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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삼성, 잡스를 ‘훔치다’

성공을 도와주기 2012. 5. 15. 12:52

 

2012년 삼성, 잡스를 ‘훔치다’

2006년 잡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삼성이 감성으로 돌아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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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 박현영 | 입력 2012.05.15 00:20

201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아이폰4 공개 행사에서 새로 선보이는 영상전화 기능 '페이스 타임'을 시연했다. 잡스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인 조니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말하고 버튼 하나를 누르자 조너선 아이브 애플 수석 디자이너가 화면에 등장했다. 아이폰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기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잡스는 이어 새로 만든 광고를 틀었다. 출장 중인 남편에게 딸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인, 졸업 가운을 입은 손녀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할아버지, 파병된 군인 남편에게 뱃속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는 임산부 아내, 농아 연인이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장내가 숙연해지자 잡스가 말했다.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지를 되새겨주는 여러 순간 중 하나다." 

 이로부터 3개월 전인 2010년 3월 삼성전자의 갤럭시S 발표 행사.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무선사업부장)은 "초고화질·초고속·초슬림 스마트폰"을 강조했다. 현존하는 최고 화질의 수퍼 아몰레드, 9.9㎜ 두께의 초슬림 디자인을 앞세웠다. 이듬해 4월 갤럭시S2 출시 때는 "더 빠르고, 더 선명하고, 더 얇아진 스마트폰"이라고 했다. '현존 최고 속도의 1.2㎓ 듀얼코어'는 삼성의 큰 자랑거리였다.

'사람 중심'을 강조한 삼성전자 갤럭시S3.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하드웨어와 스펙(사양)을 앞세웠던 삼성전자가 이달 3일 갤럭시S3를 발표하면서는 확 달라졌다. 신 사장은 갤럭시S3를 '사람을 위한' 스마트폰이라고 명명하고 "스마트폰이 당신을 보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 인체공학적인 디자인, 감성, 자연을 닮은, 조약돌, 나뭇잎, 스마트하면서 심플한 같은 단어가 그의 입에서 줄줄이 나왔다.

 자랑할 하드웨어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제품은 쿼드코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달았고, 수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 등 신기술 하드웨어가 많이 적용됐다. 그런데도 스펙은 잠시 언급만 했을 뿐 다양한 사용자 편의 기능을 앞세웠다. 그간 애플이 추구해 온 감성 전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펙과 하드웨어를 상품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던 삼성이 감성 중심으로 전환했다. 무선사업부 디자인그룹 이민혁 상무는 "직관을 넘어, 사람이 기기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기기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눈동자와 얼굴을 인식해 화면이 꺼지지 않는 '스마트 플레이', 전화기를 손으로 잡으면 부재중 전화와 부재 중 문자를 알려주는 '스마트 얼러트' 등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혁신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갤럭시S3는 애플의 특기인 감성적 접근, 사용자 중심이라는 컨셉트를 '훔쳤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83년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을 처음으로 인용했다. 이듬해에는 키보드로 명령어를 쳐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콘을 눌러 사용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채용한 첫 PC인 매킨토시를 내놓았다. GUI는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PARC)에서 처음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잡스는 이를 더욱 개선해 자신의 작품에 넣은 것이다. 그는 2006년 아이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접목시킬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피카소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에 더욱 과감해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전략 변화는 지난해 말 나온 갤럭시노트에서 엿볼 수 있다. S펜을 들고 나오며 '종이에 글을 쓰는'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오며 처음으로 스펙보다 사용자 환경을 강조했다. 압도적인 하드웨어 성능으로 사용 환경의 불편함을 커버해 '스펙이 감성'이라는 말을 들었던 삼성이 잡스의 생각을 훔치며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삼성은 지난해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을 제치며 1위로 올라섰다. 올 1분기에는 휴대전화 9350만 대를 팔아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휴대전화를 100만 대씩 팔고 있는 셈이다. 그중 스마트폰은 4450만 대로 애플(3510만 대)과 스마트폰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애플은 올 1분기 휴대전화 업체 수익의 73%를 차지하며 여전히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삼성도 26%를 차지했다. 두 회사의 이익을 합치면 업계 전체의 99%에 달해 명실상부한 양강체제를 이뤘다. 나머지 1%를 놓고 LG전자·HTC·모토로라·소니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세계 1위를 호령했던 노키아와 스마트폰의 강자였던 블랙베리, 신흥 강자로 주목받던 HTC는 끝 모를 추락을 하고 있다.

 삼성이 기기가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방향을 튼 배경은 뭘까. 삼성전자 측은 "삼성 스마트폰은 최고의 사양은 기본이 됐고, 여기에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진정으로 '똑똑하게' 만드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미 화웨이·ZTE 등의 중국 업체들도 '세계 최초' '세계에서 가장 얇은' 각종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다. 이 상무는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의 경험을 생각하고 디자인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