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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쏠림으로 지역·지방대 동반 위기 악순환”…

성공을 도와주기 2021. 4. 1. 07:10

김경수 지사·김수갑 총장 “수도권 쏠림으로 지역·지방대 동반 위기 악순환”…유은혜 장관 “이달 중 권역별 적정 수준 정원 관리 방안 마련해 발표”

[경향신문] 입력2021.04.01

‘지방대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유독 심각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정시전형에서 추가모집 이후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 4년제 대학이 198개 소속 대학 중 162곳인데, 정원 미달의 90% 이상이 지방대다.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의 축소판이다. 지역 학생을 수도권 대학에 내주는 지방대의 처지는 자본, 일자리, 문화생활 등 모든 자원을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현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동시에 대학서열화, 학령인구 감소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국토균형 발전과 수도권·지방 격차 해소 등 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것부터 지방대 지원 방안 마련 등 당장 필요한 것까지 여러 겹의 해법이 동시병행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맨 왼쪽), 김경수 경남지사, 김수갑 충북대 총장이 지난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향신문이 마련한 ‘국립대학 및 지역 혁신 좌담회’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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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수갑 충북대 총장(전국 국공립대 총장협의회 회장)이 지난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머리를 맞대고 지방대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유 장관은 정부의 정책을, 김 지사는 지방정부 차원의 해법을, 김 총장은 지방대의 자구 노력과 요구를 주로 얘기했다. 정제혁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이 좌담을 진행했다.

- 올해 지방대 위기가 유독 심각해 보인다.

김수갑 총장(이하 ‘김 총장’)= 지방대 위기는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닌데 올해는 입시 결과가 사회적 충격으로 다가온 게 사실이다.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서울 소재 대학은 아직도 경쟁률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학령인구 감소가 지방대 위기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지방대 위기를 가져왔다. 승자가 독식하는 우리 사회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이하 ‘김 지사’)= 지방소멸의 대학판이 지방대 위기이다. 지역의 혁신 역량이 가장 밀집된 곳이 대학이다. 지역이 혁신하고 발전,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지역에 있는 대학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한데 지역과 지방대가 같이 위기에 빠지고 있다. 수도권에선 과밀의 폐해, 지역에선 소멸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대의 위기가 현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도권 쏠림으로 인해 지역과 지방대가 같이 위기에 빠지는 악순환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우철훈 선임기자


지방 정주할 여건 만드는
새로운 생태계 마련해야
무조건적 정원 감축 아닌
수도권·지역 ‘균형’ 검토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하 ‘유 장관’)= 이젠 수치상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이렇게 위기를 크게 느끼는 시기가 지방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지방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유 장관= 구조조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방 학생들이 서울에 오지 않아도 그 지역에서 진학하고, 취업·창업을 한 이후에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심화된 과정을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의 기회를 지역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지방에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형편이 너무 어렵고 학사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대학은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김 지사= 대학의 역할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졸 신입생을 입학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같이 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업·융합·통합을 할 수 있다. 경남의 경우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경상국립대로 스스로 통합한 것이 좋은 사례다.

- 지방대의 공공적 가치는 무엇인가.

김 총장= 대학의 위기를 시장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 ‘학생들이 찾지 않는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구조적이고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그동안 지방대는 구조조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명백히 구조조정이 필요한 대학은 퇴로를 열어주는 것을 고려해야겠지만, 혁신을 통해서 지방의 강소대학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단지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부실대학으로 낙인찍기는 어렵다. 그간 지방대, 특히 사립대의 경우 취업률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문학 계열 학과는 거의 폐과했다. 대학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에서 인문학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돼버렸다. 이것은 학문 황폐화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지방 국립대는 거점대학으로서 기초학술이나 인문학 육성 역할을 해야 한다.

김 지사= 지방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 지역 산업계의 변화 등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하는 지역학을 필요로 한다. 그런 지역학 기반 없이 기업에 필요한 교육만을 대학이 해서는 기업도, 대학도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 지방대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

유 장관= 지난해부터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을 시작했다. RIS는 지자체와 대학 간 협력을 기반으로 지역혁신체계를 구축하고, ‘지방대학의 혁신’을 통한 ‘지역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경남, 충북, 광주, 전남에서 진행 중이다. 지자체, 대학 및 다양한 지역혁신기관이 구축한 플랫폼에서 각 지역의 발전목표에 맞는 핵심 분야를 선정해 지역 내 인재를 양성하게 된다. 또 거점 국립대나 심화 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대학은 기초학문과 인문학, 사회과학에 특화하고 전문대는 단기간의 기술인력 훈련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과, 문과 영역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융합·통합되는 추세다. ‘2022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올해 하는데, 초·중·고 과목도 교과목 중심이 아니고 융합·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과정이 돼야 한다. 지역의 경우 기초학술과 인문사회 분야는 국립대에서 맡아주고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4월부터 교육과정 개정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김 총장= 충북의 경우 오송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헬스가 주력 분야다. 그동안 공공기관, 연구기관, 대학, 기업으로 분절됐던 정보와 서비스를 통합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지리적 이점이 있는 오산에 충북 지역 대학의 15개 학과를 연계한 협력과정을 갖췄다. 학생들이 타 대학에서 학점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교원도 교환하는 체제를 갖췄다. 공유대학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교류 수준이다. 공유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공존하려는 노력이다. 이로 인해 지역 학생들이 지역에 정주할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우철훈 선임기자


