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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강국의 길

성공을 도와주기 2013. 4. 16. 12:50

중소기업 강국의 길
1부 히든 챔피언에서 배운다

3대 성공비결, 1 틈새 공략 2 우수인력 양성 3 글로벌화

등록 : 2013.04.15 21:29 수정 : 2013.04.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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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활유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업체인 푹스의 만하임 공장 생산라인에서 한 근로자가 윤활유 제품 용기의 뚜껑을 막는 작업을 하고 있다. 푹스 제공

중소기업 강국의 길
1부 히든 챔피언에서 배운다
② 히든 챔피언의 성공 DNA

독일 남서부의 공업도시 만하임. 바다에서 700km 떨어진 내륙에 위치해 있지만, 라인강을 이용한 수로가 잘 발달한 독일 최대의 내륙 항구 도시다. 독일 명차의 상징인 벤츠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벤츠의 고향’이자, 유럽 최대 석유화학업체인 바스프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윤활유 전문 생산업체인 푹스오일(이하 푹스)은 만하임을 관통하는 네카강을 사이에 두고 바스프와 마주보고 있다. 1992년 ‘히든 챔피언’이라는 용어가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의해 세상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대표적 사례로 꼽힌 독일의 강소기업이다. 82년의 역사를 가진 푹스는 전 세계 윤활유 생산업체 중 시장점유율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윤활유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590여개 업체 중에서는 단연 1위다. 폭스바겐·베엠베·벤츠 등 한국에 수입되는 유럽 자동차들은 거의 대부분 푹스가 생산하는 윤활유를 사용한다.

푹스의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지역 책임자인 게오르그 린그 이사는 지난 3월 초 방문한 <한겨레> 취재진에게 독일 히든 챔피언의 첫번째 성공비결로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틈새시장 집중 전략을 꼽았다. 푹스는 전 세계 10만여 고객들에게 1만가지의 제품을 공급한다. 하지만 생산제품들은 모두 윤활유 한가지다. 게오르그 린그 이사는 “푹스는 80여년의 오랜 역사 동안 기본적으로 윤활유 중심 사업원칙을 지켜왔다. 히든 챔피언의 성공 비결은 다른 사람들이 눈을 돌리지 않는 틈새시장을 집중해서 공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00여개 독일 히든 챔피언의 절반은 설립된 지 65년을 넘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들은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기술력에서 우위를 보이는 특정 전문분야, 즉 틈새시장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고수해왔다. 한국의 재벌이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 다각화를 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게오르그 린그 이사는 “사업다각화를 하는 기업은 진정한 히든 챔피언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슈투트가르트 인근 소도시인 로이트링겐에 위치한 강철선가공설비 생산업체인 바피오스도 히든 챔피언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안경테, 의료기구 등에 들어가는 온갖 종류의 스프링, 철제의자 몸체, 모터사이클의 완충장치, 식기세척기 등의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 강철선을 구부려 만든다는 것이다. 바피오스는 이처럼 강철선으로 여러 제품을 만드는 기계설비를 생산하는 업체다. 바피오스는 15년 전 사업영역을 강철선에서 강관으로 더 넓혔다. 하지만 강관 역시 속이 비어있는 강철선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바피오스의 최고기술책임자인 우베 피터 바이그만 박사는 “강철선과 강관을 구부려 가공하는 기계를 종합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우리 회사가 유일하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서 고객에게 최고의 기술과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업다각화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히든카드 1
기술력 우위 앞세워 전문분야 공략

틈새시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기술개발투자가 필수적이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바피오스는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을 매출액 대비 7~8%로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정보통신(IT)업체들의 평균 연구개발투자가 매출의 5% 정도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바피오스는 독일 내 4곳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독일 노동자들의 비싼 임금이 부담이지만 높은 기술력과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제작연도가 1929년으로, 연식이 84년이나 된 우리 회사 기계를 여전히 사용하는 고객이 있다. 회사는 그 고객을 위해 지금도 부품을 공급한다. 10~20년만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생각이면 생산비용이 낮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겠지만, 100년을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면 높은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베어링 생산업체인 셰풀러도 히든 챔피언의 틈새시장 집중 전략을 잘 보여준다. 섀풀러는 1883년에 소 달구지에 쓰이는 나무 바퀴를 제작하던 영세기업에서 출발한 뒤 베어링과 자동차 부품사업으로 특화했다. 셰풀러는 이런 틈새시장에서 2012년 매출이 111억유로(16조원)에 이르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코트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의 강형곤 투자유치팀장은 “히든 챔피언들의 사업분야는 대기업의 진입이 쉽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인수합병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의 구조조정을 잘해 선택과 집중 전략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독일 중소기업연구소(IFM)의 미카엘 홀츠 연구원은 히든 챔피언의 틈새시장 집중을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전략으로 풀이한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규모 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중간 정도이기 때문에 경영전략이나 문화도 대기업과 차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히든 챔피언들은 틈새시장에서 싼 가격이 아닌 높은 품질과 고객 친화적인 제품으로 승부한다. 고객들은 히든 챔피언의 제품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도 기꺼이 지불을 한다.”

