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아버지의 심장 / 김현정 |
그는 한 대학병원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요즘 부쩍 가기가 싫어졌다. 예약을 해놓아도 한두 시간씩 멀뚱멀뚱 기다리기 일쑤고,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만난 담당 의사는 컴퓨터만 흘낏 들여다보고는 “검사 결과 다 괜찮으시네요. 육개월 후에 뵙지요” 이 두 문장의 말이 전부다. 그리고 씩 웃고는 옆 진료실로 휙 사라진다. 환자 본인은 하나도 안 괜찮은데 의사는 괜찮다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 의사는 내 상태에 관심이 없구나.’ 결국 칠년 만에 내린 결론이었다. 딸은 이 얘기를 듣더니 대뜸 왜 진즉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른 의사한테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데를 가보았지만 검사만 반복되고 별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인가 체념이 들면서도 한 군데만 더 가보기로 했다. 새로운 의사와 예약한 날, 예고도 없이 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진료실 앞에 작정한 듯이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혼자 보고 가면 되는데 뭐하러 왔느냐고 성가시다는 손사래를 했지만 실은 마음이 든든했다. 간호사가 호명을 하더니, 의사를 만나기 전에 받을 기본검사가 있다고 한다. 그대로 따르려는데 딸이 막아선다. “바로 얼마 전에 받아놓은 검사가 있으니 안 받겠어요.” 그가 괜찮다는데도, 딸은 야무지게 딱 자른다. ‘병원 한두 번 다녀보나? 어디 가도 의사 한 번 만나려면 그전에 뭐 기본적으로 받고 시작하는 게 많은데, 딸애가 눈치 없이 군다. 괜히 의사 비위 거슬러서 좋을 게 없는데….’ 여하튼 그는 그냥 반복된 검사 없이 의사를 만났다. 다행히 이 의사는 증상에 대한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가져간 검사지와 처방전을 가만 들여다보더니 약이 센 것 같다며 먹고 있는 네 가지 약 중에 두 가지를 빼보자고 했다.
딸은 아차 싶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걱정한다고 하면서도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건지 한 번도 확인하려고 해보지 않았다. 그저 ‘최고로 손꼽는 병원에 최고의 대가라고 소문난 의사에게 다니고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치료받고 있을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일만은 아니었나 보다.
거짓말처럼, 그날로 아버지는 감쪽같이 좋아졌다. 거뜬하다. 아마 그동안 약에 취해 있었나 보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괜히 고생하고 걱정했다. 역시 약은 안 먹는 게 좋고 의사는 잘 만나고 볼 일이다. 힘들었던 모든 증세가 사라지면서 다른 원망도 함께 사라졌다. 그저 고맙다.
한 사람의 의사만 믿고 따르기에는 난감한 때가 있다. 믿고 다녔는데도 병이 낫지 않을 때, 더구나 의사로부터 그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덜컥 수술부터 받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친절하긴 한데 혹시 상업적 목적에 낚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 환자들은 내키지 않아도 ‘닥터 쇼핑’에 나선다. 이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사회적으로 의료 비용을 증가시키는 소모적인 현상이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증가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당분간 닥터 쇼핑의 당위성은 유효할 것 같다.
김현정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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