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클래식 음악은 언제 듣는 기 좋노?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
30년 전 고교 시절 어느 겨울밤 친구네 골방에서였다. 왜 그 밤에 그 친구와 그곳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는 아마 아름다운 여배우나 교회에서 만난 여학생, 혹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던 듯하다.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가 난데없이 “니 클래식은 언제 듣는 기 좋은지 아나?”라고 물었다. 내가 뾰족한 대답을 못하자 그는 마치 나를 한 수 아래 인간인 것처럼 쳐다보더니 “팝송은 아침, 클래식은 저녁, 재즈는 늦은 밤”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거침없는 ‘개똥철학’에 나는 기가 죽었던 기억이 분명하다. 이후 어떤 음악이 어느 때에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다. 현악3중주, 피아노4중주 같은 실내악곡은 분명 햇볕 따스한 오후 시간에 어울린다. 공부하거나 책 읽을 때는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이, 운동할 때는 오페라 음악이,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라르고나 아다지오 빠르기의 곡들이 제법 적합하다고 생각해왔다. 라디오나 인터넷 음악방송을 들어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아침엔 조금 활달한 곡들이, 한낮엔 무거운 교향곡이, 저녁엔 아늑하거나 처연한 곡이 주로 나온다. 오전 9시 KBS 1FM ‘장일범의 가정음악’처럼 특정 분위기의 곡에 한정하지 않고 풍성한 음악적 즐거움을 안겨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나름의 자장(磁場)이 그 시간에 형성된다. 아침에 인터넷으로 영국 라디오 ‘클래식에프엠(Classic FM)’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각 영국은 깊은 밤이다. 추운 겨울 아침, 저녁 분위기의 잔잔한 곡들을 듣는 기분도 나쁘진 않다. 클래식 음악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제법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모차르트의 소나타 음악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모차르트 효과’뿐 아니다. 불가리아 심리학자 게오르기 로자노프는 1분에 60박자 정도의 패턴을 갖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며 외국어를 공부할 때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찰스 에머리 박사는 동맥경화증 환자가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운동할 경우 음악 없이 운동하는 것보다 말하는 능력이 두 배 이상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교시절 그 친구는 클래식 음악이 어울리는 장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던 듯하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그렇지 않은 곳에서보다 술과 음식을 더 많이 시켜 먹는다는 연구도 있다(노스 박사 등, 2003년). 음악 감상 자체에 대한 학습능력이 깊어지는 자리는 연주회장만한 곳이 없다. 훨씬 능동적인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예기치 않은 감동을 선사받을 때가 많다. 지난 연말(12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복귀 무대에서였다. 그가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무대를 떠난 뒤 6년 만의 공식 독주회였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도 커서 합창석까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연주할 때였다. ‘바이올린의 여제’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그가 갑자기 사레들려 기침 때문에 2~3분간 연주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돌연한 ‘사건’의 원인을 짐작할 만한 내용이 프로그램 팸플릿에 적혀 있었다. “이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중 가장 향수 어리고, 음악적으로 무르익고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작품이기도 합니다.”(정경화)
자신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워준 어머니를 수개월 전에 여의고, 부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무대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곡을 연주하면서 그는 울컥했던 것일까. 이후 정경화는 6곡의 앙코르곡으로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클래식 음악을 때와 장소에 한정해서 그 어울림을 따지는 일은 주관적인 면이 강하다. 다만 클래식 음악이 인간에게 심미적으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끝)
|
|
이 주간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요한 시트라우스의 ‘왈츠’다. 그 외에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가 12월31일 밤 전통적으로 세계 유명 가극장에서 공연된다.
