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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가의 눈에 비친 '관광 한국'

성공을 도와주기 2009. 4. 26. 11:33

홍콩 여행가의 눈에 비친 '관광 한국'

알프레드 우 씨, 관광공사 찾아 문제점 조목조목 지적      연합뉴스 | 입력 2009.04.26 08:07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지난 24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한국관광공사 14층 관광환경개선단 입구 엘리베이터 앞에서 60대 남녀가 관광공사 여직원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남녀는 언뜻 보기에 한국의 시골 노부부처럼 보였지만, 기자가 옆에서 지켜본 결과 영국 억양의 영어를 점잖고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홍콩에서 온 알프레드 우(65)씨 부부가 관광 불편 신고를 하러 온 것이었다. 관광 불편 신고를 하려고 외국인 부부가 관광공사를 직접 찾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여직원의 도움으로 관광 불편 신고 담당 직원을 만나 영어로 얘기할 수 있게 된 우씨는 윗옷을 벗어놓더니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한 달 전 온라인 숙박 예약 없어져 '허탈'
47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세계를 여행 중인 우 씨는 올봄 한국을 한 달간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월17일 홍콩 현지에서 서울 시내 게스트하우스에 온라인 예약을 했다.

재확인을 해 달라는 요구로 두 번이나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뒤 3월24일 입국한 우 씨 부부는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내렸다.

사이트에 나온 안내대로라면 버스에서 내린 장소에서 5분 만에 갈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무거운 여행 가방을 양손에 몇 개씩 들고 지도를 따라가도 게스트하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진눈깨비까지 내리자 "이럴 줄 알았다면 택시를 탔다"며 힘들어하는 부인을 혼자 쉬게 하고 우 씨는 지도 안내대로 계속 걸어갔다.

예약한 숙소를 발견한 것은 20분 이상 걸었을 때였다. 더욱 허탈한 것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이었다. '재확인이 안 돼서 방이 예약되지 않았다'는 것.

주인은 뭐가 켕기는지 갑자기 전화를 이리저리하더니 근처 숙소를 소개해주겠다며 우 씨를 달랬다.

'이중 예약'임을 직감한 우 씨는 기분이 상해 그대로 짐을 싸들고 나왔다. 그는 우연히 만난 인근 사진관 주인의 도움으로 다른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우 씨가 애초 예약한 숙소는 서울시가 인증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모아 둔 사이트에서 찾은 것이었다.

우 씨는 "외국인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사이트에 등록된 숙소들을 제대로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입국하는 날 그런 일을 경험한 우 씨 부부는 곧바로 제주-부산-경주-안동-대구의 전국 투어를 하고 서울로 다시 오느라 그제야 신고를 하게 됐다고 한다.

◇ 사이트·안내서 정보는 정확하고 보기 편해야
알고 보니 우 씨는 홍콩 여행사에서 20년을 넘게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여행사에 근무했던 기간을 포함해 퇴직해서 지금까지 세계에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한국은 1967년에 처음 온 뒤 1999년에 두 번째로 방문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내친김에 그는 관광 선진국보다 한국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다 털어놨다. 한국이 많이 발전했지만 관광 인프라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 내내 관광 정보가 담긴 웹사이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 씨는 "세계인들이 한국 관광을 위해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은 웹사이트"라면서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관광 안내 사이트들은 100% 정확하고 보기 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더니 우 씨는 갑자기 한 숨을 내쉬었다. 이번 한국 여행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부처님 오신 날 제등 행렬 정보를 어떤 곳에서도 찾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귀국일인 26일에나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

우 씨는 "왜 한국 관광을 알리는 사이트 등에서는 그런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만약 일찍 알았더라면 귀국일을 늦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등 행렬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관광공사 사이트 등에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축제를 월별로 소개하는 캘린더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광안내소 문제도 꼬집었다. 우선 서울 시내 관광안내소에 배치된 안내서들이 보기 불편하다는 것.

