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뛰는 연예인들 생존법칙
일요신문 | 주영민 | 입력 2010.10.21 17:55 | 누가 봤을까? 10대 남성, 충청
연예인에게 가장 좋은 수입원은 단연 CF다. 그렇지만 대기업 CF를 비롯한 고가의 출연료가 보장된 CF는 일부 톱스타들이 독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연예인에겐 행사가 가장 좋은 수입원으로 꼽힌다. 연예인들에게 행사는 이른바 젖과 꿀인 셈. 두둑한 출연료에 노동 대비 효과 만점인 행사 출연을 마다할 이 누가 있을까. 행사를 위해서라면 시간 장소를 막론하고 두 팔 걷고 두 발 벗고 나선다는 연예인들. 그들의 행사 생존법칙을 살펴본다.
이벤트 행사 업계에서 톱 MC로 꼽히는 이들은 강호동도 유재석도, 또 행사 MC 출신의 방송인 김제동도 아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본명보다 '뚝딱이' 아저씨로 더 친근한 개그맨 김종석이다. 80년대 초반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어린이 프로그램 전문MC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행사 업계에서도 내로라하는 MC로 발돋움하였다. 특히 어린이 관련 행사뿐 아니라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사회를 비롯해 전국체전 등 각종 체육 대회의 단골 사회자로도 명성을 쌓았다.
행사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노하우는 과연 무엇일까. 그와 함께 자신의 기업 송년회를 주최했다는 한 기업 CEO는 그의 진행을 '감동 진행'이라고 표현한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전 직원이 사가를 제창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사가 제창 시간에 다음 진행 순서 등을 살펴보는 보통의 MC들과 달리 그는 큰 목소리로 직원들과 함께 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알고보니 그는 이날의 사회를 위해 며칠 전부터 해당 기업의 사훈과 사가를 완벽하게 외워왔던 것. 행사의 MC로 자신 역시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행사 철학에 모든 임직원이 크게 감동받아 행사의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고 한다. 이날 이후 그는 해당 기업의 행사에 MC로 늘 초대됐고, 그의 이런 감동 진행은 기업체 행사 5000여 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주기도 했다.
행사 진행에도 연예인마다 전공 분야가 있다. 특히 마라톤 대회 관련 행사라면 항상 만날 수 있는 얼굴이 있으니 바로 개그맨 배동성이다. 그는 2000년 봄 첫 마라톤 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30~40회씩 300여 회의 마라톤 행사를 진행한 마라톤 전문 MC다.
그가 하고 많은 행사 가운데 제일 힘들다는 마라톤 전문 MC에 애착을 갖고 꾸준히 활동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지금도 자신의 첫 마라톤 행사에서 감을 못 잡고 4시간여 동안 파이팅만 주구장창 외쳤던 아픈 기억이 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했음은 물론,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고. 그때부터 그는 각종 마라톤 대회의 행사 취지를 공부함은 물론, 아마추어 동호인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우승 후보자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맞춤형 MC로 탈바꿈했다. "배동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게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라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된 것.
