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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ESG 시계..삼성전자·현대차 '초비상'

성공을 도와주기 2021. 1. 3. 22:04

빨라지는 ESG 시계..삼성전자·현대차 '초비상'

송형석/이수빈 입력 2021. 01. 03

더 빨라진 ESG 시계
(1) K기업 ESG경영 현주소
삼성전자·현대차 'B'등급..제조업 중심, 환경평가서 불리
글로벌 ESG 제도화 눈앞..경영 시스템 개선 서둘러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학생들이 벌인 환경 퍼포먼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김영우 기자 yongwoo@hankyung.com


기업에서 새로운 생산설비를 가동하거나 매출이 급증할 때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담당하는 임직원이다. 한 대기업 ESG 담당자는 “업황이 좋아 공장을 완전가동하는 해엔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도 늘어난다”며 “회사가 잘 굴러가는 건 좋지만 ESG 순위 하락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많이 참조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2019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BBB) 현대자동차(B) SK하이닉스(BB) 등 국내 ‘빅3’의 ESG 등급 앞자리는 모두 ‘B’다. 포스코(BBB)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조업 비중이 높다 보니 E(환경)와 관련한 점수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경제신문과 IBS컨설팅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주요 20개 기업 중 2017~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한 곳은 9곳, 에너지 소비를 줄인 곳은 5곳에 그쳤다. 제조업이 핵심인 한국 대기업의 특성상 글로벌 평가기관의 눈높이를 맞출 만큼 환경 관련 지표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평가기관들이 최고경영자(CEO) 형사처벌 규정이 유독 많은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점도 ESG 등급이 낮게 나오는 이유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ESG의 규범화와 제도화가 좀 더 진행되면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ESG를 표방하는 글로벌 펀드들이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유럽 국가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업체에 ‘탄소세 폭탄’을 물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3억1500만t을 줄여야 하는 한국 정부가 오염물질 배출 기업의 벌금을 선제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모 삼성증권 ESG연구소장은 “한국 기업들이 ‘ESG 충격’을 피하려면 발 빠르게 경영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줄인 기업, 20곳 중 9곳뿐…韓 기업, 환경지표에 '발목'
뒤처진 한국 ESG 경쟁력

ESG 경영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국내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로 기업의 비재무지표를 뜻한다. 글로벌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은 ESG 평가를 근거로 투자처를 결정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업을 골라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이 추정한 글로벌 ESG 펀드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5조달러(약 5경원)에 이른다. 미국의 애플 등 일부 글로벌 기업도 소재나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에 ESG 성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내기업 ESG 경쟁력 따져보니

3일 한국경제신문과 IBS컨설팅이 3년 연속 지속가능보고서를 내고 있는 국내 20개 업종 대표 기업들의 ESG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ESG 점수를 깎아먹는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ESG 평가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톰슨로이터 등이 공통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들을 중심으로, 지속보고서에 나온 ESG 세부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를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한국 기업들의 대표적인 ‘골칫거리’로 꼽혔다. 2017~2019년 사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곳은 20개 기업 중 아홉 곳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삼성전자의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506만7000t으로 2017년보다 38.1% 증가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도 24.4%에 달했다. 포스코는 아예 단위가 달랐다.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만 7099만t에 이른다.

에너지 소비량과 폐기물 배출량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지표로 분류됐다. LG화학은 2019년 1억7550만GJ(기가줄: 에너지양을 나타내는 단위)의 에너지를 쓰고 34만8472t의 폐기물을 배출했다. 2년 전보다 에너지 사용량은 6.4%, 쓰레기 배출량은 24.8% 늘었다. 투자와 생산을 늘릴수록 오염물질 배출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한국 제조업의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지배구조는 개선 중

다만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 항목은 쓰레기 및 폐기물 배출량 정도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2017년 대비 2019년 배출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IBS컨설팅 관계자는 “MSCI 등 글로벌 ESG 평가기관들은 세부 환경 지표에 어떻게 가중치를 부여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며 “매출이나 생산량의 변화 등을 어느 정도 감안해 등급을 정한다고만 설명한다”고 했다.

반면 한국 기업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됐던 ‘G(지배구조)’도 오히려 매년 조금씩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기준 20개 주요 기업 중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여덟 곳이었다. 지배구조 투명성이 높아진 징표라는 게 ESG 평가기관의 공통된 주장이다. 현대차, SK하이닉스 등이 2019년 임원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보상위원회를 새로 꾸린 것도 긍정적인 변화로 꼽힌다.

올해부터 ESG 경영에 속도

시장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기업의 ESG 경영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ESG 평가에 기반한 투자에 나서겠다고 예고해서다. 증권가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행보가 최대 관심사다. 김용진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KB금융그룹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2022년엔 책임투자 원칙을 기금 전체 자산의 50%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3월부터는 ‘지속가능금융공시 제도(SFDR)’가 의무화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유럽 역내의 금융투자 기관들이 지속가능투자 정보를 공개하고, 금융상품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SFDR의 골자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