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농업회사 된 듀폰
질문 하나.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1955년 세계 500대 기업 명단을 처음 선정한 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회사로 70여년 전 나일론 스타킹과 칫솔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판 기업은? 정답은 미국 듀폰(Dupont)이다.
하지만 이달 중순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듀폰 본사에서 만난 카렌 퓰레처 IR담당 부사장이 한 말은 약간 의외였다.
"듀폰은 이제 화학섬유 회사가 아니라 농업과 바이오연료·신재생에너지 등을 주력으로 하는 종합과학 기업입니다."
테플론(표면 코팅제)·라이크라(기능성 소재)·케블러(고강도 인조섬유) 같은 혁신제품으로 세계 화학섬유업계를 100년 가까이 지배한 듀폰이 '농업 회사'가 됐다니….
반신반의(半信半疑)한 기자가 듀폰의 실적을 확인해 보니 지난해 농업·영양분야 매출(83억달러)이 6대 사업부문 가운데 가장 많았고 총매출액 대비 비중(32%)도 제일 높았다. 전기차 같은 친환경 제품에 들어가는 기능성 소재 매출은 18%였고, 케블러 같은 신섬유 분야는 10% 남짓했다.
다음날 기자가 찾아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있는 종자(種子) 전문회사인 '파이오니아'(듀폰의 자회사)에는 3000여명의 연구원들이 밭과 실험실 등에서 가뭄·병충해에 잘 견디는 옥수수, 다른 종자보다 생산량이 80% 많은 콩, 하이브리드(hybrid·복합)쌀, 살충제를 대체하는 유전자 조합 등 100여개 품목을 상용화했거나 막바지 개발 중이었다.
듀폰은 지난해 그룹 차원의 총 연구개발(R&D)비 가운데 절반을 농업·영양 분야에 투입했다. 그만큼 핵심 성장산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태양광·전기차 등 그린에너지 분야를 대대적으로 키우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듀폰은 이미 태양전지에 쓰이는 EVA, 백시트 등 10여개 소재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 올해 관련 매출이 작년보다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올 들어 출시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쓰이는 고성능 분리막인 '에너게인'은 배터리 수명을 50% 정도 연장시킬 수 있는 소재로 전기차 등에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1802년 출범한 올드(old) 기업인 듀폰이 갈수록 변신의 페달을 세게 밟고 있다는 점이다. 그룹의 상징과 같던 섬유사업을 2004년 팔아치운 듀폰은 금융위기를 겪은 지난해부터는 농업·바이오연료 등에 초점을 맞춘 '그린 스마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두 번째 '내부 혁명'에 나섰다. 그 밑바탕에는 내년부터 세계 인구가 매일 15만명씩 늘어 2050년에는 70억명이 된다는 면밀하고 과학적인 시장 예측이 깔려 있다.
듀폰이 208년째 장수(長壽)하는 비결을 묻자 엘렌 쿨먼 회장의 답은 이랬다.
"잘나가는 사업도 적절한 시기에 점검해 새로운 성장 사업군을 찾는 출구전략 덕분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시장(市場)의 흐름과 수요입니다."
이는 10년 넘게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 자리에 안주(安住)하다가 스마트폰 같은 시장 트렌드를 놓쳐 주가가 전성기의 4분의 1로 폭락해 휘청거리고 있는 노키아와 대비된다. 우리 기업들 가운데도 지금 잘나가는 몇몇 품목의 성공에 도취해 고통스러운 자기혁신 노력을 망각하고 있는 곳은 없는 걸까.
'비지니스 정보 > 기업경영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기업 상속 뒤엔 SI 업체가…왜? (0) | 2010.10.20 |
---|---|
코스닥 ‘강소기업’ 29곳 눈길 (0) | 2010.10.14 |
삼성이 카메라를 전략 사업으로 미는 7가지 이유 (0) | 2010.09.15 |
"전력변환 기술분야 세계 최고 한국인" (0) | 2010.08.24 |
1000년돼도 늙지않는 기업 (0) | 2010.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