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고서
외환위기 이후 가계-기업 동반성장 깨져
기업편향적 정부 처방이 내수부진으로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성장의 혜택은 가계와 기업으로 고루 돌아갔다. 1975~1997년 국민총소득이 연평균 8.9%씩 오르는 동안 가계와 기업의 소득도 각각 8.2%, 8.1%씩 따라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이런 동반 성장의 시스템이 깨졌고, 시간이 갈수록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2005~2010년 국민총소득이 연평균 2.8% 상승했지만 가계 소득은 1.6%, 기업 소득은 19.1% 증가했다.이러한 ‘기업 편향적’인 소득배분이 우리 경제가 처한 저성장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일 동반성장연구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심포지움에서 ‘한국경제의 저성장 구조와 동반성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기업 편향적 소득 배분이 저성장 탈출의 장애 요인”이라고 밝혔다. 경제성장에 견줘 가계소득 증가가 부진해 소비와 저축은 줄고 가계부채는 늘어나는 구조가 저성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의 진단처럼 가계 소득은 게걸음 수준이다. 가계 소득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임금 소득(실질 기준)이 2008년 1분기 이후 정체되고 있다. 자영업자 소득은 2001년부터 크게 둔화됐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 역사상 실질임금이 6년 이상 지속적으로 정체된 때는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한번도 없었다”며 “실질임금이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실질 노동생산성에 맞춰 증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임금 상승이 생산성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경제 저성장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처방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 부진이 저성장의 원인이라고 보고 지난 정부에서도 대규모 법인세 감세를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투자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경제도 활성화하지 않았다”며 “설령 투자 활성화로 국민총소득이 더 늘어난다 하더라도 경제가 창출한 부가가치가 기업에 편중돼 배분되는 시스템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가계 소득은 늘지 않고 내수도 계속 부진해 우리 경제가 처한 위험 요인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자금이 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에 흘러들어가기만 한 채 나오지 않는 현상”을 해소하고, 임금 없는 성장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동반 성장을 내놨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서 고용과 소득을 늘려 성장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