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순익보다 복지…‘따뜻한 경영’ 꿈꾸는 여행사

성공을 도와주기 2010. 10. 14. 11:30

순익보다 복지…‘따뜻한 경영’ 꿈꾸는 여행사
사택제공·전직원 해외연수
사내 복지에 각별히 신경
우여곡절끝 직원 대주주
팀장·이사도 투표로 선출
한겨레 이정연 기자
» 올해 여행박사에 입사한 직원과 임원들이 지난 5월28~30일 충북 단양에서 열린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행박사 제공
[‘착한 기업’이 경쟁력이다] 여행박사

온라인 자유배낭여행 서비스업체인 ‘여행박사’ 임직원들은 이른바 ‘여박스러움’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여박스러움이란 자유분방하고, 재미있고, 때로는 변덕스러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일 테다.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여행박사 본사 건물에 들어섰더니, 70여명의 직원들은 7,8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업무 중에 틈을 내 사내 쉼터인 ‘야스미’에 들른 직원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거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장난꾸러기로 통하는 이 사람은 바로 신창연 대표이사다. 지난 10년 동안 ‘여박스러움’을 만들고, 발전시켜 가고 있는 장본인이다. 자유분방함이 매력인 이 회사의 규모가 작은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매출은 1000억원, 직원수는 160여명에 이른다.

사장은 엄연히 신 대표가 맡고 있지만, 회사의 ‘주인’은 바로 직원들이다. 임직원들이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이 최대지분을 거머쥐기까지 회사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지난 2008년 한 정보기술(IT)업체와 손잡고 우회상장을 했는데, 정작 여행업에 관심이 없었던 그들은 여행박사의 이름을 빌려 부채만 빠르게 늘려갔고 결국 회사는 감자와 상장폐지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대주주의 배임과 횡령 혐의가 드러났고,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임직원들이 맡게 된 것이다.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서 직원들의 마음가짐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2006년에 입사했다는 심규성 대리는 “아무래도 회사 고민을 기꺼이 더 하게 되고, 그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재나 보고 따위는 여행박사엔 없다. 대신 ‘넘쳐나는’ 게 있으니, 바로 직원 복지다. 직원들이 복지제도 중에서 ‘주거’ 복지를 으뜸으로 꼽는다. 출퇴근 시간이 3시간 넘게 걸리는 직원이라면 회사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택에 입주할 수 있다. 사택은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직원 등을 위한 회사의 배려다. 대구에서 올라와 입사한 지 두 달째인 권선아씨는 “사택은 서울살이에 가장 큰 혜택”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권씨는 5년 전 손님으로 여행박사와 첫 인연을 맺었다가 실력을 갈고 닦아 직원이 된 특이한 사례다. 지난해엔 경기침체와 신종 인플루엔자, 원-달러 환율 상승 등 각종 악재가 겹쳐 영업이익이 반 토막이 났음에도, 전직원이 해마다 한차례씩 다녀오는 국외 연수 혜택도 거르지 않았다.

여행박사가 초기부터 지켜온 임원 선출 방식은 직원이 곧 주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드러내 주는 사례다. 이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임원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기’가 많아야 한다. 직원 투표로 팀장이나 임원을 뽑기 때문이다. 연령이나 입사 서열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20대 중반에 팀장을, 30대 초반에 이사를 맡기도 한다. 주성진 과장은 “사장님은 우리 전부의 능력과 역량을 일일이 다 알 수는 없다”면서 “같이 일 해본 사람들이 누가 팀장이나 이사의 자질을 갖췄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해줬다.

“이제는 ‘제로 순이익’을 목표로 삼았어요.” 신창연 대표가 불쑥 던진 한마디 속엔 여행박사만의 독특한 철학이 잘 묻어나온다. 열심히 일해 순이익이 나더라도 사회공헌을 늘리든, 성과급을 지급해서든 간에 수치를 ‘0’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기획연재 : ‘착한 기업’이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