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리엔트 특급 ‘해랑’에서의 하룻밤
등록 : 2013.11.06 21:17수정 : 2013.11.07 11:22
[매거진 esc] 국내 최초 호화열차 체험기
1박에 백만원대의 객실요금. 특급호텔처럼 쾌적한 잠자리와 고급음식을 서비스하는 호화열차 ‘해랑’이 출발한 지 5년이 됐다. 웬만한 동남아 여행보다 값비싼 국내 여행이지만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1박2일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환대를 esc가 체험했다.
열차 타고 북한 땅 통과해 중국·시베리아 거쳐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다면. 경의선 철길 따라 신의주 거쳐 압록강 건너 달릴 수 있다면…. 아시다시피, 이런 꿈이 이뤄질 뻔했던 적이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서다. 2007년 10·4 남북 정상 합의에 따라 베이징 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을 위한 특별열차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 열차 운행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내 최고급 호화 관광열차로 불리는 ‘해랑’은, 방치돼 있던 이 특별열차 2편성을 개조해 2008년 가을 선보인 것이다. 당시 해랑은 고가 요금 논란 속에서도 블루 트레인, 로보스 레일, 오리엔트 특급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호화 열차들과 비교되며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일 고품격 명품 열차로 관심을 모았다.
“제공받는 음식 맛도 좋지만
좌석마다 고객 명패를 붙여
자리 다툼을 없앤 게 맘에 들었다
제대로 대우받는 느낌이었다”
‘달리는 특급호텔’을 내세운 해랑이 운행을 시작한 지 10월 말로 꼭 만 5년이 됐다. 마침 일본에선 지난 10월15일 일본 첫 육지 크루즈를 표방한 ‘7성급’ 초호화 열차 ‘세븐 스타’ 운행을 시작해 철도여행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해랑(‘해와 함께’라는 뜻). 1인당 요금(2인1실)이 52만~116만원(1박2일~2박3일)에 이르는, 국내 최고가의 이 호화 관광열차는 지금 누구를 태우고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을까. 지난 10월26일, 코레일 협조를 받아 해랑 ‘씨밀레 코스’ 1박2일(서울역~전주~곡성~순천~서울역)을 체험하고 왔다.
아침 8시, 서울역 2층의 한 카페. “해랑은 승차권이 없습니다. 객실 카드키가 승차권을 대신합니다.” 인원 점검을 마친 해랑 승객들은 무료 음료를 들며 승무원으로부터 객실 키와 세부 일정표를 건네받았다. 객실에 짐을 풀고 열차가 출발하자 “곧 이벤트 칸인 5호 차량에서 열차와 승무원 소개 및 일정 안내 모임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객실은 좁은 듯했지만, 깨끗한 2층 침대에, 화장실·샤워실도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어 며칠쯤 장거리여행도 불편 없이 지낼 듯싶었다. 24시간 승무원과 연결되는 인터폰, 소화기 등도 갖췄다.
이날 승객은 37명, 중·노년 부부와 연로한 모녀 여행객이 대부분이고 자녀와 함께 온 가족 여행객은 2팀이었다. 승객들은 수시로 외국여행에 나선다는 여유있는 태도의 노부부에서부터 침대열차를 처음 타본 70대 어르신, 2층 침대에 열광하는 어린이까지 다양했다.
해랑은 어떤 열차일까. 발전차를 제외한 객차는 8량으로, 디럭스룸·스위트룸·패밀리룸 등 객실(23실) 차량이 6량, 식당·카페 차량 및 라운지·이벤트 차량 1량씩이다. 카페 칸과 이벤트 칸은 이동 편의를 위해 가운데(4·5호 차량) 배치돼 있다. 객실은 더블침대(패밀리룸은 더블침대와 이층침대)와 화장실, 샤워룸, 티브이 등이 기본. 특히 스위트룸엔 킹사이즈 침대와 응접 테이블과 소파, 냉장고까지 마련돼 있어 호화열차다운 면모를 보였다. 카페 차량 한쪽엔 과일과 주스, 커피 등 음료와 주먹밥·과자 등을 마련해 뒀고, 바에선 와인과 치즈, 맥주 등을 제한 없이 주문해 먹을 수 있게 했다. 푹신한 소파들이 좌우로 놓인 5호칸 이벤트 차량엔 디브이디 영화 감상 시설이 설치됐고, 한쪽엔 노트북 2대가 설치된 컴퓨터실도 있다.
