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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체력 튼튼’ 중소기업, 위기 발판삼아 ‘점프’

성공을 도와주기 2013. 6. 12. 11:31

 

제4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중소기업 강국의 길

외환위기로 연쇄부도날 때
쿠쿠전자·유성물산 등 4곳
1997년 기점으로 고속성장

혁신 바탕 4곳중 3곳 1위 수성
“고객중심 제품 개발한 덕분”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각 분야에서 업력이 30년 이상 된 2000개 국내 중소기업의 매출 추이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4개 기업이 기존에 낮은 기울기(저성장)로 사업을 유지하다가 모두 비슷한 시점에서 기울기가 크게 올라가는(고성장) 변화 양상을 보이며 꾸준히 성장해온 것이다.

신 연구위원은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만나 이런 내용을 공개하며 “위기 상황에서 기존 양적 성장과 다른 질적 변화가 이들 기업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4개 중소기업은 유성물산교역, 쿠쿠전자, 에넥스, 모나미 등이다.

이들 기업이 다른 기업과 다른 성장세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앞서 10여년 동안의 저성장 기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압력밥솥을 비롯한 생활가전 전문기업 ‘쿠쿠전자’의 구본학(44) 대표이사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당시 (성장세) 전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1978년 창립 이후 전기밥솥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쌓아온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 밥솥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었죠.”

 

저성장 기조를 보이는 쿠쿠전자의 전반 20년은 이 회사가 대기업에 전기밥솥을 납품하는 기업과 기업 간(비투비·B2B) 사업을 하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은 쿠쿠가 자체 기술력 확보에 중점에 두면서 ‘기초체력’을 닦는 기간으로 작용한 셈이다. 4개 기업은 모두 이 기간 동안 자신 있는 분야에서 ‘한 우물’을 충실히 팠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성물산교역은 ‘유동골뱅이’로 대표되는 통조림 사업에, 에넥스는 부엌가구 사업에, 모나미는 필기구 시장에 매진해 왔다.

 

쌓은 자신감은 위기를 지나면서 빛을 발했다. 쿠쿠전자는 1998년 자체 브랜드 ‘쿠쿠’를 출시했고, 1년3개월만에 국산은 물론 당시 주부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일제 밥솥까지 모두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구 대표는 “그동안 쌓아온 열제어기술을 적용해 가장 많은 고객이 원하는 차진 밥맛을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넥스를 제외한 3개 기업은 모두 현재까지 각자 주력 사업분야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대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은 점차 변화와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기 마련이다. 꾸준한 성장세의 바탕에는 틀을 깨는 노력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다 2003년 가업을 이어 받아 경영에 나선 강승모(51) 유성물산교역 대표는 회사의 시스템을 세우는 데 주력했다. 많은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당시 유성물산교역 역시 ‘월급날 경리직원이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다 봉투에 담아 전달할 정도’로 제도가 미비했다. 이 회사 최호용 경영지원실장은 “새 제도에 대해 ‘우리 회사는 특수한 데, 현실도 모르는 사람이 사고친다’며 사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바꿔가는 과정에 왕도는 없었다. 최 실장은 “대화와 설득으로 차근차근 추진했다. 특수하지 않다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변화를 거부하다 퇴출된 다른 회사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고 말했다.

비투비(B2B) 기업이었던 쿠쿠전자는 비투씨(B2C) 기업으로 변신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 혁신을 일으키는 데 주력했다. 구 대표는 “당시 대다수 제조사들은 고객이 아닌 제조사 중심의 사고로 제품을 개발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고객은 항상 옳다’는 고객지향적인 사고를 공유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비롯된 대표적 제도가 고객 문의사항이 접수되면 담당자 및 팀장, 임원 뿐 아니라 사장에게까지 메일이 발송돼 동시에 공유하는 ‘고객관계관리시스템’이다.

 

심한 경기침체와 대기업 중심 혁신의 한계로 외환위기 못지 않는 위기로 불리는 요즘, 이들은 ‘강한 중소기업’의 탄생 요건으로 ‘공정’과 ‘사람’을 꼽았다. 강승모 대표는 “조세나 금융 분야 지원보다 중소기업이 크기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 공정한 시장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현재 한국의 창조적인 인재들은 모두 대기업으로만 가고 싶어한다. 이들이 중소기업에서 창조적인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성하는 것이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끝>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중소기업 생존·성장 위해 ‘관계금융’ 필요

결국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자금’에 달려있다. 중소기업이 금융권으로부터도 약자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관계금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검찰은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과거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던 시절 중소기업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불공정 행위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은 중소기업 3000여 곳에 대해 대출 가산금리를 편법으로 올려 18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은행권으로부터 돈을 빌릴 때의 문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대출금리는 평균 5.52%로, 대기업(5.16%)과 0.36%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2001년 이후 가장 격차가 컸던 2007년(0.74%포인트)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2001년 0.11%포인트에 비하면 3배 이상이다.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자, 금융권이 이에 발맞추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잘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1분기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사상 최대인 11조원으로 늘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4조3000억원)과 비교해도 3배 가까이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중소기업 경영상황 파악 설문조사’를 보면, 금융권의 중소기업 자금지원 강화 노력에 대해 76.5%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차이는 금융권의 대출이 우량 중소기업에만 집중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은행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담보 대출을 살펴보면, 고신용기업(1~3등급)은 전년보다 20.1% 늘어난 반면 저신용기업(7~10등급)은 10% 줄었다.

이 때문에 금융사가 각 기업들과 장기간 관계를 쌓으면서 필요한 곳에 적절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관계금융’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서경란 팀장은 “금융사들이 회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우량 기업에 대출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를 오랜 기간 축적하고 이를 공유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권오성 기자 ljh9242@hani.co.kr


중소기업 시리즈 마치며

청년 벤처에 치우친 ‘창조경제’ “일하고 싶은 중기 만들어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때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경제민주화를 국정 운영의 중요 가치로 내세웠다. <한겨레>가 지난 4월15일부터 ‘중소기업 강국의 길’ 기획 연재물을 내놓은 배경이다.

이번 연재물에선 히든 챔피언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강한 중소기업들이 국가 경제와 고용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로 1부를 시작해 2부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 3부 중소기업 간 네트워크로 국내외에서 강한 중소기업을 키운 요소를 ‘상하좌우’로 두루 살폈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정책은 청년 벤처 육성에 크게 기울어 다른 요소들의 추진은 더딘 형편이다. 그나마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의 주요 부문으로 내세운 원·하청 관계 부문에서 약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대한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부여와 부당 단가인하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등을 처리했다. 하지만 기업의 크기에 따라 불이익을 받지 않는 공정한 경쟁체제 확립을 위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근절 등은 아직 미결 과제로 남아 있다. 작은 기업들이 상승효과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중소기업 간 협업이나 클러스터 정책의 경우는 기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강한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해선 신생 벤처기업 육성에 머물고 있는 모호한 ‘창조경제’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기업과의 관계, 중소기업 간 관계를 고려한 구체적인 청사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소기업 인력 문제에 대해 연구해온 박동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녹색을 창조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새로운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이 청년들이 일하러 가고 싶은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정부부처를 아우르는 밑그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기초체력 튼튼’ 중소기업, 위기 발판삼아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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