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고 있는 부품업체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산업수요가 줄면서 유력 자동차 메이커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임에 따라 차량 부품업체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부품들을 제조해 납품ㆍ판매하는 사업 구조상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흥망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량 급감과 극심한 유동성 위기로 존망의 갈림길에 섰고 전반적인 자동차 시장 위축의 여파가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도 미쳐 곳곳에서 감원과 감산 조치가 내려지고 있다.
당장 뼈를 깎는 심정으로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부품업계에서는 혹여나 `동반 부도'의 늪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마저 감지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은 우선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국내 유력 부품회사들의 생산량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과 크라이슬러에 모듈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올 2분기만 해도 작년 대비 모듈 생산량이 3.6% 증가하는 실적을 보였지만 3분기엔 0.6% 증가에 그쳤다.
현지 완성차 업체들의 감산이 본격화되는 4분기에는 생산량 감소가 더욱 커질 것으로 현대모비스는 내다보고 있다.
현대모비스처럼 글로벌 사업망을 갖춘 업체는 그나마 버틸 만 하지만 특정 자동차 업체의 협력업체에 해당하는 부품회사들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처지다.
다음 달 근무일 8일간 전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GM대우의 협력업체측 사정은 이런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완성차 생산을 임시로 멈춘다는 통보를 받은 협력업체들은 일단 직원들의 연월차를 소진하거나 부품 생산라인을 정비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GM대우가 제품 판매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내년 1∼2월, 심지어는 3월까지도 일부 공장에 대해서는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협력업체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더구나 쌍용차도 다음달 일정 기간에 걸쳐 생산라인 직원들에게 임금 70%를 지급하고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감산에 나서는 업체들과 감산 규모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1차 협력업체는 900여 곳으로 고용 규모가 15만여 명이며 2차 협력업체는 5천여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3차 이후의 협력사까지 따지지 않아도 완성차 감산의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내년에 자동차 시장이 더 얼어붙고 판매량이 줄면서 감산 내지 생산라인 가동중단이 길어지면 특정 회사에 납품 의존도가 높은 일부 협력사들 중에는 최악의 경우 부도처리되는 업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최근 GM대우의 2차 협력업체인 대영금속이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한 사례는 비록 직접적 원인이 감산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품업계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부품업계는 불투명한 향후 시장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라는 `파이' 자체가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향후 판매 감소폭이 얼마나 될지, 언제까지 실적 악화가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워 시름이 더욱 깊어진다는 목소리다.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비는 올 연말이 아니라 내년"이라며 "완성차 업체들의 내수판매와 수출이 얼마나 줄어들지, 환율은 어떻게 될지 등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협력업체들로서는 사업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입장"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아 금융권이 자금지원에 인색해지고 있다"며 "사업이 잘되고 있는 부품사들마저도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암울한 분위기와 달리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국내 부품업계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미 등 주요 선진 시장에서 신차 수요가 줄고 중고차 구매가 늘면 국내 부품업체들의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미국 `빅3' 업체들의 몰락으로 현대.기아차 등 소형차 품질력에 강점을 가진 국내 업체들의 대미수출이 확대될 것이고 이에 따라 협력업체들도 혜택을 볼 것이라는 분석도 이런 관측과 궤를 같이한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수소연료전지차 등 미래형 친환경차에 대해 각 업체별로 연구개발이 가속화되고 양산 단계에 돌입한 차종부터 시판이 이뤄지면 관련 부품시 장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부품업체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하려면 세계 시장에서 겨룰 수 있는 경쟁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내 부품산업은 내수 의존도가 높고 핵심부품이나 첨단기술이 적용된 부품을 만드는 수준이 취약하다는 게 업계 내부의 의견이다.
반면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산업의 추세는 글로벌 소싱이 많아지고 전자장치 분야 등을 중심으로 전문화 및 대형화된 부품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위상과 달리 작년 선정된 세계 100대 부품 기업에 현대모비스와 만도 등 2개 업체만 포함돼 있다는 점도 국내 부품산업의 취약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 업체들이 성장하려면 완성차 업체들과 분업 등을 통한 긴밀한 연구개발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하며 정부도 향후 선진 기술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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