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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서 억만장자로! 차용규의 성공스토리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0. 6. 16:29

삼성맨서 억만장자로! 차용규의 성공스토리 

 포브스코리아 발표 국내 부자순위 7위… 재산 1조2085억

경제 전문잡지인 포브스코리아가 최근 집계, 발표한 '한국 400대 부자'의 명단을 살펴보면 '차용규'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차 씨는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 이재용 삼성 전무,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 이어 7위에 랭크돼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등 '재벌가' 인물로 널리 알려진 이들도 그보다 순위가 뒤다.

특히 차 씨의 경우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1조 2085억원의 재산을 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 씨의 성공스토리는 놀라움 그 자체다. 차 씨는 어떻게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의 행적을 따라가본다.

차용규씨(50)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이후 1995년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에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로 배치 명령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당시 카자흐스탄 최대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인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맡게 돼 그를 부른 것. 

삼성물산은 카작무스를 맡게 되자마자 경영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일관 구리 생산체제를 갖추는 등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바꿔나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파산직전에 몰렸던 카작무스는 삼성물산이 맡은 지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위탁경영이 만료된 2000년에는 자산가치 30억 달러의 회사로 거듭났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같은 경영 능력을 보여준 삼성물산을 돌려보낼 수 없어 위탁 경영이 만료된 후 지분 매입을 권유하는 러브콜을 계속 보냈다. 삼성물산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고, 2000년 지분 45%를 취득,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삼성물산의 카자흐스탄 사업에서는 차 씨의 기여가 지대했다. 차 씨는 알마타 지점장으로서 현장에 투입된 16명의 직원을 진두지휘하며 카작무스를 세계 9위 구리 제련업체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 공로로 차 씨는 1998년 부장으로 승진한 후 상무이사보를 거쳐 2000년 공동대표에 오르는 등 고속승진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2004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철수했다. 45%의 보유 지분은 카작무스 사업에서 파트너로 활약했던 카자흐스탄 관계자들에게 매각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종합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여러 위험 요인이 있다고 판단돼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삼성물산은 철수키로 방침을 정하자 차 씨는 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에 잔류키로 마음을 먹었다. 차 씨는 현지 고려인 3세인 블라디미르 김과 함께 카작무스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다.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 특히 김 씨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 지역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현지에서는 영향력이 있어 사업 파트너로서는 적격이었다.

차 씨는 카작무스 인수한 후 2005년 회사를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국제 구리시장의 호황 덕분에 카작무스는 상장 이후 대박을 터뜨렸다. 시가총액이 100억달러에 이르게 됐던 것.

이 같은 차 씨의 '대박'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차 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없이 해외로 나가 혼자 힘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는 점에서 한국 부자의 모델이 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또 "그의 성공은 주식 덕분에 가능했고 '금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서 금융시장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억만장자 대열에 오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한편 차 씨는 최근 카작무스의 한화 1조원에 상당하는 보유주식(2100만주, 4.5%)을 모두 처분했으며 현재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