오페레타(operetta)란 작은 오페라(opera)라는 뜻으로 오페라보다 쉽고 가벼운 작품들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해하기 쉽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아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훗날 뮤지컬로 발전, 오페라와 뮤지컬을 있는 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 ‘박쥐’는 흥겹고 화려한 오페레타로 실컷 웃고 떠들어서 그 해를 잊고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 담긴 음악이다. 특히 2막은 유명 가수들이 출연, 형식과 제한 없이 자신의 히트곡들을 부르는 화려한 갈라 퍼포먼스로 연주된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는 해마다 1월1일 아침 신년음악회가 열리고 TV를 통해 전세계에 중계되어 새해의 도착을 알린다. 이 음악회는 1941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면서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나치 패망 후에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왈츠와 폴카로 새해를 시작하는 신년음악회의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연주를 맡은 170년 전통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33년부터 상임지휘자 없이 매년 유명인을 청빙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빙된 지휘자가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올 음악회는 러시아 출신 거장 마리스 얀손스. 2006년에 이어 두 번째 신년 지휘다. 2006년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이번 음악회가 무척 기다려질 것이다. 마리스 얀손스의 2006년 신년음악회에 관해서는 그의 멋진 지휘와 함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회자된다. 지휘 도중 얀손스의 휴대전화 벨이 울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능숙하게 지휘를 이끌면서 휴대전화를 껐다. 그것이 한 폭의 연기처럼 부드러웠고 관객들은 폭소했다. 빈의 신년음악회는 전세계 5천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대중적 퍼포먼스다. 다음해 신년음악회 입장권은 바로 다음날 즉 2일부터 3주간 인터넷을 통해 표를 사야 하는데 추첨으로 최종 결정한다. 1인당 2장까지며 3월 초 추첨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살 수 없다. 엄청난 가격도 뉴스며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표를 사는 것도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연말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에 독창과 합창이 가미된 이 ‘환희’의 대교향곡은 연말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교향곡이다. 베토벤은 타고난 천재성보다도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의 음악인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가 직접 작성했던 악보 원본들을 보면 수없이 고친 흔적들과 수많은 메모들을 본다. 동시대에 살았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번뜩이는 영감으로 단번에 악보를 써 내려간 반면, 베토벤은 고뇌와 번민 속에서 어렵게 작품을 완성하곤 했다. 소년시절에 읽었던 빌헬름 쉴러의 시 ‘환희에 붙임’을 읽고 깊이 감동했던 베토벤은 21세, 41세, 47세 등 세 번에 걸쳐 이 시에 곡을 붙여 작곡을 시도했으나 실패를 거듭하고, 53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악장과 3악장을 완성했다. 이어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2악장과 4악장마저 완성했다.
베토벤이 평생생에 걸쳐 구상하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교향곡에 성악을 포함시킨 것은 당시 형식을 파괴한 파격적인 일이었으며, 1시간 이상 걸리는 이 대작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예술성을 지닌 교향곡으로 평가받는다. 음악역사에 기록된 이 위대한 교향곡의 초연장면: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그래도 직접 지휘하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부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악장의 도움으로 초연을 시작했다. 1악장부터 엄숙하고 웅장한 사운드로 청중을 긴장시킨 뒤 빠른 템포와 강렬한 타악기의 타건이 빛나는 2악장에 이르러 이미 청중은 흥분되어 곡 중간에 터져 나온 여러 번의 박수소리로 연주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3악장을 거쳐 4악장에 이르자 다시 청중은 감격과 흥분에 휩싸였다. 여기에 ‘환희의 송가’ 선율이 오케스트라로 시작되어 바리톤의 서창과 4중창, 합창, 테너독창, 마지막 대합창이 펼쳐지자 청중은 눈물을 흘리며 태풍 같은 열렬한 박수로 위대한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청중을 등지고 멍청하게 서 있었는데, 알토가수가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아끌어 청중을 향하게 하자 비로소 그도 이 마지막 교향곡이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음악가에게 청력은 생명이다. 화가에게 시력이 절대 필요한 것과 같다. 청력을 완전히 잃고 좌절과 고통에 빠졌던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와 음악 혼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인생을 이 교향곡에 담았으며, 인간과 인류애에 대한 그의 신념과 희망이 마지막 4악장의 합창으로 드라마틱하게 반전되어 우리를 항상 감동시킨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에 듣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은 없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울려 퍼졌던 ‘환희의 송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나의 조국 휴전선에서도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며 다사다난했던 2011년도에 작별을 고한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
'사람사는 이야기 > 향기나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르너 뮐러 오케스트라 - 탱고와 집시 왈츠 (0) | 2012.02.26 |
---|---|
클래식 음악감상 18곡 (0) | 2012.02.26 |
왜 우리가 시처럼 살면 안되겠습니까? / 구 본형 (0) | 2012.02.04 |
<파워인터뷰>이어령 “산업화·민주화 영웅들 짐 내려놓고 떠나라” (0) | 2011.09.11 |
당신은 감동을 주는 리더인가? (0) | 201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