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리의 여왕, 전세계 '물건의 노예' 변화시킨 비결
[출처: 중앙일보] 일본 정리의 여왕, 전세계 '물건의 노예' 변화시킨 비결
“두 손으로 물건을 만져보세요. 아직도 설렘을 주나요(spark joy)? 설렘이 없으면 버리세요.”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곤도 마리에'
옷·책 한 데 모아 얼마나 많은지 확인
“설렘” 있으면 간직, 아니면 버리기
인기 타고 재활용품 기부 40% 증가
정신 수양, 일본식 미니멀리즘 열풍
정리 강박관념을 비즈니스로 키워내
정리 정돈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일본인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35)가 새해부터 전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정리 전문가인 곤도는 2011년 펴낸 저서『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으로 이미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이름을 알렸다.
올해 들어 그의 집 정리 노하우가 새삼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 계기는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방영 중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부터 총 8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된 이 시리즈는 곤도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 특유의 비법으로 정리를 도와주는 내용이다.
특히 미국에서 반응이 뜨겁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며 물건 더미 속에서 허우적대는 미국인의 삶을 바꿔 놓을 기세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설렘을 기준으로 물건을 버리거나 간직하기를 선택하는 곤도의 독특한 정리법이 물건에 파묻혀 사는 미국인 가정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미국 전역의 재활용 가게에 물건을 기부하는 행렬이 길어진 데서도 알 수 있다. 굿윌·구세군 등 재활용품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매장이나 중고품을 거래하는 빈티지 숍을 찾는 사람이 큰 폭으로 늘었다.
앤 우드퍼드 굿윌 대변인은 “프로그램 방영 후 1주일 만에 기부 물품 접수량이 전년보다 40%가량 늘었다”며 “고객들이 곤도 마리에 방송을 보고 왔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구세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부 신청이 들어오면 보통 24시간 안에 물품을 수거하러 갔는데, 방송이 시작된 후에는 기부 물품 픽업을 위해 2주를 기다려야 한다.
트위터ㆍ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는 곤도 마리에 정리법으로 가지런히 정돈한 옷장·수납장 사진 올리기가 유행이다.
곤도 마리에 정리법은 집안 물건을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①의류 ②책 ③서류 ④소품 ⑤사진 등 추억이 많은 물건이다. 범주 순서대로, 내가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너무 많지는 않은지 평가한다.
예컨대, 첫 순서로 옷을 정리하는데, 가진 옷을 전부 꺼내어 한곳에 모은다. 천정이 닿을 정도로 거대한 옷 산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내가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구나’라고 자각한다. 그런 반성과 자각이 반복되면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버리느냐 남기느냐의 평가 기준은 물건을 하나씩 꼭 안아보고 만져봤을 때 설레는지 아닌지다. ‘스파크 조이(spark joy)’가 키워드다. 방송에서 곤도가 의뢰인에게 계속 묻는 말이 “물건이 설렘을 주느냐(Does it spark joy)?”이다.
여전히 설렘을 주는 물건은 간직해도 되지만,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은 진심 어린 감사 표시와 함께 작별을 고한다. 낡은 양말이나 입지 않는 원피스를 끌어안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소리 내 말 하도록 한다. 물건은 버려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다소 주술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종교의식처럼 느껴지는 이 부분이 미국 시청자들이 ‘곤 마리’ 정리법에 열광하는 이유다.
이 같은 절차를 따르는 정리법을 곤도 마리에의 이름을 줄여 ‘곤마리’ 정리법이라고 부르는데, 상표 등록을 추진 중이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여러 신조어를 낳았다. 정리한다는 의미의 신조어 ‘곤마리하다’, 곤도 덕분에 삶이 바뀌었고 소위 '곤마리' 정신으로 개종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곤버트(Konvert : 곤도(Kondo)와 개종(convert)의 합성어)’도 있다.