해랑 카페 차량의 바에 선 와인과 맥주를 무제한 제공한다. |
60대의 대학 동문 부부모임 여행자들도, 70대·40대 모녀도, 그리고 결혼 40주년 기념여행을 나선 60대 부부와 21주년 기념여행을 온 40대 부부도, 모두들 와인과 맥주잔을 들고 정담을 나누며 특별하고 이색적인 열차여행에 다소 들뜬 모습이다. 햇살 따사로운 차창 밖으론 벼 베고 깨 터는, 가을걷이에 바쁜 농촌 풍경들이 펼쳐졌다. 한 40대 부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영화 <설국열차> 있잖아. 거기 앞쪽 칸(권력자들이 타는 칸)에 탄 느낌이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3시간 달려 도착한 첫 방문지는 전주. 일행은 승무원 2명의 인솔과 문화유산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로 이동해, 점심으로 한정식 코스요리(2만8000원)를 먹었다. 갈비찜·수육·잡채·모둠채소·시래기찜·생선회·매생이국 등 산해진미가 차례로 나오는 퓨전 한정식이다. 한 50대 부부는 “음식 맛도 좋았지만, 좌석마다 고객 이름패를 놓아둬 자리 다툼을 없앤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제대로 대우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음식도 승무원 서비스도, 짐짝 취급 받는 여느 패키지여행과는 사뭇 달랐다.
일행의 입과 눈을 거듭 사로잡은 건 마침 한옥마을 일대에서 벌어진 전주비빔밥축제였다. 2시간 동안 깨끗한 한옥마을 골목마다 마련된 노점들에서 내놓는 오만가지 비빔밥들을 구경하고 맛보며, 해설사의 안내로 아름다운 전동성당과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신 경기전도 둘러봤다. 다음 기착지 곡성으로 향하는 동안 승객들은 자유롭게 열차를 둘러보고, 널찍한 소파들이 놓인 이벤트실에 앉아 신문도 읽으며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곡성역 기차마을에선 증기기관차를 타거나, 레일바이크를 타며 깊어가는 섬진강변 가을 풍경을 즐겼다. 저물어가는 섬진강변 식당에서, 섬진강에서 잡았다는 참게탕정식(3인 기준 4만원)과 은어튀김(3인분 3만원)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열차에 올라 순천으로 이동. 열차 카페에선 다시 와인·맥주잔이 오가는 가운데 승무원들이 펼치는 춤 공연과 통기타 가수의 라이브 공연이 이어졌다. 현란한 불빛조명 속에 싸이의 말춤을 선보인 승무원 김수정씨는 “해랑은 품격있는 여행을 보장하는 럭셔리 열차여행”이라며 “최선을 다해 섬세하고 감동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24시간 오픈되는” 카페 차량에선 밤늦도록 부부·모녀·가족 간의 정담이 이어지며 열차의 밤은 깊어갔다. 달리는 열차가 아닌, 멈춘 열차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티브이 시청을 한 뒤 푸근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부근 식당에서 먹은 아침식사는 꼬막정식(1만5000원). 역시 해설사의 안내로 드넓은 순천만 갈대밭을 산책한 뒤 낙안읍성 마을로 이동해 전형적인 전통마을의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점심으론 2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 남도 한정식(2만원)을 맛봤다.
