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변환 기술분야 세계 최고 한국인"
"전력변환 고압ㆍ대용량화 기술 세계 최고권위자"
ABI, 2008년부터 전기분야 노벨상 '현동석상' 제정
30여년 외길 끊임없는 도전 "연구는 등산과 같다"
전문분야 세계 1인자 육성위해 교육체계 손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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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전원은 220V/60Hz다. 그러나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무려 2만~3만v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 전압을 각 가정과 공장에 그에 알맞은 전압으로 공급하는 기술은 여간 힘든 분야가 아니다. 전력변환시스템 덕분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는 한양대 전기제어 생체공학부 현동석 교수(61)다.
더구나 현 교수는 학부부터 석사, 박사까지 국내에서 마친 순수 국내파여서 주목된다.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에서 석사 그리고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다수의 학자들이 외국유학파인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그런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와 미국 인명연구소(ABI) 등 세계적인 기관은 그를 석학회원(fellow)으로 임명했다. 특히 세계 3대 인명기관 중 한 곳인 ABI는 지난 2008년 현 교수의 이름을 딴 `현동석 상 재단'을 만들고 매년 전기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이룬 학자를 뽑아 현 교수의 이름이 새겨진 상장을 주고 있다. 이 분야의 사실상 노벨상인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세계 전기공학 학문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전기공학 분야의 국내 학회인 전력전자학회도 현 교수와 부인의 성을 붙인 `백현상'을 만들어 3년 전부터 시상하고 있다. 1년간 학회 영문논문지에 게재된 전체 논문을 심사해 매년 수상자를 가린다. 현 교수가 학회 회장으로 있던 2000년 만든 영문논문지가 과학기술인용색인(SCI)에 등재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을 기념해 상이 제정됐다.
세계가 현 교수를 인정하는 것은 목적과 용도에 맞게 전력의 전압과 주파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전력변환장치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개발한 고압, 대전류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있기 기술이다.
그를 세계적인 연구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30년 이상 한 분야를 파고든 집념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이다. 그가 교수로 부임한 1979년에는 변변한 연구시설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꿈을 이뤄냈다. 현 교수는 "하고 싶은 것에 전력투구하면 불가능이 없다"며 "다가오는 고도의 전문 산업사회가 원하는 인물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파고들어 경지에 다다른 창의적인 전문인이며, 국가 교육시스템도 이들을 키워낼 수 있게 손질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양대 캠퍼스를 찾아 32년 연구인생을 거쳐 담아온 이야기들을 들었다.
- 1979년 한양대에 부임한 후 30년 넘게 한 분야 연구를 해왔는데, 어떤 기술인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는 분야에 맞게 주파수와 전압을 바꿔주는 전력변환장치 기술인데, 그 중에서도 고압화 및 대용량화 기술을 세계적으로 앞서서 개발했다. 일본이 이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 있었는데 이제 대등하거나 앞선 수준까지 이뤄냈다. 전력변환장치는 교류의 전압만 변환하는 변압기와 달리 교류뿐만 아니라 직류도 변환이 가능하다. 직류를 교류로, 교류를 직류로, 직류를 직류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주파수와 전압을 변환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고압으로 올리는 기술이 상당히 어렵다. 전력변환에 쓰이는 전력용 반도체 소자의 성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자 여러 개를 직ㆍ병렬로 연결해 회로를 구성하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 제어알고리듬을 개발했다."
- 오랜 개발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00년 정도에 기술을 어느 정도 완성했으니 그때까지만 20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그 후에도 계속 연구를 해왔고 현재도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기술의 첫 단계부터 시작했으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회로 구성, 전력용 반도체 소자 개발 등 다양한 세부기술이 종합적으로 개발돼야 하는데 하나하나가 기술적 난제를 극복해야 했다. 이제 전력변환 고압화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앞선 기술을 가졌다.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은 해외 300여편, 국내 370여편 등 거의 700편에 달한다. 기업들이 이 기술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고 해외 기업들도 기술을 참고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필요한 게 바로 직류인데, 변압기는 직류를 변환할 수 없기 때문에 전력변환장치가 대체할 것이다."
- 한 분야에 거의 미쳐야 가능한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연구는 등산과 같다. 그 중에서도 정상이 없는 등산이다. 산에 오르다 보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진다. 연구를 하는 중에도 한가지 어려움을 해결하면 기술 완성도가 한 단계 올라간다. 그런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다 봤다고 생각하지만 올라가면 또 산길이 이어지고, 죽을 때까지 해도 절대로 정상에 올라갈 수 없다. 그래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정상에 가지 못해도 계속 더 높이 갈 수 있고, 내려올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 후배나 제자들에게 평소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지.
"대학원생이 오면 먼저 하고 싶은 분야가 뭔지를 물어본다.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이룰 수 없다. 학생들이 내게 어느 분야가 비전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그 때마다 해주는 대답은 `비전은 어디든 다 있다. 너의 확신이 없을 뿐이다'라고 말해준다.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확신을 갖고 한 우물을 파면 좋은 결과는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한 분야에 미쳐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미치라고 한다."
- 대학원 과정이 빡빡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석사 때부터 하드트레이닝을 시킨다. 한 분야에서 도가 통하려면 석사과정부터 강한 교육과 연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부터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논문을 쓰도록 해서 해외에서 발표하도록 혼자 보낸다. 낯선 타지에서 혼자 논문을 발표해본 학생들은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온다. 과정은 힘들지만 선배들이 잘 자리잡은 것을 본 학생들이 서로 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박사 25명 내외, 석사는 180명 정도를 배출했다. 운영중인 전력전자연구센터에서는 15명 정도의 대학원생이 있고 전력변환장치, 전력용 반도체 소자, 모터 드라이브, 파워서플라이 등 다양한 연구를 한다."
- 최근 유능한 젊은 교수들 중 국내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국내파들이 늘고 있는데, 국내파로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생활영어가 약간 딸리는 거 외에는 전혀 문제없다. 전공영어는 문제가 없고 연구나 교육은 더더욱 상관없다. 우리나라에 박사과정이 생긴 게 서울대가 처음인데, 내가 1979년 박사과정을 시작했으니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한 거의 1호 세대다. 당시 초창기여서 아주 우수한 사람만 뽑았다. 박사과정 후 교환교수, 객원교수 등의 자격으로 외국대학에 여러 번 나갔으니 해외경험은 부족하지 않다. 나가서 들여다보니 학부 과정과 달리 대학원 과정은 우리나라가 더 힘들다. 미국 같은 경우는 할 수 있는 가능성만 보이면 졸업을 시키는데 우리나라는 아니다. 지금도 우리 학교에서 대학원 과정 중 도저히 안 돼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있다. 최근 국내 대학 수준이 높아져서 박사과정까지 국내에서 한 후 박사후과정을 해외에서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가서 보니 별 거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 세대만 해도 해외 정보를 접할 창구가 많지 않아 불편함이 있었지만 요즘은 국내나 해외나 정보의 차이가 없다. 연구와 교육 인프라도 국내가 더 잘 구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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