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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30代 특급호텔 와인 총지배인 엄경자 소믈리에

성공을 도와주기 2009. 2. 17. 22:44

"와인 마실때 매너요? 따지지 말고 즐기세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대표 소믈리에 엄경자씨는 "남 눈치보지 말고 본인의 입맛에 좋은 와인을 즐겨라"고 조언했다.
남제현 기자
"좋은 와인이란 값어치를 하는 와인이죠. 1만원 주고 샀는데 10만원 가치를 하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100만원에 샀는데 20만원어치밖에 안 되는 와인도 있습니다. 가치에 비해서 맛이 없으면 그건 맛없는 거예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대표 소믈리에 엄경자(33)씨는 좋은 와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한국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와인 관련 만화책에서 보던 낭만적인 비유법이나, 와인 애호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화려한 묘사는 없었다.

그는 이미 20대에 특급호텔 와인 총지배인이 됐다. '소믈리에'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0여년 전,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가 와인을 공부하고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현재 그가 국내 최고 규모의 '와인 곳간'을 지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엄씨는 프랑스책에 늘 등장하는 와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98년 프랑스 보르도의 '카파(CAFA)'라는 소믈리에 배출 학교에 들어가 1년 과정을 마친 뒤 보르도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과 감별 과정을 이수했다. 엄씨는 이후 교수 추천을 받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부르고뉴의 '조르쥬 블랑'에 인턴 소믈리에로 입성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 이곳에서 매일 와인을 분석하고 손님에게 서빙하며 실전형 소믈리에로 거듭났다.

"와인을 공부하며 눌러앉겠다고 하니까, 어학연수만 하고 돌아올 줄 알고 계셨던 부모님께서 충격을 받으셨어요. 제가 강원도 출신이고, 워낙 시골에서 살다 보니까 부모님들이 와인에 대해 잘 모르셨거든요. '여자가 웬 술 관련 일이냐'며 뜯어말리셨어요. 3개월 동안 돈줄도 끊겼고요. 하하하."

하지만 부모님도 그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또 와인이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기보다는 점차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 무렵 엄씨는 와인의 유통과 수입망, 소비자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호텔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무작정 일하고 싶은 생각이 앞서 당돌하게도 인사부가 아닌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총지배인 앞으로 직접 이력서를 보냈다. 다행히 호텔 측에서 그의 자신감을 높이 샀다.

엄씨는 호텔에서 2002년 오픈한 '테이블 34'와 2004년 오픈한 '마르코폴로' 레스토랑의 와인 구매와 품목을 선정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초고속으로 와인 총책임자 자리에 올라 현재 호텔의 모든 레스토랑 와인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누구를 만나든 와인이 식탁에 오르는 자리에서는 단 한 줄이라도 해당 와인에 관한 기억을 테이스팅 노트에 적어놓는다. 그렇게 모은 '와인의 기록'만 15권에 달한다. 몇 년 전에는 휴직 후 와인의 새로운 산지로 뜨는 미국 나파밸리를 자비로 체험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세계 57개 도시를 따라가며 와인에 관한 기록을 담은 저서 '와인노트'(사람이음)도 출간했다.

"지금도 매일 와인 테이스팅을 하면서 일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예전에 우연히 영국 대형 슈퍼마켓에서 그곳 직원들도 매일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책임의식이 있다는 의미죠."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와인의 인기는 다른 주류를 압도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와인 소비량은 2003∼07년에 2배 정도 늘었다. 이는 소주, 맥주, 위스키 등 다른 주류 소비 증가세보다 단연 높은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와인이 국내 시장에 스며든 만큼 과도기적 현상도 보인다. 와인을 마실 것의 하나로 즐긴다기보다 지식이나 매너 등 형식적인 면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또 '청와대 만찬에 오른 와인' '아셈 회의에 등장한 와인' 등으로 유명해진 몇몇 '국민와인'이 시장을 주도한다. 와인 자체의 특성보다는 '이름표'가 와인 시장을 좌우하는 셈이다.

"사람들이 와인을 알아야지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와인 매너에 대해 무척 집착합니다. 와인 백레이블에 적힌 산지나 맛 등의 기본 정보를 수입업자가 한글로 번역해서 충실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을 텐데, 현재는 소비자가 실질적인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아쉽네요. 지금도 와인과 맞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 와인과 맞는 음식을 먹을 때 시너지 효과는 있지만 모든 와인을 그렇게 맞춰서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와인을 된장찌개, 고등어 구이와 함께 먹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대중적인 음식과 마시면서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음료이고, 음식이지 않을까요?"

현재 엄씨는 영국의 '와인 마스터'(Master of Wine)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50년 넘는 기간 동안 200여명만 배출한 과정으로, 업계에서는 '와인의 신'이라 불리며 최고의 영예로 통한다.

"'와인 마스터'가 되려면 재배, 양조, 비즈니스, 마케팅 등 와인과 관련된 모든 주제에 자신만의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통과를 목표로 즐겁게 와인을 알아가고 있어요. 앞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만 가지의 와인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요. 와인 분석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사람들이 즐겁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출처: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