지역사회 평생교육 맡는
대학의 역할 변화도 필요
수도권 ‘초광역 단위’처럼
지방도 생존 위해 모색을

김 지사= 경남은 제조업이 발달한 점을 살려 스마트 산업단지, 스마트 제조ICT를 구축한다. 경남 지역 17개 대학이 공동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학생을 모집해 2년간 공유대학에서 길러낸다.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면, 대학 교육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사이에 차이가 있다. 애초에 지역 대학과 기업이 미리 논의해서, 대학 교육이 지역 산업 수요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동안 그게 잘 안 됐다고 한다. 공유대학 커리큘럼에는 지역 기업도 참여해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대학과 논의해 인재를 양성한다. 수도권은 생활권과 경제권이 합쳐진 하나의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가진 경쟁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지방은 시·도 단위로 쪼개져 있으면서 또 분산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이라는 플랫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방이 살기 위해서는 지방도 수도권처럼 초광역 단위로 플랫폼을 만들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예술대학이라고 할 때, 120만 울산 시민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면 설득력이 약하지만 부산, 울산, 경남 800만명에게 필요하다고 하면 그럴듯하다. 그래서 지방대의 문제도 권역 단위에서 풀어갈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

김 총장= 예전엔 그래도 지역의 우수한 인재가 그 지역의 국립대에 갔다. 지금은 ‘인서울’로 쏠린다. 지방에 다닐 만하고 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훌륭한 대학이 있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가 전례 없는 상황인 만큼 전례 없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지방대학육성법하고 혁신도시법에서 지방 인재, 지방 국립대를 지원할 근거를 분명히 만들어야 한다.

- 지방대에 대한 재정 지원은 어느 정도인가.

김 총장= 초·중등 교육 재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인데 고등교육은 최하위다. OECD 평균의 60~70% 수준이다. 고등교육교부금을 만들어서 OECD 평균 수준은 확보해야 한다.

유 장관= 유·초·중·고도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교육 환경, 시설, 교수 방법 혁신, 교사 양성·수급이 다 따라가야 한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니까 지방교육재정 일부를 고등교육재정으로 쓰자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국립대는 수도권 대학의 일인당 교육비 정도 수준으로는 끌어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 국립대 재정 지원과 관련된 부분은 재정당국과 적극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고등교육재정과 관련해서는 9월까지는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방안을 만들어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수갑 충북대 총장. 우철훈 선임기자


무작정 구조조정보다는
강소대학 키워 개혁 필요
입학 정원을 못 채웠다고
부실대학 낙인찍기 안 돼

- ‘공영형 사립대’ 정책,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는 진전이 있나.

유 장관= ‘공영형 사립대’는 사학혁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다섯 군데 정했다. 액수가 대폭 줄었다. 임기 초부터 재정당국과 이견이 있어서 사업진행 속도가 더뎠다.

김 총장= 지방 내 국립대 네트워크는 서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중 하나다. 학생도 교환하고, 입학도, 학위수여도 공동으로 하는 공유대학 개념으로 넓혀가다보면 궁극적인 목표가 지역 내 국립대 통합, 연합대학으로 가야 한다. 그 전 단계 논의는 상당 부분 와 있다.

김 지사= 국립대 간의 융합이나 장기적인 통합까지 지역권역 단위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은 지방 내부에서 대학과 지방정부, 기업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융합으로 확장되지 않을까.

- 앞으로 예정된 정부 정책은.

유 장관= 디지털혁신공유대학 사업을 올해 추진한다. AI,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와 같은 신산업분야에서 수요에 비해 전문인력이 적은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학에 관련 학과 융합 등을 제도적으로 열어주고 여러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교육과정을 마련해 인재를 배출하고자 한다.

- 일각에선 수도권 대학 정원 조정도 대안으로 거론하는데.

유 장관= 지역 균형 발전 및 대학 간 동반성장을 위해 수도권·지역 간 적정 수준의 균형적 정원 관리가 필요하다. 학부·대학원 정원을 망라한 권역별 적정 수준의 정원 관리 방안을 마련 중이며 4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수도권 대학도 일부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은 하고, 지방대도 무조건 감축하는 게 아니라 특화할 부분은 어떻게 열어줄 것인가 균형감 있게 고려하겠다.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일정 수준의 충원율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해 정원 감축을 유도할 예정이며 선도적으로 정원을 줄여가는 대학에 대해서는 대학원 정원 증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김 지사= 정부의 몫, 지방정부의 몫, 기업과 지역사회의 몫을 엮어야 하는데, 그동안에는 교육부와 개별 대학의 관계로 풀어왔다. 고등교육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지방정부로서는 대학과 기업의 중간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김 총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방대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이 수도권 대학에 대한 기부나 지원은 상당히 많지만 지방에는 상대적으로 적다. 지방에 연계를 가진 대기업은 지역 대학을 지원하는 풍토가 있다면 좋겠다.

유 장관= 지방대 위기에 대한 해법도 우리 사회가 경쟁 중심에서 협력과 공유, 함께하는 가치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담고 있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한 사회적 대전환의 시기가 지금이라고 본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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