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비전-핵심가치와 '오컴의 면도날'
영미 문화권에서 ‘오컴의 면도칼(Ockham’s Razor)’이라는 말이 있다. 14세기 런던 근교 오컴지역의 윌리엄 수도사가 자신의 책에 언급한 개념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복수의 주장이 모두 그럴 듯하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좋은 해답’이라는 뜻을 상징한다.
700년 전의 말이 여전히 통하는 것은 현대에도 오컴의 면도칼이 발라내야 할 군더더기 가설이 많다는 뜻이다. 홈페이지의 기업 소개를 검토하면 앞부분에 반드시 기업의 사명, 비전, 핵심가치가 설명된다. 세가지 키워드는 늘 같이 움직인다. 사명, 비전, 핵심가치는 기업의 성격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 임에도, 그 내용이 장황하고 엇비슷하여 구별이 쉽지 않다. 각 키워드의 개념합의가 사회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 이 세가지 키워드에 대하여 오컴의 면도칼을 들이대 보고자 한다.
1. 미션(사명)
기업의 존재이유를 설명한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와 같이 기업이 세상에 '설립된(태어난) 이유'가 사명이다. 사명감이 투철한 조직(기업)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미션이나 사명이 사익의 추구를 넘어, 공익성을 내포할 때 조직원의 충성심과 단결심, 고객의 충성도를 모으는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미션은 대개 시간개념은 포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션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션이 완성을 향해 무한히 수렴할 수는 있을 지라도 완결에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잘 표현된 미션이다. 단기간에 완성될 미션은 프로젝트의 특성을 가지기에 영속을 지향하는 회사의 미션으로는 적정하지 않다. 미션이 달성되었다면 회사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사는 부단히 미션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 미션을 재정의하는 일은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재정의하는 일과 같다.
2. 비전
비전이라 함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의 기업의 모습이다. 비전은 시간개념이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기업들이 비전을 설명하면서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이는 적정한 비전이 아니다. 비전은 망원경으로 먼 곳을 내다 보듯이, 5년후, 10년후, 20년후, 30년 후의 기업이 되고자 하는 멋진 모습을 상징한다.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지 않은 비전 선언문은 도대체 언제쯤 그러한 모습을 달성하려는지 모호하다.
비전에 시간개념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30년 한 세대 안에 달성할 비전이 현실감 있고 적정하다. ‘2025 비전 선언문’이라고 정했는데, 2025년이 되어도 비전의 달성이 멀리 있을 때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 많은 비전 선언문에 시간의 개념이 누락된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달성 가능하지만 도전적인 비전 선언문이 답이다. 망원경으로 멋진 오아시스를 발견했는데, 어제쯤 도착할지도 모르는 거리에 있다면 비전이 아니라 신기루와 같다. 한편, 모호한 비전 선언문은 기업의 사명과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비전이 잘 기술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비전선언문을 미션으로 옮겨도 그럴 듯하다면 잘못 작성한 것이다.
3. 핵심가치
핵심가치라 함은 고객 관점의 차별화된 가치이다. 기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아울러 없어져 버리는 비길데 없는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는 재무적으로 계량 가능한 교환가치이기도 하고, 단기적으로 계량 불가능한 사회문화적 가치이기도 하다.
핵심가치는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복제 불가능한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쉽게 따라 하고, 복제할 수 있으며 대체 가능한 가치라면 회사가 자랑할 핵심가치로 적정하지 않다. 우리 회사가 사라져도 지구상에 여전히 남아 있고 쉽게 대체 가능한 가치라면 차별화된 핵심가치라 부를 수 없다. 핵심 가치에 스토리나 고객의 감성이 붙으면 계량이 불가능한 질 높은 수준이 된다. 핵심가치를 설명할 때 흔히 ‘디즈니월드’를 이야기 한다.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사라진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상상할 수 있다면, 디즈니의 핵심가치를 극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정확한 개념 이해 바탕으로 명확한 방향 제시해야
위와 같은 설명은 회사의 사명, 비전, 핵심가치가 적정한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사명, 비전, 핵심가치의 내용을 서로 무작위로 바꾸어도 비슷한 말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표현은 기업의 직원들이나, 고객들에게도 혼동을 유발시킨다. 멋진 말인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인지는 잘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래 표는 어떤 조직의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검토한 사례다. 원안은 미션과 비전의 차이가 분명치 않다. 서로 위치를 바꾸어도 그럴 듯하다. 핵심 가치 역시 차별화된 가치가 명확히 적시되지 않은 추상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회사의 사례 대부분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원안 내용을 임의로 수정해 보았다. 비전은 현 수준과 대비하여 특정 시점의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으로 제시했고, 핵심 가치 역시 차별성이 있는 유무형 자산을 적시했다. 둘 중 어느 것이 이해하기 쉬운지 판단하는 일은 독자에게 맡긴다. 미션, 비전, 핵심가치는 대개 전직원 회의와 최고 경영자에 의하여 확정된다. 확정된 내용을 다시 수정하기 용이하지 않다. 초기에 정확한 개념 이해를 기반으로 정의하고, 시점을 놓쳤다면 5년마다 검토하고 수정하기를 권고한다.
사람이 태어나 천명을 받은 것은 미션이다.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정의를 실현하는 사명(권선징악)을 갖고 태어난다. 이를 위해 훈련하고 배워서 획득한 자산(보검)이나 역량(무공)은 핵심가치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핵심가치를 활용하며 도전받는 역경(환경)을 극복하고 5년, 10년, 20년, 30년의 비전(무림패왕)을 향하여 단계별로 나아간다. 궁극적으로 미션의 완성을 향해 다가가지만 결국은 도착하지 못한다. 이제 남은 여정은 자손이 바통을 이어 나아간다. 드디어 천명을 완성했다고 가정하자. 이제 나는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미션을 설정할 때가 되었다. 그러하니, 미션 완성이 다가오기 전에 더 어려운 미션, 더 의미 있는 미션으로 사업 재 설정이 필요하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미션을 재 설정하는 작업은 수시로 발생한다. 이전보다 구체화 하기 보다는 더욱 포괄적으로 넓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이전의 미션보다 새로운 미션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면 무언가 방향을 잘 못 잡았다. 틈새시장에서 생존을 작정한 일이 아닌데 미션을 구체화 하면 사업영역의 한계를 스스로 좁히게 된다.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을 Industry Manufacturing Machine 으로 축소하기 보다는, 그 반대로 확장하거나 다른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 적정한 미션 설정의 방향이다. 아울러 미션이 다르면 비전과 핵심가치도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경영이론가 사이에는 미션, 비전, 핵심가치의 추상화 레벨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 시간적 개념으로 미션은 가장 오래 걸리는 개념임에 틀림없고, 그 다음이 시간 목적을 가지는 비전, 비전을 달성해 가는데 필요한 핵심가치가 맨 아래 위치하는 개념이다. 위에 있으면 그만큼 자주 바뀌면 안 되는 개념이다. 미션을 바꾼다는 것은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일과 같다. 반면에 비전과 핵심가치는 사업환경에 따라 미션보다 좀더 융통성 있게 변화함이 적정하다. 미션, 비전과 핵심가치는 주체의 실존 개념인 “WHY”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기업의 모든 활동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700년 전에 만들어진 오컴의 면도칼을 빌려 냉정하게 군살을 제거해야 한다.
출처: 이정규 비즈니스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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