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보/자동차

현대·기아차그룹 경쟁력 현주소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3. 11:54


 
현대차 ‘톱5’ 성공신화…“약골체질 바꿀때”
하청업체에 부담 떠넘기며 저가 수출전략
GM·도요타 등 경쟁업체에 생산성 뒤져
경영진 물량주의·노조 실리주의 담합깨야
한겨레 최우성 기자 김광수 기자

1부 한국 자동차산업 어디 서 있나

① 현대·기아차그룹 경쟁력 현주소

“첫 단추는 채워졌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협상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내년 9월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이제 국내 자동차산업 현장이 큰 변화의 물결에 들어서게 됐다. 지금 세계 자동차산업은 한마디로 ‘격변 중’이다. 유연·안정성을 무기로 한 높은 생산성을 갖춘 업체만이 치열한 시장쟁탈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다. 주간연속 2교대는 밤샘근무 철폐라는 의미와 함께 이런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최소한의 준비작업일 수 있다. <한겨레>는 노사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뼈대로 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짚어보는 기획연재를 앞으로 3부로 나눠 열 차례에 걸쳐 싣는다.

하청업체에 부담 떠넘기며 저가 수출전략
GM·도요타 등 경쟁업체에 생산성 뒤져
경영진 물량주의·노조 실리주의 담합깨야

“세계 자동차시장 순위는 쑥쑥 올라가지만 체질은 여전히 약골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자동차산업 전문가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현대·기아차그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겉으로 드러난 현대차의 위상은 눈부시다. 미국 오토모티브뉴스가 발표한 2008년도 글로벌마켓데이터북을 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생산 398만7267대, 판매 396만1629대를 기록해 전세계 자동차업체 가운데 5위에 올랐다. 현대차의 오랜 꿈인 ‘글로벌 톱5’에 들어선 것이다. 지난달 29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오는 2010년까지 연간 600만대 생산판매 체제를 갖춰 세계 시장점유율 9%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거듭 밝혔다.


» 현대·기아차 및 주요 자동차 업체 생산성(HPV) 비교
전문가들도 현대차의 눈부신 성장세 자체에 대해선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안수웅 엘아이지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고전하는 속에서도 지난 5년간 공격적인 글로벌 투자를 통해 고성장한 것은 적절한 경영전략의 성과로 볼 수 있다”며 “메이저 업체 중에 핵심시장과 신흥시장 모두에 생산기지를 갖춘 업체는 지엠과 도요타를 빼곤 현대차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높은 기술 및 시장 장벽을 뚫고 과점체제 진입에 성공한 유일한 후발업체로 꼽힌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젓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 성공스토리 뒤에는 자본장비율을 높이고 아웃소싱을 늘려 그 부담을 소비자와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노사 모두의 담합에 가까운 실리주의가 놓여 있다”며, “이는 진정한 글로벌 메이커로서는 치명적 결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노사전문위원을 지낸 박태주 박사는 “경영진의 물량주의와 노조의 단기실리주의가 서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거의 되풀이 되는 노사 갈등 양상에도 불구하고, 그 뒤편에서는 생산량을 늘려 순위 올리기에 급급한 경영진과 실리 챙기기에 급급한 노조의 이해가 일종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10+10’(주간 10시간, 야간 10시간 맞교대)이라는 장시간 노동과 주2회 정도의 특근을 당연시하는 노사 모두의 의식이나, 물량 배정을 둘러싼 최근의 노-노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갈등적이면서도 동시에 담합적인’ 노사관계는 현대차의 경쟁력에 큰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뜻하는 ‘대당 투입시간’(HPV)의 경우, 현대차는 2006년 현재 30.3시간으로 주요 경쟁업체는 물론, 미국과 인도 현지공장의 생산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체질로는 지각변동 한가운데 있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가 머지않아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며, 이제라도 큰 틀에서 회사의 추가 투자와 노조의 유연·안정성 수용이라는 ‘빅딜’을 통해 경쟁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간연속 2교대는 첫 실마리로 꼽힌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근무제 교대가 현대차 리모델링의 핵심고리인 이유는 생산성과 유연성 제고를 통해 생산방식과 노사관계를 동시에 업그레이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그 파장은 부품업체를 넘어 산업 전반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일 밤 극적으로 마련한 노사 잠정합의안의 파장을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4일 조합원 찬반투표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분위기는 엇갈린다. 노조 쪽 교섭위원은 “밤샘근무 폐지에 직접 영향을 받는 울산·아산·전주공장(3만1천여명)은 반대표가 더 많고 판매·정비·연구소(1만3천여명)에선 찬성이 더 나올 것으로 예상돼 박빙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출처: 한겨레신문 최우성, 울산/김광수 기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