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감청기·미사일추적기..美, 한반도 비밀정찰 들켰다
이철재 입력 2019.04.07. 05:00
요즘 한반도 영공과 인근 상공이 북적이고 있다. 북한 내부와 공해 상에서 북한의 불법 해상환적을 감시하는 각종 미군 정찰기들이 그득하기 때문이다.
미국 공군의 신호정보(SIGINT) 정찰기인 RC-135W 리벳조인트(Rivet Joint)가 5일 일본 요코타 기지에 도착했다. 이 정찰기는 3일 미국 본토에서 출발했다. 리벳조인트는 한마디로 무선 감청 정찰기다.
리벳조인트는 이미 지난달 30일부터 가데나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RC-135S 코브라볼(Cobra Ball)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브라볼은 탄도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지난달 중순 RC-135U 컴뱃센트(Combat Sent)가 한국 영공을 드나들면서 서해에서 작전 중인 사실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미군이 한반도 인근인 오키나와에 주요 항공 정찰자산(정찰기)을 모아놓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북한의 최근 상황이 심상찮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최근 미사일 또는 우주발사체(SLV) 발사하려는 듯한 정황이 연달아 나오면서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정찰기들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북한 도발의 전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민감한 미군의 정찰 활동이 어떻게 알려졌을까.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군사 활동이 속속 보도되면서 여러 억측이 나오고 있다. 민감한 군사 비밀이 유출된 걸까? 미군이 일부러 움직임을 드러냈을까? 그렇다면 북한을 압박하는 고도의 심리전일까?
진실은 그 중간에 있었다.
━
‘매의 눈’을 가진 매니어의 힘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정보다. 지난 2월 27~28일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비밀 핵시설에 관한 정보를 들이밀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당황하게 한 전력이 있는 미국이다.
요즘도 미군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한반도 전역을 촘촘하게 감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찰 작전엔 1대에 1조원이 넘는 첨단 첩보위성뿐만 아니라 정찰기, 정보원, 지상 감청시설 등을 투입한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건 정찰기다.
첩보위성은 자세한 영상을 얻을 수 있지만, 우주 궤도를 돌기 때문에 이동성이 떨어진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날아가는 건 정찰기의 장점이다. 또 정찰기엔 특수장비를 실어 영상 촬영을 포함 다양한 정찰ㆍ첩보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찰기들이 한반도 영공과 인근 상공을 날아다니는 게 밀덕(밀리터리 매니어)에게 포착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모든 항공기에는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라는 위치발신장치가 달려 있다. 하늘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줘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을 막고, 항공 당국의 관제를 돕기 위한 장치다.
ADS-B로 나타나는 항공기의 위치와 항로 정보를 보여주는 웹사이트들이 여럿 있다. 가장 유명한 게 플라이트레이더(Flightradar)24다. 유료 사이트이지만 무료로 일부 정보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왔다.
이 사이트는 실시간 항공기 정보를 구글 지도 위에 뿌려준다. 항공기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항공기의 사진, 국적, 출발지, 도착지, 도착 예정시간, 속도, 위치 등 정보가 나온다. 이 사이트는 다변 측정 감시 시스템(MLAT), 미국 연방 항공청(FAA) 등의 자료로 보정하기 때문에 항공기 위치 정보론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군용기도 작전 수행 중이 아니라면 위치발신장치를 켜고 날아다닌다”며 “지난달 29일 한국에 도착한 F-35A 2대도 우리 영공에선 트랜스폰더(항공기식별장치)를 켰다. 스텔스기이기 때문에 트랜스폰더가 작동하지 않으면 지상 관제소에서 위치를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군 정찰기들이 작전을 마친 뒤 기지로 돌아오거나, 다른 기지로 이동할 때 위치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미군이 경고를 주기 위해서 일부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미 공군은 2017년 10월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B-2 스피릿을 동원해 북한의 지도부를 폭격하는 훈련을 벌였다. 당시 B-2 조종사의 교신 내용을 민간인이 녹음해 훈련의 내용이 세상에 밝혀졌다. 미 공군이 일부러 암호화하지 않은 무선통신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종의 심리적 압박작전이다.