프로그램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일본인 정리 전문가라는 곤도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살린 점이다. 미국에는 기존에도 집 정리를 주제로 한 리얼리티 쇼가 여럿 있었지만, 곤도 마리에 쇼가 인기를 얻은 비법은 일본풍 미니멀리즘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곤도 마리에는 일본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국 가정을 방문할 때는 통역을 통한다. 의뢰인의 집을 처음 방문하면 거실 한가운데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바닥을 쓰다듬으며 집과 “인사”를 나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정리하다 보면 의뢰인들은 ‘인생도 바꿀 수 있다’는 곤도의 말을 믿게 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육아를 시작한 뒤 집이 엉망이 돼 다툼이 잦아진 부부가 곤도의 지휘 아래 몇주 동안 집을 정리한 뒤 평화를 되찾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짐을 정리하는 아내, 집 전체가 창고나 다름없는 ‘빈 둥지’ 노부부,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 등이 무질서한 집을 정리하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곤도는 어릴 때부터 정리정돈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꼼꼼하게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고 한다. 19살이 되면서 정리 정돈을 해주고 용돈을 벌기 시작했다.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곤도가 물건을 정리해주면 그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
도쿄여자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력 회사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남의 물건을 치우고 공간을 정리하는 일을 계속했다. 초기에는 다섯 시간 동안 정리해주고 10만원가량을 받았다. 그러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전업으로 삼았다.
그는 저서『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통해 일본과 유럽에서 이미 유명 작가 반열에 들었다. 책은 42개국에서 번역ㆍ출판됐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았다. 2014년 책이 영어로 번역·출판됐지만,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다. 콘텐츠는 좋았지만 곤도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홍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라디오 방송이나 토크쇼에 출연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기회가 왔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곤마리’ 정리법에 따라 옷장 정리를 시도한 경험을 기사로 썼다. 이후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150주 동안 올랐다. 모두 800만 부 넘게 팔렸다.
일본풍의 간결한 스타일,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물건과 대화하는 아이디어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곤도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매력을 느꼈다.
예컨대, 곤도는 스타킹의 가운데를 꽉 묶어 보관하면 스타킹이 숨을 못 쉰다고 믿는다. 입은 옷을 벗을 때는 그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다음에 입을 때까지 푹 쉬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버릴 때는 ‘내게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서 고마워’라고 인사하라고 한다.
곤도는 이제 고향 일본을 넘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정리의 여왕’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즈키 사토코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는 정리정돈이 단순히 청소의 관점이었다면 미국에서는 자아실현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곤도의 정리법은 그냥 정리법이 아니라 자신을 돕고, 이해하고, 개발하는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곤도 마리에 정리법의 철학적 배경은 ‘단샤리(斷捨離)’라는 일본 불교 용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단절한 단(斷), 버릴 사(捨), 떨어질 리(離)다.
물건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고, 있는 물건을 버리고,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정리는 그저 주변공간을 치우는 게 아니라 영혼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곤도는 말한다. 정리와 이를 통한 정신적 수양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스즈키 교수는 “곤도 마리에는 집 정리라는 평범한 일을 고부가가치 개념으로 승화시켜 비즈니스로 연결했다”며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곤도는 ‘곤마리 미디어’의 창업자이며 최고비전책임자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사업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책 집필과 방송 출연 외에도 ‘곤마리’ 정리법을 수료한 정리 컨설턴트를 양성해 수익을 낸다. '곤마리' 인증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교육비는 1인당 2700달러(약 300만원)에 달한다.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두고 ‘소비주의적 미니멀리즘’이란 비판도 나온다. 물건을 버리는 만큼 새 물건을 들여놓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버리는 물건의 양을 체험하면서 의식 있는 소비를 유도한다는 긍정론도 있다. 아직 ‘곤마리’ 정리법이 유통ㆍ소매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결국 적게 소비하는 게 미덕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물질적인 소비, 물건 구매를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잘못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곤도가 전하는 메시지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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