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
2013. 05. 16
방송 진행자인 조현 기자와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법륜 스님. 사진 <평화재단> 제공
<한겨레> 창간 25돌 기념 대담
떨어지는 낙엽도 예쁘듯
늙는 것 자연스럽게 수용
죽음에 대한 두려움 깨야
남한테 신세졌으면 좀 갚고
움켜쥐고 집착한 것 있으면
훌훌 털고 베풀면서 살아야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신과 능력, 외모 무엇하나 남부럴울게 없었다. 모두의 부러움을 산 ‘엄친아’였다. 그런 그가 당시로선 중년을 앞둔 29세에 모든 스펙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왜였을까. 어느 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실상을 목도한 그는 스펙도 부도 권력도, 신조차도 생노병사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위기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이를 극복할 길을 찾아 떠났다.
그 동안 식민과 전쟁, 가난, 독재의 와중에서 생존을 위해 달리기에만 급급했던 한국인들에게도 싯다르타의 위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서고 있다. 최대 축복으로 찬양되던 장수 시대로 진입했지만, 오히려 불안은 커져간다. 금융회사들은 불안마케팅으로 노후를 맞는 대중들의 불안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자포자기와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민 우울시대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우울한 현대인들에게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보다 평안하고 행복해질 길이 있을까.
<한겨레> 창간 25돌과 ‘부처님 오신날’(17일)을 맞아 한겨레티브이가 정토회 지도법사이자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60) 스님을 초청해 그 길을 물었다.‘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이다.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 강당에서 진행된 첫 대담은 주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집중됐다.
불교는 ‘생사일여’(삶과 죽음이 하나)라며 죽음을 최고의 평화인 열반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 입문한 뒤 10여년이 지난 1970년대말 유신말기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으며 생명의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두렵고 왜소해지고 비굴해지는 자신을 봤다”고 고백했다.
그는 중고등학교에 재학할 때까지 100미터 달리기만 해도 온 몸에 파랗게 반점이 생길만큼 허약했다고 한다. 늘 죽음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셈이다.
그는 “생명이 있는 것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도 하나의 법칙이 있어 지속하려는데, 이를 중단시키려들면 저항이 따른다는 것이다.
“산토끼 같은 들짐승도 죽이려하면 도망가고 발바둥친다. 그러나 수명이 다해도 그런가. 자연스럽게 생명이 다할 때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의 죽음관은 ‘자연스러움’에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세상이 지속가능하려면 태어남만 있어서는 유지될 수 없다고 한다. 태어남은 있는데 죽음이 없다면 이치에도 맞지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불운을 행운으로 돌리는 것은 수행이 주는 축복이다. 그는 “남들은 70~80년을 살겠지만 내 수명은 40 전후쯤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점이 오히려 열심히 사는 계기가 됐고, 그 이후 삶은 덤으로 여기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만약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쓰려졌다면 사탕을 먹이든지 링게르를 꽂아 회복시켜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기절했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뇌사에 이르렀다면 자연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것은 나든 남이든 마찬가지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도 생명 존중 사상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 명이 다해서 죽어가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관심은 천국이나 극락을 보았다느니 내세는 없다느니 하는 관심이 지대하다. 그러나 그는 “문제의 핵심은 ‘죽느냐 안죽느냐’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임을 분명히 한다. 자신이 영원히 사라져버릴까봐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그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얼음으로 만든 구슬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보니 얼음구슬이 물이 돼 있다면 아이는 구슬이 없어졌다거나 물이 생겼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없어졌다거나 생겨났다고 생멸을 인식하지만 존재 자체는 없어진 것도 생긴 것도 아니다. 변화된 것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존재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존재란 본래 생겨남과 사라짐이 없이 변할 뿐이라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꿈과 같은 것이다. 꿈 속에 살 때는 좋은 꿈이 있고, 나쁜 꿈이 있지만 인식의 오류에서 벗어나면 두려움은 꿈일 뿐이다.”
그는 “봄에 피는 새잎도 예쁘지만 여름에 무성한 잎도 예쁘고, 가을 단풍도 예쁘고, 떨어지는 낙엽도 예쁘다.”고 했다. 그는“늙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면 주름살도 생기고 눈도 좀 침침하고 걸음걸이도 불편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90살이 되어도 눈이 초롱초롱하고 피부도 탱클탱글해져야한다고 생각하니 늙어가는 것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과거에 대한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머물며 현재의 자신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는 “병이나 육체적 통증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 아파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삶의 현실은 그 어떤 것이든 좀 더 가볍게 기꺼이 받아들이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삶의 자세를 배워나가야만 고통을 줄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2시간의 대담이 끝날 무렵 방청객의 60세 주부가 질문을 했다. 작년까지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를 했다는 그는 “임대주택에 살며 아이 둘을 기르느라 저축도 못해 2016년부터 20만원의 연금을 받는 것이 전부여서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법륜 스님은“몸은 누일 방이 있고, 밥은 안 굶고 살 수 있으니 다행이고, 나이 들면 많이 먹는게 몸에도 안좋다”는 유머로 가볍게 답변을 시작했다.
“아직은 손자를 봐주든지 절에 가서 청소만 해줘도 한달에 20만~30만원은 벌어서 쓸 수 있는 나이다. 소박하게 생각하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사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제 막 복지가 시작돼 앞으로 복지는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은 그의 주특기다. 그는 “남은 삶을 돈벌이만이 아니라 어떻게 봉사하고 기여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60년 살아온 것보다 더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후의 불안’을 오히려 축복으로 뒤바꿔 주었다.
“사람들은 ‘지나고 보니 대학생 때가 좋았네, 30대가 좋았네’ 한다. 그러면 나중에 70, 80이 되어선 60대가 좋았다고 할 것이다. 지금이 그 좋은 60대가 아닌가. 나이 들어서 좋은 게 얼마나 많은가. 학생 때처럼 머리 싸매고 공부 안해도 되지, 취직 안해도 되지, 결혼하려고 이 남자가 나은지 저 남자가 나은지 고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아이를 안나아도 되지않은가. 다 큰 자식과 세상 걱정 할려면 끝이 없다. 이제 훌훌 털고 남은 삶을 덤으로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면서 입었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가겠다는 자세로 작은 기여라고 할 수 있으면 좋지않은가.”
법륜 스님이 두시간동안 손잡고 안내한 곳은 천국도 극락도 아니다. 그가 ‘1년 밖에 못산다는 암환자를 병문안하고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나 미래로 도망치는 마음을 싹둑 베어내는 화두에 다름 아니다.
“하루도 못살 사람이 1년이나 살 사람을 격려하고 위문했다. 결국 환자의 고통은 1년 밖에 못사는 게 아니다. 1년 밖에 못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1년을 괴롭게 살다가 죽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핵심은 1년을 사느냐, 100년을 사느냐가 아니다. 열흘을 사는 것도 소중한 인생이고, 100년을 사는 것도 소중한 인생이다. 1년 밖에 못산다고 할수록 그 하루하루를 더 기쁘게 살아야 한다. 남이 10년 사는데 자기는 1년 밖에 못살면 10년 살 사람보다 10배 더 기쁘게 살아아 한다. 이제 곧 죽으니 남 걱정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이 남한테 신세졌으면 좀 갚고, 남 칭찬 못했으면 칭찬도 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움켜쥐었으면 좀 베풀고, 이렇게 1년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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