서울로 돌아오며 해랑 여행에 대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맛과 멋을 조화시킨 품격있는 국내 여행”이었다는 게 대체적 평가. “침대열차는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다”는 소감에서부터 “시설 괜찮고 깨끗해 마음에 들었지만 객실 개별 온도조절이 안 돼 불편했다”, “공기 순환이 잘 안되는 것 같다” 등 불만사항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세 자녀와 함께 온 김학진(40)·배경아(38) 부부(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는 “5년 전 해랑 첫 운행 때부터 별러오다 이제야 타게 됐다”며 “사실 동남아 여행 가고도 남을 경비지만, 아이들이 바라던 침대열차를 타고 편하게 국내여행을 하고 싶어 해랑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많은 여행객들이 한입으로 칭송한 건 승무원들의 태도. “여행자가 배려받고 존중받는 여정을 이끌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1박에 백만원대의 객실 요금은 역시 비싸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좀 가격을 내리고 코스를 다양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대해 코레일 홍보실 손혁기 차장은 “해랑은 일반인들이 자주 탈 수 있는 열차는 아닌 게 분명하다”며 “이제 부모님 효도여행이나 기념일을 위해 선택하는 특별한 여행방식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두달 전에 이미 전 객실이 매진되는 게 그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년간 해랑 이용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승무원 장석규씨는 “운행 초기엔 기업체 포상여행, 효도여행 등이 대세였고, 일본인 고객도 30%가 넘었다”며 “요즘은 결혼기념일 여행, 가족여행 등으로 연령층이 다양해졌고 중국인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랑은 현재 격주로 토요일 출발 1박2일짜리 씨밀레 코스(서남부권)와 해오름 코스(남동부권)를, 매주 화요일엔 2박3일짜리 아우라 코스(전국 일주)를 운행중이다. 코레일 쪽은 조만간 해랑의 대대적인 시설 개선 및 서비스 보완에 나설 예정이다. 코레일 홍보실 쪽은 “내년 말쯤엔 한층 업그레이드된 호화 열차 해랑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절, 남북 공동응원 추진을 계기로 마련된 호화 침대열차. 침대열차를 타고 한반도를 종단해 중국 철도(TCR),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로 이어지는 장거리 열차여행에 나설 날은 언제쯤일까.
해랑/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달리는 7성급 호텔, 달리는 최고급 레스토랑
블루 트레인은 비정기적으로 프리토리아~짐바브웨 특별열차를 운행하기도 한다. 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 앞 철교를 지나는 블루 트레인. |
[esc/커버스토리] 전세계 호화 열차 열전
죽기 전에 꼭 한번쯤 타보고 싶은 전세계 이색 호화 열차들
“고풍스러운 열차 객실에 최고급 요리, 대평원을 달리며 만나는 야생동물들, 그리고 승무원들의 극진한 서비스가 감동적이었죠…. 한번은 꼭 타볼 만합니다.” 몇년 전 호화 열차의 대명사로 통하는 남아공의 ‘블루 트레인’을 체험했다는 한 대기업 간부 김형우(50)씨의 말이다. ‘레일 크루즈’로 불리는 호화로운 열차여행. 어떤 열차가 호화로운 열차일까.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대표적인 호화 관광열차들을 소개한다.
이스턴&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식당칸. |
유럽·아시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호화 열차의 원조로 꼽히는 열차다. 1883년 프랑스 파리와 루마니아 지우르지우 구간에 처음으로 식사·숙박이 가능한 호화 열차를 선보인 뒤 파리와 터키 이스탄불 구간을 60여시간에 연결하면서 장거리 호화 열차여행 시대를 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무대로 더 유명해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1920년대 전성기를 이루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쇠퇴하기 시작해 1977년에 문을 닫는다.
그 뒤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셔우드가 소더비 경매에서 오리엔트 특급 차량을 구입해 19세기 본디 모습으로 복원한 뒤 1982년 런던~파리~베네치아(베니스) 구간(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을 1박2일 일정으로 운행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6개 구간을 운행중인데 대표적인 것이 이 ‘베니스 심플론’과 방콕~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1943㎞를 3박4일간 운행하는 ‘이스턴&오리엔탈 익스프레스’다.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3개의 식당칸에서 프랑스인·이탈리아인 주방장들이 모든 식사를 코스요리로 제공하고, 바칸에선 피아노 연주 등 공연이 이뤄지는 호화 열차다. 객실은 2인실·1인실 2종으로, 대형 소파를 변형해 침대로 쓸 수 있다. 2인1실 1인당 약 350만원부터. 1993년 선보인 이스턴&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3개 등급의 객실에 식당칸 3량, 바 2량, 도서관 1량에 전망 차량까지 별도로 갖춘 동남아시아권의 대표적 호화 열차다. 2인1실 1인당 약 310만원부터. 파리~이스탄불 구간은 5박6일에 1인당 1200만원부터다.