영문으로 표기된 지명을 길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물으면 영어를 읽지 못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지명이나 건물명에는 영문 등 외국어와 한글을 함께 적어야 물어보기 쉽다는 설명이다.

관광안내소 안내원이 영어를 대충 알아듣기는 하지만, 표현력이 부족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도 아쉽다고 우 씨는 말했다.

◇ 호텔보다 좋은 모텔 많다..정보 제공해야
우 씨는 서울에서도 그렇지만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모텔에 투숙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실망한 우 씨는 모텔을 우연히 들르게 됐는데 더없이 좋았다고 말했다.

3만5천∼4만원만 내면 방도 깨끗하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호텔 수준의 모텔이 많았다는 것.

우 씨는 "호텔처럼 고급 레스토랑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면서 "실속 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은 저렴하고 깨끗한 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방을 먼저 보고 싶습니다'라는 우리말 문구를 메모지에 적어 모텔 주인에게 보여주고 나서 안내를 받고 마음에 들면 투숙하는 요령을 발휘했다.

관광공사 등 관련 사이트에 있는 관광호텔 위주의 숙박 정보는 알뜰한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다만, 시설이나 서비스가 검증된 모텔들을 외국인들이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좋을 것이라고 우 씨는 덧붙였다.

◇ 한국은 그래도 '원더풀'
우 씨는 아쉬움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서 느꼈던 감흥과 감동을 숨기지 않았다.

전국 투어를 제주에서 출발한 우 씨 부부는 성산 일출봉 등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고 부산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숙박을 하면서 범어사, 통도사, 해운대, 태종대를 구경하고 진해에서 벚꽃놀이를 즐긴 우 씨는 '겨울 연가'의 촬영지인 외도를 가려 했으나 배 시간이 맞지 않아 불발에 그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점심때 행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한 시민이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가던 길을 뒤돌아서서 원하는 장소까지 안내해 준 친절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고 말했다.

경주로 향한 우 씨는 불국사 등 신라 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벚꽃까지 덤으로 구경한 뒤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봤다. 이어 대구에 들러서는 동화사와 갓바위에 올랐다.

우씨는 성산 일출봉과 불국사 등 한국에 이렇게 많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며 외국 관광객들에게 그런 것들이 제대로 홍보가 안 돼 있느냐고 지적했다.

우 씨는 "진해와 경주의 벚꽃도 너무 환상적이었다"며 "일본만 벚꽃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감탄했다.

다만, 우 씨는 그런 벚꽃도 외국인들이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보기 쉽게 홍보하라고 주문했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아무리 비좁아도 노인석에 아무도 앉지 않고 자리를 비워두는 것에 우 씨는 놀랐다고 한다.

덕분에 느긋하게 노인석에 앉았다는 우 씨는 "요즘 홍콩 젊은이들은 노인이 앞에 있으면 자는 척한다"면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유교 문화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그가 '원더풀'을 연발한 것은 시내 한 백화점 직원들이 비를 맞으면서 대리 주차를 빠르고 신속하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홍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기분 좋은 광경이었다고 우 씨는 평가했다.

우 씨는 설악산 단풍이 언제가 좋으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년에 다시 와서 못 봤던 외도도 구경하고, 단풍 구경도 실컷 하기 위해서다.

우 씨는 "한국이 일본보다 관광 경쟁력이 뒤질 이유가 없다"면서 "편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ㆍ오프라인 창구를 많이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세계 유수의 여행 안내서에 많이 소개가 돼 있지만, 한국은 '론리 플래닛' 말고는 그다지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우 씨 부부는 이번 입국 날 방이 없어 당혹해했을 때 숙소를 찾는 데 도움을 줬던 사진관 주인을 내년 방한 때 다시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또 간단한 한국말을 더 배워서 관광을 즐기고 싶다고 우 씨는 말했다.
hopema@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