을 저렇게 매달아놓을 수 있나요?"였으니, 기자 역시 그 부끄러움에 한몫했다.

홍안(紅顔)의 청년이었던 그가 한옥에 대한 사랑을 이어오는 동안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1968년에 한국으로 와 강원도 주문진에서 한옥 생활을 시작한 그는 강릉의 유명한 한옥 '선교장'에서 한옥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1973년 그가 서울로 올라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낯선 단어였다. 잘사는 사람들은 잘 지은 한옥에서 살았다. 당시 한옥이 80만 세대를 넘었다 한다. (지금은 1만 세대도 되지 않는다.) 그는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 머물며 한옥을 찾아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던 끝에 마침내 이곳을 발견했다.

"마당도 넓고, 뒤쪽에 주차할 공간도 있고. 집 상태도 좋았지요. 무엇보다 뒤칸까지 합쳐 80평으로 꽤 큰 평수인데 예산이 맞았어요. 이유는 (소곤소곤)흉가라서…. 3~4년 정도 사람이 살지 않았어요. 도깨비가 나오길 기대했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 실망이 커요."

1975년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이 집을 샀다. 좋은 문짝을 버리고 유리문을 달아놓는 등 전 주인이 저지른 잘못된 실내 장식을 고쳐야 했다. 다행히 본채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지붕을 깨끗이 잇고 기와를 새로 올리는 등의 대수리를 했을 때가 1976년경,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이다.

"한옥은 손 많이 간다, 돈 많이 든다는 등의 말은 다 거짓입니다. 양옥이든 한옥이든 한번 싹 수리해도 30년쯤 지나면 다시 해야 하잖아요. 아파트든 빌라든 63빌딩이든 똑같아요. 이 집은 1970년대에 내 손으로 보수했는데, 아직도 비 새는 일이 없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올라가서 기왓장들이 괜찮은지 검사합니다. 약간 금이 난 게 있으면 솔로 닦고 붙여놓죠. 한옥의 베이스가 되는 나무는 따로 고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제일 약한 사포를 이용해 가끔씩 때만 살짝 벗겨주면 돼요. 이것도 하나의 청소인데 안 한 지 10년은 된 듯합니다."

한국문화유산보호기금의 명예이사이기도 한 그는 한옥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방송 출연과 칼럼 기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 KBS 생방송에서 예정에 없는 이야기를 마구 해버렸더니 PD가 카메라 뒤에서 깜짝 놀라며 뒷목을 잡더란다. 보통 방송 작가들은 '한옥의 매력이 뭐예요?' 따위의 가벼운 질문만 반복한다고.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답답해하는 모습에 기자 역시 식상한 질문을 꿀꺽 삼켰다. 그가 기자 수첩을 가져가더니 지붕을 그리기 시작한다. 용마루, 내릴마루, 이중 내릴마루….

"(대문 윗부분의 지붕을 가리키며) 저것 보세요. 한옥 지붕에는 아~주 부드럽고, 진~짜 가느다란 각도가 있어요. 이렇게 예쁜 선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학날개'라고 불렀다죠? 너무 움푹 파이면 웃기고, 너무 바르면 딱딱하지요. 저걸 만들어준 친구가 문화재청에 등록된 유명한 사람이에요. 내 술 친구지요. 내가 '우리 대문 좀 해~, 술 사줄게, 좀 해줘~' 이렇게 꼬드겨서 OK해준 거예요. 철거된 한옥의 나무를 다 사서 만들었어요. 나무 짜준 사람은 85세였어요. 만들다 쉬고, 막걸리 마시고…. 한 5개월 걸렸어요."

그는 한옥이 신비로운 공간이라며 감탄해마지 않는다. 지붕이며 마루며 폭, 높이, 깊이 모든 비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한옥은 ㄷ자나 ㄱ자로 설계된다. 피터 씨의 집은 2개의 ㄷ자 구조로 안정적이고 포근하다. 구들장도 빼놓을 수 없다. 피터 씨는 처음 들어올 때 보일러 공사를 했지만 아궁이와 구들장을 일부러 없애지 않았다. 이것을 유지해야 한옥이 제 모습으로 오래가기 때문이다. 구들장은 한번 오른 열이 이틀은 갈 정도로 보온성이 뛰어나다. 여름에 습기가 올라올 때 한 번씩 불을 넣어주면 바짝 건조되고 깨끗해지고, 자칫 올라올지 모를 잡내까지 없애준다.

"한옥을 향한 관심을 갈구하다"

"예전에 운현공 보수공사를 할 때 관계자가 조언을 구하러 왔었어요. 불을 때줘야 한다고 하니까 '무서워 무서워' 이러기에 '옆에 소화전 갖다 놓고! 까다롭게 누군가가 지키는 식으로 해! 그렇지 않으면 습기 들어가지, 나무 썩지, 구들 가라앉지…. 손해 봐요'라고 했지요. 근데 내 말을 안 듣더라고."

집을 짓는 데 쓰이는 나무 종류 역시 중요하다. 강도와 색깔과 무늬 선택에 신중해야 하며, '옹이'가 없는 부분만 잘라서 써야 한다. 나무에 '옹이'가 있으면 진이 흐르고 보기 흉하기 때문이다. 이를 완벽하게 건조시켜 써야 한다는 것. 그러나 지금 나라에서 새로 짓는 한옥은 건조 작업도 '옹이'의 유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또 낮아야 할 부엌을 높이고 부엌과 안방 사이의 좋은 나무를 빼버려 한옥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피터 씨는 이토록 신비로운 과학성을 배제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축 건물과 18세기 건물이 함께 공존하면 왜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그에게 서울은 고풍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다. 그러나 또박또박 구획를 나누고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동안 옛 아름다움은 한 움큼씩 떨어져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99. 9%는 '한옥이 불편하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철거하고 새로 지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설업은 세계 제일로 인정받고 있지 않나요? 대한민국 기술로 한옥 고유의 의미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편리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촌에 한옥을 새로 짓는 것은 '보존'이고, 내가 우리 집에 배관 공사를 한 건 '보존'이 아니라며 철거하랍니다. '옛날에 여기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플래카드만 걸어놓고 콘크리트 건물 거리를 만들면 그게 보존인가요? 문화를 지키는 것인가요?"

그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한옥에 대해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한국인들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오래된 집에 뭐 하러 투자를 해, 바보같이. 헐고 콘크리트로 튼튼한 집을 지어야지'라고. 5년의 소송 기간, 그리고 요즘도 상대편에서는 덩치 큰 사내들을 대동하고 쳐들어오곤 한다. 아름다운 한옥의 나무 기둥 곳곳에 붙은 '협박 당할 때 신고할 전화번호' 쪽지가 슬픈 듯 가느다란 바람에 흔들렸다.

우리가 아파트에 열광하고, '마당 있는 콘크리트 양옥'을 부러워하는 동안 문학, 미술, 철학, 과학이 숨 쉬는 한옥이 한 채 한 채 스러져갔다. 우리는 한옥을 더 많이 그리워해야 한다. 적어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 몸담았던 피터 씨보다도 더 말이다.

출처: 리빙센스
사진|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