그런데 플라이트레이더24는 엄청난 정보량를 자랑한다. 한반도로만 한정하더라도 보통 수십 대의 항공기가 보인다. 이 사이트를 종일 쳐다보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항공기의 위치 정보를 집어내는 밀덕들도 나타났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시브밀에어(CivMiliAir)'와 '에어크래프트스폿(AircraftSpots)'이 유명하다. 이들은 트위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코브라볼과 리벳조인트, 컴뱃센트의 최근 비행은 시브밀에어와 에어크래프트스폿의 트위터를 통해 먼저 알려졌고, 언론이 이를 보도한 것이다.
이들 중 2017년 말에 시브밀에어를 트위터의 쪽지(DMㆍDirecr Message)을 통해서 인터뷰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시끄러웠던 무렵의 일이었다.
Q : 개인인가, 단체인가?
A : 개인이다.
Q : 왜 시브밀에어를 시작했나?
A : 흔히 볼 수 없거나, 희귀한 항공기에 관심이 많다. 한 번 그런 항공기의 정보를 트위터에 올렸더니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 하더라.
Q : 어디서 정보를 얻나.
A : 대개 공개정보다.
Q : 최근 미군 정찰기의 활동이 한반도에서 활발해졌나.
A : 한반도 뉴스가 언론에서 터져 나온 뒤로 들여다봤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Q : 트위터 활동으로 돈을 버나.
A : 한 푼도 안 번다.
전반적으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게 부담스런 눈치였다.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자 “국적은 영국, 남성, 직업은 항공과 무관(Irrelevant)”이라고 답했다.
A : 내가 그때 어떤 일을 하나에 따라 달렸다. 트위터에 올리는 데 몇초 안 걸린다. 데이터(항공기 위치 정보)는 늘 갖고 다니는 핸드폰에서 볼 수 있다.
시브밀에어와 같이 플라이트레이더24를 틈틈이 들여다보는 밀덕이 있는 한편, 공군 기지 주변에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항공기를 촬영하는 밀덕도 있다. 이들을 스포터(spotters)라고 부른다.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엔 구바 사토루라는 사진가가 자리 잡고 있다. 구바는 가데나 기지에서 이륙하거나 착륙하는 미군 군용기의 사진을 찍어 언론에 기고하기도 한다. 그는 코브라볼이 지난달 30일 가데나 기지에 착륙하는 모습을 포착해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
가데나에 코브라볼과 스니퍼가 나타나면 경고등
미 공군의 핵심 정찰기는 미 본토에 주둔하다 일이 터지면 외국으로 전개하는 개념이다. 북한이 수상하다면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로 정찰기를 보낸다. 왜 그럴까?
미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정찰기 가운데 RC-135 계열은 금쪽과 같은 전력이다. 구체적으로 코브라볼(RC-135S), 리벳조인트(RC-135VㆍRC-135W), 컴뱃센트(RC-135U), 콘스탄트피닉스(WC-135)가 있다. 이들 정찰기는 모두 미 공군 제55 비행단 소속이다. 55 비행단은 정찰 전문 부대다.
55 비행단의 모 기지는 네브라스카주 오펏(Offutt) 기지다. 오펏 기지엔 미 전략사령부(USSTRATCOM)가 함께 있다. 전략사령부는 핵무기로 전 세계를 타격하면서 미사일 방어도 맡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현지에서 홍수가 나면서 오펏 기지의 주요 항공기들이 인근 기지로 대피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RC-135 계열의 정찰기들이 한국의 오산이나 군산이 아닌 일본으로 가는 건 북한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직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일본 본토엔 요코타 기지와 미자와 기지가 있는데도 주로 오키나와의 가데나로 모이는 이유도 있다. 군사 전문지인 디펜스타임즈의 안승범 대표는 “가데나는 활주로가 길고, 격납고가 크며, 관사가 많다”며 “한반도와 거리도 멀지 않기 때문에 RC-135 계열이 가데나로 전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C-135 계열은 공통으로 RC-135라는 제식명을 갖고 있다. 한뿌리에서 나온 형제라는 뜻이다. R은 정찰기(Reconnaissance)에 붙는 임무부호다. C는 수송기(Cargo/Transport)다. RC를 연달아 붙이면 원래 수송기인데 정찰기로 개조했다는 뜻이다.
