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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속 발암물질, 기준치 5배나

성공을 도와주기 2014. 8. 13. 09:50

[취재파일] 터널 속에서 당신을 노리는 것들

SBS | 조기호 기자 | 입력 2014.08.13 09:18

 

매일 아침 출퇴근길에 터널을 지나는 운전자분들 많으시죠? 꽉 막힌 터널 구간에서는 어떻게 다니시나요? 창문은 꼭 닫으신다고요?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공기 순환 모드는 어떤 상태로 해놓고 계신가요? 외부 공기가 들어오게 그냥 놔두시나요 아니면 차단까지 하고 지나시나요?

터널 속은 자동차 때문에 유해물질이 많을 거다, 이런 생각 해보셨을 텐데 이게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SBS가 측정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저희는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김조천 교수팀과 함께 퇴근 시간대 터널 속의 공기를 포집해서 성분을 분석해봤습니다. 그랬더니,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의 농도가 기준치보다 5배 정도 검출됐습니다. 벤젠의 기준치가 5㎍/㎥인데 24.9㎍/㎥ 나온 겁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발암물질로 지정된 초미세먼지도 기준치보다 최대 3배나 검출됐습니다. 장기간 노출되면 뇌손상을 줄 수 있는 톨루엔과 에틸벤젠도 상당량 포함돼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1km 이상 되는 터널은 모두 6개입니다. 남산 1,2,3호 터널과 홍지문 터널, 정릉 터널 그리고 구룡 터널이 그것들이죠. 이번에 저희가 공기질을 측정한 터널은 남산1호 터널과 홍지문 터널 두 곳이었습니다. 남산1호 터널은 진입부터 통과하기까지 20분쯤 걸렸고요, 홍지문 터널은 10분 남짓 걸렸습니다. 두 곳 다 위에서 말씀드린 유해물질이 검출됐습니다. 정체가 더 심했던 남산1호 터널의 농도가 훨씬 짙었습니다. 두 곳 모두 중간 지점에서 유해물질의 농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터널 가운데 유해물질이 많이 몰려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터널 속 유해물질에 운전자는 얼마나 노출 되고 있을까요?

만약 창문을 안 닫고 터널 속에 20분 정도 갇혀 있다면 기준치의 5배나 되는 벤젠(1급 발암물질이죠)을 거의 그대로 마시는 셈이 되고요. 창문은 닫았지만 외부 공기가 들어오게 공기 순환 모드를 설정했다면 그보다 조금 적은 70% 정도를 마시는 셈이고요. 마지막으로 창문도 닫고 외부 공기도 차단하셨다면 벤젠을 흡입하는 정도가 30% 이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차량 구석구석을 철통 방어한다고 해도 터널 안에서 차가 옴쭉달싹 못 하는 동안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운전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쯤 되면 분통이 터집니다. 다른 터널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산 터널의 경우는 지나갈 때마다 혼잡 통행료로 꼬박꼬박 2천 원씩 걷어가면서 왜 운전자 건강권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사실 환경부와 서울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터널 안에 벤젠과 초미세먼지 등 유해물질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인지했던 시기가 아무리 낮춰 잡아도 2011년이었죠. 서울 보건환경연구원이 조사해 발표한 '서울 시내 터널의 대기오염물질 농도 추이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서 말이죠. 이 논문에 따르면 터널에 대한 조사는 2007년부터 4년 동안 분기별로 일주일씩 남산 3호 터널과 홍지문 터널 안의 유해물질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이미 벤젠과 톨루엔 자일렌, 에틸벤젠 등이 검출됐고 인체에 축적될 경우 암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 호르몬 벤조피렌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 당국은 그냥 정말 '인지'만 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더군요. 현재 터널 내 환기 장치를 가동하는 기준은 일산화탄소 농도가 얼마나 진해졌느냐와 가시거리가 얼마나 나빠졌느냐 이 두 가지뿐입니다. 벤젠이나 초미세먼지 같은 발암물질을 실시간 측정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측정 기준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물질이고 사람들이 그냥 모르고 지나가니까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터널 이용자들의 건강권을 생각한다면 당국은 하루라도 빨리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조기호 기자cjkh@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