#히든카드 2
직원이 경쟁력의 핵심

히든 챔피언의 두번째 성공 비결은 독일 특유의 직업교육시스템과 평생학습을 통한 우수한 숙련인력 확보에 있다. 푹스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국의 울산공장을 포함해 전 세계 40개 생산기지에서 골고루 10%씩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게오르그 린그 이사는 “위기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연구개발과 판매분야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위기에서 벗어난 2009년 이후 인력을 다시 확충할 때도 연구개발과 판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카엘 홀츠 연구원은 “미국 기업들은 직원을 단지 비용이 나가는 생산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직원을 기업 성공에 꼭 필요한 필수 요소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바피오스는 장기간의 교육을 거쳐 전문성을 확보한 우수한 인력을 경쟁력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전문인력과 숙련 노동자들을 양성하려면 최소 3~7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확보한 핵심인력들은 회사가 버틸 수 있는 버팀목과 같다. 만약 핵심인력들이 회사를 그만둔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기술도 사라지고, 회사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종업원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기업문화에서 직원들을 중시하는 사람중심경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대다수 히든 챔피언들은 직원들을 지식근로자로 양성하기 위한 직장 내 평생학습체제 구축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 푹스는 10년 전부터 사내교육기관인 푹스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직원들은 푹스아카데미에서 기술과 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푹스는 사내교육 덕분에 경력직원이 필요할 때 외부채용보다 내부인재를 활용한다. 또 우수한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여성인력 우대정책을 지속적으로 편 결과, 현재 관리직의 2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고등학교·대학교와 연계된 독일 특유의 직업교육시스템도 히든 챔피언들아 우수한 숙련인력을 확보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학교교육과 병행해 일정기간 인턴과정을 밟으면 정식사원으로 입사한다. 이는 숙련인력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한다. 바피오스는 매년 고등학교 10학년을 마친 젊은이들 중에서 20명을 직업교육생(교육실습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 중에서 이틀은 학교에서 이론공부를 하고, 3일은 바피오스에서 기술을 배운다. 이렇게 3년의 과정을 무사히 끝낸 직업교육생들은 정식직원으로 채용한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도 습득하기 때문에 기업에게 바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직업교육생 출신들도 본인이 원하면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 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 또 본인이 원하면 석사, 박사 학위도 계속 딸 수 있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바피오스의 이사 3명 중 1명은 이같은 직업교육생 출신”이라고 귀띔했다.

#히든카드 3
세계 진출로 안정적 시장 확보

수출과 현지 진출을 통한 글로벌화는 히든 챔피언의 세번째 성공 비결이다. 푹스는 처음 만하임 지역에서 시작해 독일 남부, 독일 전역, 유럽, 전 세계 순으로 차례로 진출했다. 1950년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인 글로벌화에 나섰고, 이제는 전 세계에 50개 자회사와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푹스의 매출 중에서 해외 비중은 70%를 넘는다. 바피오스도 전 세계 7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바피오스의 수출 비중은 매출의 65%에 달한다.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전 세계에 폭넓게 시장을 갖고 있으면, 내수기업보다 경기변동에 덜 취약하다. 한 나라에서 판매가 부진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좋은 실적을 거둬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히든 챔피언 전문가인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학이 빈프리드 베버 교수는 “슈튜트가르트 인근에서 지진측정기를 만드는 한 중소기업은 종업원이 10명에 불과하지만 생산량의 90% 이상을 전 세계에 수출한다. 독일 중소기업은 글로벌되어 있고, 수출 지향적이다”고 말했다.

#한국 중소기업에 주는 교훈
“싼 가격 아닌 기술 차별화로 승부”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강소기업을 희망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어떤 도움말을 줄까? 푹스의 게오르그 린그 이사는 “싼 가격이 아니라 품질과 기술 등 다른 차별성을 확보해서, 대기업과 대등한 파트너 위치에 올라서라”고 강조한다. 바피오스의 바이그만 최고기술책임자는 “히든 챔피언은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고, 끊임없이 혁신과 고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강하다. 한국인들도 변화 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성과를 중시하는 만큼 중소기업 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하임·슈투트가르트(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