남아공 블루 트레인
세계 여행자들로부터 명실공히 최고의 열차로 꼽혀온 대표적 호화 열차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단 케이프타운과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를 잇는 열차로, 1946년 운행을 시작했다. 대형 욕조가 설치된 화장실 딸린 침실들과 식당칸, 바, 회의실 등을 갖춘 ‘달리는 특급호텔’이다. 1600㎞ 거리를 27시간에 걸쳐 1박2일간 달리는 동안, 남아공 최고 수준의 코스요리 3끼와 최고급 와인 등이 제공된다. 18량으로 구성된 객차에 정원은 74명, 각 객차에 3~4개의 객실이 들어서 있다. 열차 2편성이 각각 두 도시에서 동시에 출발한다. 창밖에 수시로 나타나는 야생동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최고의 열차답게 만찬 때엔 정장 차림을 요구한다. 요금은 성수기(9~11월) 기준으로 디럭스더블 객실이 1인당 161만원, 럭셔리더블이 176만원.
같은 코스를 2박3일 동안 느리게 운행하는 로보스 레일도 호화롭기는 마찬가지다. 열차 17량, 36개 객실에 최대 72명의 승객을 태우고 시속 60㎞ 속도로 저속 운행한다. 객실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시설과 요금도 비슷한 수준.
일본 ‘규슈 레일웨이 컴퍼니’의 세븐 스타 맨 뒤쪽 겉모습. |
일본 세븐 스타
지난 10월15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호화 열차로, 일본 ‘규슈 레일웨이 컴퍼니’가 일본 최초의 ‘육지 크루즈’임을 내걸고 야심차게 선보였다. ‘세븐 스타’란 이름엔 규슈 지역 7개 현의 온천·자연·음식·역사문화·인정 등 7대 관광 소재를 체험할 수 있는, 7량으로 이뤄진 열차란 뜻이 들어 있다. ‘7성급 열차’라는 과시도 있다.
14개의 2인용 스위트 객실, 제철 현지의 식재료만을 쓰는 식당칸, 피아노 연주 등 공연이 열리는 전망칸으로 이뤄졌다. 특히 맨 뒤쪽 객차는 디럭스 스위트 객실 2개만 배치했는데, 마지막 객실은 뒷면 전체를 모두 유리로 처리해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카타~나가사키 구간의 1박2일 코스와 하카타~가고시마 구간의 3박4일 코스가 있다. 객실은 스위트와 디럭스 스위트 두가지. 요금은 1박2일이 객실에 따라 1인당 168만~246만원, 3박4일짜리가 1인당 421만~610만원이다.
인도 마하라자스 익스프레스
‘궁전 열차’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인도의 최고급 호화 열차다. 식당 차량과 바 차량, 객실 차량으로 구성됐는데, 객차 하나에 화장실·욕실이 딸린 객실 4개를 배치했다. 객실은 1인실과 2인실 두가지. 인도 북부의 자이푸르·우다이푸르 등 지역을 7박8일간 운행한다. 요금은 1인당 50만~80만원 선.
이밖에 철도여행 마니아들이 호화 열차만큼이나 일생에 꼭 한번은 타보고 싶어한다는 열차도 많다. 알프스의 협곡을 달리며 알프스 준봉들과 빙하들을 감상하는 알프스 빙하특급과 알프스 인터라켄과 융프라우 사이를 운행하는 융프라우 등반열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장장 2주일 동안 160여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9000여㎞를 달린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알래스카 관광열차 등이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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