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먼지·찬바람이 원인 9~10월에 환자 급증…콧물·두통 등 감기와 유사
환자 5명중 1명은 어린이…심하면 성장에도 지장 줘
직장인 박유정 씨(31)는 요즘 '재채기'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다. 코끝에서 시작된 간지러움은 수차례 연이은 재채기와 콧물 범벅으로 끝이 난다. 문제는 이 같은 패턴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된다는 것. 코와 귀 부위는 계속 가렵고,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을 닦느라 좀처럼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환절기라서 코감기에 걸린 것으로 생각한 박씨는 감기약을 복용했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을 찾은 그는 '알레르기 비염' 진단을 받았다.
환절기인 9~10월에 재채기, 맑은 콧물, 코막힘 증상이 나타나면 알레르기성 비염을 의심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알레르기 염증 반응으로 나타나는 코 점막 질환이다. 감기로 여기고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천식이나 축농증, 중이염이 생길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2008년 45만7032명에서 2013년 60만1026명으로 5년 새 31.5% 증가했다. 또 환절기인 9~10월 전체 환자의 3분의 1 정도인 20만6261명이 지난해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 비염은 집먼지진드기와 집먼지 등이 항원이 돼 일년 내내 나타나는 '통년성'인 경우와 꽃가루가 원인이 되는 '계절성(꽃가루 알레르기)'으로 구분된다. 화분증으로 불리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봄이나 가을 등 환절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봄에는 포플러, 소나무, 오리나무 등과 같은 수목화분이, 가을에는 쑥, 돼지풀 등 잡초화분에서 나오는 꽃가루가 원인 항원으로 지목된다.
정승규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가을철 꽃가루는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기승을 부리는데, 특히 쑥의 꽃가루가 알레르기 비염을 많이 유발한다"며 "집먼지진드기로 인한 알레르기 비염 역시 가을철 환절기부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겨울철 내내 비염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알레르기 비염에 걸리면 숙면을 취하기 힘들어지고, 성장 호르몬이 충분히 나오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만 9세 이하 어린이가 전체 환자의 20% 수준으로 가장 많다. 알레르기에 민감한 시기인 데다 학교나 유치원 등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동안 꽃가루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성인 환자는 업무 및 학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알레르기 비염이 심할 경우 두통과 목통을 동반할 수 있어 집중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알레르기 비염의 3대 증상은 갑작스러운 재채기, 맑고 흐르는 콧물, 코막힘이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알레르기 비염은 콧속의 방어막 역할을 하는 점막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통과시켜 염증을 일으킨다"며 "이때 분비되는 염증 매개체들이 코를 자극하면서 증상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봄이나 가을철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꽃가루 양이 증가하는 동시에 일교차가 커지는 등 코 점막을 자극하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또 환기가 잘 되지 않은 사무 공간도 알레르기 비염을 유발한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오염 입자가 일차적으로 코점막을 손상시키고, 꽃가루와 같은 알레르기 물질들이 2차로 점막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에 노출되면 재채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한 번 할 때 5~6회, 많게는 10회 이상 계속하게 된다. 심한 경우 탈진 상태에 이른다.
또 물처럼 맑은 콧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목구멍 뒤로 넘어가기도 한다. 눈이 가렵거나 충혈되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천식이 있는 환자라면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은 체질적으로 민감한 코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식욕이 떨어지거나 구역질이 나고 밤에 잘 때 코를 심하게 고는 등 증세가 나타난다.
최동철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주로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등이 발병 원인이지만 향수, 담배연기, 찬바람 등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다"며 "특히 꽃가루 알레르기 비염은 아침 해 뜰 무렵부터 오전 9시까지 증세가 심하다"고 설명했다.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물질을 파악하고, 접촉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병원을 찾으면 간단한 피부반응 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파악할 수 있다.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곰팡이 등 50~60종의 원인 물질을 피부에 발라 피부 반응을 살피는 방식이다.
기존 병력이나 가족력을 고려한 검사방법도 있다. 실제 부모 중 한쪽이 알레르기 질환을 가졌을 때는 40%, 양쪽 모두 알레르기 질환을 앓을 경우 70%의 확률로 자녀에게 알레르기 질환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알레르기 비염이 일부 유전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의료계에선 판단하고 있다. 강혜련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가족력을 통해 알레르기 성향을 파악하고 부비동 방사선 촬영이나 비강 내시경 검사 등을 시행한다"며 "이 밖에 세포검사나 항원혈액검사 등으로도 원인 물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약으로는 항히스타민제와 코에 뿌리는 국소용 스테로이드제가 쓰인다. 식염수를 코에 뿌리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약물치료가 효과 없다면 면역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알레르기 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는 날엔 가급적 외출을 피하고, 밖에 나가야 한다면 안경이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집에 들어올 때는 옷을 털고 들어오고, 바로 세수해 몸에 묻은 꽃가루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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