그가 마라톤 대회 MC를 맡으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두 번의 순간을 떠올린다. 한 번은 경기 도중 사망한 선수의 소식을 들었을 때다. 이날은 그가 연이은 행사 탓에 목상태가 좋지 않았고, 때문에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몸 풀기를 도와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충분히 몸 풀기를 도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자신 역시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행사진행을 하며 동시에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내심 떠올리며 도전했지만, 그의 도전은 5㎞도 채 안 돼 끝나고 말았다고. 그는 4시간 사회를 보는 것보다 5㎞를 뛰는 게 더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팬 미팅과 콘서트를 비롯한 각종 한류스타의 행사를 도맡아하는 이들도 있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로는 개그맨 김현기를 꼽을 수 있다. KBS 공채 13기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 열심히 갈고닦은 일본어 실력으로 2003년 우연히 그룹 신화의 일본 팬미팅 사회를 맡게 됐다. 운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노력의 대가였을까. 이때부터 마침 한류스타들의 일본 진출 러시가 시작됐고, 그는 송승헌 권상우 동방신기 이서진 등 내로라하는 한류스타들의 팬 미팅을 도맡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어 실력만 좋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터. 그는 일본 팬들과 한국 팬들의 차이점을 분석해 친절한 진행을 위해 힘을 썼고, 통역이 미처 전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유머러스하게 전하며 대표적인 한류MC로 불리게 됐다. 틈새시장 정복에 성공한 김현기는 현재 일본 NHK 한국어강좌는 물론 일본 영화에까지 출연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론 행사에 대한 연예인의 욕심이 소속사와의 마찰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연예계 톰과 제리라고도 불리는 개그맨 박성호와 박준형이다. 몇 년 전까지 박준형이 운영하는 기획사에 속해 있던 박성호는 당시 박준형과 행사 출연으로 인해 잦은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소속 연예인의 수입을 관리하는 회사의 입장에선 연예인의 행사 수입도 함께 나눠야 하지만, 연예인 입장에선 회사가 아닌 개인에게 섭외가 온 행사는 비자금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것. 때문에 박성호는 회사 몰래 지방 행사를 많이 뛰었다고 하는데, 하늘 아래 비밀은 없는 법. 이는 곧 박준형의 귀에 들어갔다.
절친한 사이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싶다는 박준형의 입장을 전해들은 박성호.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며칠 뒤 박준형은 박성호에게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촬영차 지방에 들렀다는 박준형. 우연히 길거리에서 밤업소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 '인기개그맨 박성호 연말까지 독점출연!'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사외 활동이 금지된 아나운서들도 행사에 대한 욕심은 마찬가지다. 몰래 행사로 유명한 아나운서 K는 회사에 있는 시간보다 사외 영리활동, 즉 행사를 뛰는 시간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올 정도다. 이로 인해 지금껏 쓴 시말서만 모아도 수십 권 분량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나운서실로 불려가 고참선배에게 한 시간 가까이 훈계를 들은 K. "회사에서도 눈감아주는데 한계가 있으니 당분간 처신 잘하라"는 선배 아나운서의 말에 K는 반성의 눈빛과 함께 "다시는 행사를 다니지 않을 테니 이번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돌아서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갑자기 울린 그의 휴대폰. "아! 제주도요? 얼마든지 갈 수 있죠. 몇 월 며칠 몇 시죠? 네~ 감사합니다!" 이미 K의 행사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리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
이벤트 행사 업계에서 톱 MC로 꼽히는 이들은 강호동도 유재석도, 또 행사 MC 출신의 방송인 김제동도 아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본명보다 '뚝딱이' 아저씨로 더 친근한 개그맨 김종석이다. 80년대 초반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어린이 프로그램 전문MC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행사 업계에서도 내로라하는 MC로 발돋움하였다. 특히 어린이 관련 행사뿐 아니라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사회를 비롯해 전국체전 등 각종 체육 대회의 단골 사회자로도 명성을 쌓았다.
행사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노하우는 과연 무엇일까. 그와 함께 자신의 기업 송년회를 주최했다는 한 기업 CEO는 그의 진행을 '감동 진행'이라고 표현한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전 직원이 사가를 제창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사가 제창 시간에 다음 진행 순서 등을 살펴보는 보통의 MC들과 달리 그는 큰 목소리로 직원들과 함께 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알고보니 그는 이날의 사회를 위해 며칠 전부터 해당 기업의 사훈과 사가를 완벽하게 외워왔던 것. 행사의 MC로 자신 역시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행사 철학에 모든 임직원이 크게 감동받아 행사의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고 한다. 이날 이후 그는 해당 기업의 행사에 MC로 늘 초대됐고, 그의 이런 감동 진행은 기업체 행사 5000여 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주기도 했다.
행사 진행에도 연예인마다 전공 분야가 있다. 특히 마라톤 대회 관련 행사라면 항상 만날 수 있는 얼굴이 있으니 바로 개그맨 배동성이다. 그는 2000년 봄 첫 마라톤 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30~40회씩 300여 회의 마라톤 행사를 진행한 마라톤 전문 MC다.
