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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소니와 싸워 이긴 이유

성공을 도와주기 2010. 10. 18. 15:18

삼성이 소니와 싸워 이긴 이유
블로그 정혁준 기자기자블로그
 이 제품은 꼭 사야 하는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었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잇(IT)’ 아이템이기도 했다. 학생과 젊은이의 로망이었다. 조그마한데다가 세련됐다. 하지만, 도도하리만큼 고가였다.
 이 제품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서울 지하철 출퇴근길의 샐러리맨들도, 대학교 교정에서 대학생들도 이 제품으로 음악을 듣고 외국어 공부를 했다. 이 제품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이 제품은 음악시장의 판을 바꿔버렸다. 이른바 블루오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제품은 젊은이와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기업에겐 그들이 만든 제품이 시대의 상징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기업은 혁신적인 기업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젊은 사람이다. 30~40대라면 아마 소니의 워크맨(Walkman)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것은 30대 이상 세대들에게 선망의 기기였다. 워크맨은 모방의 달인이라는 기존 일본제품의 선입견을 허물어버린 일등공신이었다.

 워크맨의 신화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세트는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소니의 공동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해외 출장을 나갈 때마다 휴대용 카세트에 헤드폰을 꽃아 음악을 들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작은 카세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공동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에게 갖고 다니기 쉽게 크기를 줄이고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소형 카세트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아키오의 생각에 반대했다. 일단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시장조사를 먼저 해야 하는데, 그런 시장조사가 없었다. 물론 시장조사를 했더라도, 이어폰이 달린 소형 카세트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창의적인 제품은 시장조사를 통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이어폰이 청각장애인의 보청기 같다고 여겨 이어폰에 거부감을 느꼈다. 게다가 문제는 사이즈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녹음기능을 빼야 했다. 녹음 기능이 없는 카세트를 누가 살까 싶었던 것이다.
 오너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직원들이었다. 결국, 엔지니어들은 제품을 만들었다. 바로 워크맨이었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브랜드 이름이었지만, 아키오는 밀어붙였다.

 ‘인간은 왜 걷는 법을 배웠는가’

 소니가 워크맨을 선보이면서 내놓은 광고였다. 소니는 걸어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정했다. 처음 한 달 동안 반응은 신통찮았다. 하지만, 일본 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바람이 일었다. 워크맨은 미국 여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피들이 워크맨을 택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워크맨은 스스로 외부와 차단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기기였다. 여피들에게 자신만의 음악과 사운드트랙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게 바로 워크맨이었다. 여피족의 잇 아이템이 된 것이다.
 애초 제품 개발 콘셉트와는 180도 달라졌지만, 여하튼 워크맨은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워크맨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전자제품을 갖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휴가철에 큼직한 카세트를 들고 산이며 해변으로 놀러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워크맨은 전자기기를 몸에 지니고 음악을 들으며 다닐 수 있다는, 당시로는 미래지향적인 콘셉트를 만들어 냈다. 손바닥만 한 워크맨은 나만의 가전제품, 나만의 가전제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양인들은 처음 워크맨이 나왔을 때 영문법에도 들어맞지 않다고 조롱했지만, 워크맨은 1981년 프랑스어 사전에 수록된 데 이어 1986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당당히 올라갔다. 소니의 브랜드 이름이었지만, 워크맨은 소형 카세트를 말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였다.




 워크맨은 지난 2006년 3월 일본 사마타이현 공장에서 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총 3억4000만대가 팔렸나갔다. 워크맨은 소니의 혁신적인 브랜드가 됐고, 일본 제품의 첨단 기술을 보증하는 메이드 인 재팬의 전도사가 됐다.
 소니는 트랜지스터라디오, 워크맨, CD, 핸디캠,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독창적이고도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했다. 지금으로 치면 애플 같은 존재였다.

 워크맨과 함께 영원할 것 같은 소니는 1990년대 후반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꾸라진다. 아날로그에서 워낙 기술력이 뛰어나다 보니 쉽게 디지털로 사업 분야를 옮기지 못했다. 소니는 아날로그 시기의 명품에 미련을 두다 디지털 신제품의 개발·생산 타이밍을 번번이 놓친다. 높은 브랜드 가치와 제품 경쟁력을 믿고 외로운 표준전쟁을 했고,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를 과소평가했다. 그리고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도 제때 출시하지 못했다.

 

 기술력에 대한 자만심도 한몫했다. 경쟁사들이 CD 플레이어를 대체하기 위해 MP3플레이어를 내놓자 소니는 음질이 조잡하다며 비웃었다. 경영진은 미니디스크(MD)라는 고음질의 기술만을 고집했다. 소비자는 음질보다 편리하다는 가치를 더 추구하는데도 말이다.
 소니는 핵심사업의 혁신보다는 영화, 엔터테인먼트로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이를 위해 콜롬비아 영화사와 CBS 레코드를 인수했다. 자신들이 만드는 최고의 기기에 담을 영화, 음반,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다. 소니는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 융합에 주력하다. 당시 소니는 삼성전자를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나 만드는 일개 부품업체로 헐뜯었다. 삼성의 약점으로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소니의 소프트웨어 진출은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로 표류하면서 하드웨어 전선에서 싸울 전투력을 잃어버린데 있다.