C-135는 보잉의 민간 항공기인 B707와 사촌격인 스트라토리프터(Stratolifter)를 말한다. 이 항공기는 당초 수송기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공중급유기인 KC-135 스트라토탱커(Stratotanker)로 많이 개조됐다.
RC-135 다음에 붙는 S나 U,V,W는 개량부호다. 기본 임무인 정찰기인데 장비와 구조를 바꿔 특수한 임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RC-135S 코브라볼은 적외선 센서와 광학 카메라, 첨단 통신설비를 달아 탄도미사일의 발사 징후를 찾고 궤적을 추적하며 낙하지점을 계산할 수 있다. 현재 운용 대수는 3대다.
코브라볼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사건과 관련 있다.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말이다. 당시 소련 공군의 수호이(Su)-15 전투기는 사할린 부근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대한항공의 B747 여객기를 격추했다. 그런데 소련의 변명이 대한항공 007편 근처에 미 공군의 RC-135가 있었고, 두 항공기가 항적이 겹치면서 전투기 조종사가 오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항공 007편이 떨어진 사할린에서 멀지 않은 캄차카 반도엔 소련의 쿠라(Kura) 미사일 시험장이 있었다. 당시 사할린 가까이 날아간 미 공군의 RC-135는 코브라볼일 가능성이 크다.
RC-135V/W 리벳조인트는 신호정보뿐만 아니라 전자정보(ELIT), 통신정보(COMINT)를 공중에서 가로채 적의 위치를 알아내거나 적의 의도 또는 적의 위협적 활동을 미리 파악하는 게 임무다. RC-135 빅 팀(Big Team)을 업그레이드한 게 RC-135V, RC-135M 리벳카드(Rivet Card)나 RC-135U 컴뱃센트를 고친 게 RC-135W다. 미 공군은 리벳조인트 17대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2대에 불과한 RC-135 컴뱃센트는 적 레이더의 전파를 잡아낸 뒤 적의 방공망을 분석한다.
WC-135 콘스탄트피닉스(Constant Phoenix)는 별명인 스니퍼(Snifferㆍ냄새 탐지기)로 더 유명하다. WC-135에서 W는 기상관측(Weather)이란 의미다. 이 같은 제식명은 스니퍼의 구체적 임무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스니퍼는 공중에서 방사성 물질을 포집해 핵실험을 분석한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 스니퍼가 울응도 근처에서 제논을 잡아 당시 북한이 플루토늄탄을 터뜨린 사실을 밝혀냈다. 스니퍼 역시 2대가 활동하고 있다.
RC-135 계열은 평소 모기지에 있다가 북한이 수상해 상황이 일어날 만 하면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로 집결한다. 가데나 기지는 제55 항공단 예하 제85 정찰비행대의 기지다.
특히 가데나 기지에 코브라볼과 스니퍼가 나타나면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이 임박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졌다는 뜻이다. 코브라볼의 출현이 반갑지만 않은 이유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사람사는 이야기 > 공유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Boeing 747 Cockpit View - Take-Off from Miami Intl. (MIA) (0) | 2019.04.07 |
---|---|
Flightradar24 - Watch airplanes landing live! (0) | 2019.04.07 |
사회적인 큰 동일 사고가 왜 되풀이 디는가? (0) | 2019.04.02 |
주택시장 냉각하자 1월 가계대출 4년만에 마이너스 전환(종합) (0) | 2019.02.15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세계·한국 경제 진단 (0) | 201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