그가 하고 많은 행사 가운데 제일 힘들다는 마라톤 전문 MC에 애착을 갖고 꾸준히 활동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지금도 자신의 첫 마라톤 행사에서 감을 못 잡고 4시간여 동안 파이팅만 주구장창 외쳤던 아픈 기억이 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했음은 물론,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고. 그때부터 그는 각종 마라톤 대회의 행사 취지를 공부함은 물론, 아마추어 동호인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우승 후보자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맞춤형 MC로 탈바꿈했다. "배동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게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라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된 것.
그가 마라톤 대회 MC를 맡으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두 번의 순간을 떠올린다. 한 번은 경기 도중 사망한 선수의 소식을 들었을 때다. 이날은 그가 연이은 행사 탓에 목상태가 좋지 않았고, 때문에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몸 풀기를 도와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충분히 몸 풀기를 도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자신 역시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행사진행을 하며 동시에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내심 떠올리며 도전했지만, 그의 도전은 5㎞도 채 안 돼 끝나고 말았다고. 그는 4시간 사회를 보는 것보다 5㎞를 뛰는 게 더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팬 미팅과 콘서트를 비롯한 각종 한류스타의 행사를 도맡아하는 이들도 있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로는 개그맨 김현기를 꼽을 수 있다. KBS 공채 13기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 열심히 갈고닦은 일본어 실력으로 2003년 우연히 그룹 신화의 일본 팬미팅 사회를 맡게 됐다. 운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노력의 대가였을까. 이때부터 마침 한류스타들의 일본 진출 러시가 시작됐고, 그는 송승헌 권상우 동방신기 이서진 등 내로라하는 한류스타들의 팬 미팅을 도맡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어 실력만 좋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터. 그는 일본 팬들과 한국 팬들의 차이점을 분석해 친절한 진행을 위해 힘을 썼고, 통역이 미처 전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유머러스하게 전하며 대표적인 한류MC로 불리게 됐다. 틈새시장 정복에 성공한 김현기는 현재 일본 NHK 한국어강좌는 물론 일본 영화에까지 출연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론 행사에 대한 연예인의 욕심이 소속사와의 마찰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연예계 톰과 제리라고도 불리는 개그맨 박성호와 박준형이다. 몇 년 전까지 박준형이 운영하는 기획사에 속해 있던 박성호는 당시 박준형과 행사 출연으로 인해 잦은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소속 연예인의 수입을 관리하는 회사의 입장에선 연예인의 행사 수입도 함께 나눠야 하지만, 연예인 입장에선 회사가 아닌 개인에게 섭외가 온 행사는 비자금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것. 때문에 박성호는 회사 몰래 지방 행사를 많이 뛰었다고 하는데, 하늘 아래 비밀은 없는 법. 이는 곧 박준형의 귀에 들어갔다.
절친한 사이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싶다는 박준형의 입장을 전해들은 박성호.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며칠 뒤 박준형은 박성호에게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촬영차 지방에 들렀다는 박준형. 우연히 길거리에서 밤업소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 '인기개그맨 박성호 연말까지 독점출연!'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사외 활동이 금지된 아나운서들도 행사에 대한 욕심은 마찬가지다. 몰래 행사로 유명한 아나운서 K는 회사에 있는 시간보다 사외 영리활동, 즉 행사를 뛰는 시간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올 정도다. 이로 인해 지금껏 쓴 시말서만 모아도 수십 권 분량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나운서실로 불려가 고참선배에게 한 시간 가까이 훈계를 들은 K. "회사에서도 눈감아주는데 한계가 있으니 당분간 처신 잘하라"는 선배 아나운서의 말에 K는 반성의 눈빛과 함께 "다시는 행사를 다니지 않을 테니 이번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돌아서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갑자기 울린 그의 휴대폰. "아! 제주도요? 얼마든지 갈 수 있죠. 몇 월 며칠 몇 시죠? 네~ 감사합니다!" 이미 K의 행사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리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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