 소니는 본업인 전자분야에선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신제품 개발에서 경쟁업체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액정화면에 집중한 샤프, 디지털카메라를 특화한 캐논, 가전제품의 경쟁력을 키운 마쓰시타와 달리 소니는 이렇다 할 히트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소니가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새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IT 업계의 주도권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날로그TV 기술에 대한 자만심으로, 디지털 평판 TV 시장에 진출하는 적기를 놓치다 보니, 소니는 LCD 패널을 직접 만들지 못한다. 삼성전자나 샤프로부터 패널을 사 TV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서 간 높은 장벽도 문제였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으로 각 부서가 자신들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부서 이기주의가 도드라졌다.
 결국, 소니는 ‘혁신자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의 예로 자주 거론되는 불명예를 얻는다. 이 말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세계적인 우량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소니의 몰락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2002년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에 뒤진데 이어, 2005년 브랜드 가치와 신용평가 등급, 2006년 TV 판매량, 2007년 특허 출원수에서도 삼성전자에 뒤지는 수모를 맞게 된다.

 소니가 아날로그에 취했을 때 삼성은 디지털에 도전했다. 삼성은 하드웨어 부문을 고수하면서 평면패널 텔레비전과 휴대폰 사업에서 기반을 닦아 나갔다. 삼성전자는 2009년 매출에서 휼렛 패커드와 지멘스를 제치고 세계 전자업계 1위로 올라섰다.
 디지털 시대는 달랐다. 기술이 표준화되고, 표준이 정해지면 기술력 차이는 별로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속도다. 삼성전자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형 반도체와 휴대폰을 개발해 시장을 지배하는 전략을 썼다. 경쟁사보다 성능이 앞선 제품을 내놓아 가격 프리미엄을 누리고, 경쟁사가 뒤쫓아 오는 사이 더 빨리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고 나온 게 사시미 이론이다. “아무리 비싼 사시미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 가격이 내린다. 횟집이나 디지털 전자업체의 재고는 치명적이다. 속도가 모든 것이다. “ 2004년 그가 한 이 말은 삼성전자가 거인 소니를 추월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소니가 세상에서 유일한 제품을 만드는데 온 신경을 썼다면, 삼성전자는 이미 개발돼 있고 컴퓨터에 두루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인 D램에 집중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간과 가격과의 싸움이다. 삼성전자는 가격이 비쌀 때 최대한 수익을 거둔 뒤 경쟁업체가 뛰어들면 값을 낮추는 전략으로 업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D램의 성공은 유사한 생산 패턴의 플래시메모리와 LCD로 이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2005년 “삼성전자의 이익이 일본 상위 전자업체 10개의 이익을 합친 것의 두 배”라고 보도했다. 소니 관계자가 미국 전자제품 판매점 경영진에게 “삼성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묻자 “(삼성전자를) 보고 따라하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기업세계에선 영원한 1위는 없다. 소니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삼성전자는 애플이라는 새내기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여 년 동안 원천기술 없이도 선행투자와 빠른 의사결정으로 반도체, LCD에서 세계 1등을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가 과거엔 1등 뒤에 숨어 뒤따라가면 됐지만 이제 리더가 된 상황이다.
 영국의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칼럼에서 삼성전자를 ‘세일즈머신’으로 비하했다. ‘매출 100조원-영업이익 10조원’을 이룬 세계 최대의 전자업체로 등극했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는 삼성전자를 단순한 판매기계에 빗댄 것이다.
 삼성전자에 부족한 창의성과 소프트파워는 애플의 아이폰 혁명을 계기로 큰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스피드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이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아이폰은 삼성전자를 테스트한 제품이었고 우리를 반성하게 했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136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면 애플의 매출액은 약 60조원 가량으로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에도 못한다. 하지만, 영업이익을 놓고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2009년 삼성전자는 39조원의 매출에, 3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애플은 157억달러(한화 약 18조원)의 매출에, 33억달러(약 4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애플의 뛰어난 실적은, 바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디어와 창의력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시장을 창출하거나 경쟁 방식을 혁신하지 못했다. 독자적으로 개발해 시장을 만들어낸 제품군이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시장이 형성된 곳에 자금을 집중 투자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능을 차별화해 경쟁업체들을 따돌리는 전략을 써왔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경쟁업체들과 좀 더 싸게, 좀 더 다르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잡스는 삼성전자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접목시킨 융합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해 내며 삼성전자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삼성은 속도가 아니라 창의성과 소프트웨어가 받쳐줘야 하는 부문에서 약하다. 누군가 갔던 길을 좇아 맨 앞까지 왔지만 이젠 스스로 길을 열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젠 검증된 시장을 매우 빠르게 따라잡는 ‘캐치업 전략’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를 포함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삼성은 과연 애플에 반전을 일으킬 수 있을까? 물론이다. 전자나 정보기술(IT) 업종은 기술 변화 속도가 크다 보니 기업의 흥망성쇠 주기도 가파르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이 소니에 한참 뒤떨어졌을 때, 회사의 제1목표가 소니 따라잡기였다. 누구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10여년 전에 삼성전자는 소니를 따라잡았다.

 다만, 삼성전자가 ‘다르게 만들기(Make different)’ 보다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에 보다 힘을 실어줄 때라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