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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정신과전문의 정혜신-'공감의 힘'(1)

성공을 도와주기 2014. 5. 25. 23:36

[2월]정신과전문의 정혜신-'공감의 힘'(1)

정혜신 선생님 강연/2월26일 오후 7시반




안녕하세요. 심리톡톡. 요즘 사람 마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제일 모르고, 제일 헤매는 분야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사는 법을 배웠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접하지 못하고 살면서 정말 많은 심리적인 대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 마음이 눈에 안 보여서 실체도 잡히지 않고 막막하고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끝단, 실마리, 단서. 한 가지 정도 잡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오늘 무엇이 사람이 움직이나, 그런 생각,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가지 일을, 치유적으로 움직이는 것, 키워드는 단연 공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같이 나누는 시간이었음 해요. 진행은 앞에 서두에 간단하게 말씀 드리고 공감이라고 하면 살면서 너무 많이 접하고 일상에서 실감할 수 있는 질문을 받고 그걸 여러분에 실제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강연 준비 안하려고 꾀 부린 것이 아니고요. 저는 가끔 강의하는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강의라는 것이 심리적인 폭력이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강의라는 게 강사가 주제를 정해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해오고 그 주제에 대해서는 그것만 정답인 것 같고 다른 것은 덜 중요한 것 같고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제가 하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에 관한 것이라 정답일 리가 없잖아요.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이 가진 삶의 지혜가 있을 수 있고요. 더 높은 실감이나 체험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강사라는 이유만으로 일장연설을 하다보면 뒷목이 뜨끈뜨끈하게 되는데 그게 심리적인 폭력이 될 수 있어서 제가 이야기하는 시간을 줄여볼까 합니다. 같이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남자 분들도 의외로 많은데 예비군 훈련 가시면 북핵 위기, 미사일, 이런 뉴스 나오면 핵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그런다고 하는데, 핵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는데 예비군 훈련 받으러 온 사람이 세계적인 핵 물리학자가 왔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 앉혀 놓고 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게. 그런 상황이 살다보면 벌어지죠. 제가 여기 오기전에 페북에 올렸는데, 가르치려 드는 것. 쉽게 그렇게 되는 것도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준비를 안 해와서 그런 게 아니라 더 의미있는 시간을 갖아보자는 취지에서요)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 이야기


예전에 어떤 아기 엄마가 있었는데 30대 중반쯤이었요.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잘 안생겨서 노력해서 뒤늦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축복 받으면서 아이 낳고 아이 키우기 시작했는데 100일이 채 안돼 의학적으로 규명 안된 희귀병 걸려 아이를 잃었어요. 젊은 아기 엄마가 받은 충격이 말을 할 수가 없죠. 일상을 할 수가 없어요. 남편이나 친정식구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잊어라” 하면서 돕고 위로하고 설득하고 그랬는데 다 소용이 없는 거죠. 보다못한 친정엄마가 딸에게 “그러지 말고 돈 댈테니까 공무원 시험 학원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 집중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에서 제안했대요.


젊은 엄마 입장에서도 주변에서 도와주는데 면목도 없고 해서 학원에 갔습니다. 어느날 학원 끝나고 버스 차장 밖을 멍하니 보는데 정신과 간판이 보인 거라서 무작장 내려서 올라갔어요. 그 이전에 안 가봤던 게 아니라 정신과에 가도 소용이 없었는데, 아기기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한 낫겠냐 단념했는데, 알면서도 고통스러우니까 무심결에 내려서 병원 가서 자기 상황을 이야기했대요. 처음으로 의사가 던진 질문이 “애기 이름이 뭐였냐”였대요. 애기 엄마가 아기 이름 석자 말하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기 엄마가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막 울기 시작하고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이고 그 아이가 얼마나 그리운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는 거예요.


엄마, 남편, 친구. 자기를 돌보면서 그동안 “아이를 잊으라”고 했던 거. 세상에 없는 아이 취급을 했는 거. “나쁜 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주변에서 우리 아기 존재를 무시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읠 분노로 나타났대요. 그 아이 이름 석자 물어보니까 그 이름을 말하면서 모든 감정이 또렷해졌대요. 분노와 상실감, 안타까움, 무력감 다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잤는데 그 다음부터 서서히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 치유한다는 것. 복잡한 감정을 가진 사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의 핵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속마음 그 자체를 눈 마주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고 치료고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고요.


그런 것들에 눈 마주치지 못하고 스킵하고 “공부좀하면 어떻겠냐” “외국에좀 가보면 어떻겠냐”라고 말하죠. 사람 속마음에 공감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접하기도 어렵고요. 누군가가 힘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자기가 했던 조언들 떠올랐을 때 “잊어라” “이렇게 생각해봐라”라고 말하죠. 이런 말이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닌데도, 깊이 공감하는 끈을 놓치다 보면 의의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공감이라는 게 단순한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멈춰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직업이 그러니까 하다보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상담 하면 낫긴 낫나요”라는 말. 제일 많이 들어요. 의사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 내과 의사는 아는 것은 많고 고치는 게 없고 외과 의사는 아는 것이 없고 고치기만 하고 정신과 의사는 아는 것도 없고 고치는 것도 없다. 상담이라는 게 모호하니까. 고문 피해자 상담 오래 했는데 전두환 박정희 시절에 옥살일 10년~20년 하고 아이가 자살한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산산조작 났다” “내 가족도 내 삶도 내 젊음도” “이미 다 산산조각이 났는데 이제와서 상담하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하는데 그래도 달라져요.



거기에 공감의 힘이 있다는 것이 저는 반복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서도 상담을 주로하는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이라고 하는데, 3분의 2가 ‘공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핵심이 공감. 공부한다고 해서 공감을 잘 하는 것도 아니예요. 공부 안해도 공감을 타코나서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치유의 핵심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요. 일상에서 공감하시는 공감으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공감이란


공감이라는 게 막연하니까 잠깐 설명하고 갈게요. 공감이라는 게 이야기 잘 들어주고 끄덕여주고 그게 공감일까요? 아니고요. 그런 방법이 아니고 예를 들어서 누군가 이야기하다가 공감한다고 하면 상대가 내 존재 자체가 온전히 다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받으면 제가 공감한 것이죠. 고문 피해자들은 끔찍한 경험을 했고 수치감, 모멸감, 상상할 수 없는 분노, 억울함이 있는데 배우자나 자녀나 같은 피해자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30년 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그것부터 어렵죠. 끄집어내면 일단 치유가 시작됩니다. 공감은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공감은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평가받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느낌이 떠올라요.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파악됩니다. 안전하다고 느낌이 들어야 자기 감정이 떠올라요. 몇 가지 이야기 하다가 “저 다 이야기한 것 같은데” 한다고요. 안전하다는 느낌을 못받기 때문에. 평가, 판단, 비난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이 떠오릅니다.


그러다보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내가 만약에 굉장히 어려웠을 때 그런 존재가 돼줬던 사람이 있었는지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세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가 아닌가 떠올려봐도 좋겠고요. 공감은 물리적으로 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질문만 먼저 쭉 받을게요.


[질문1.]

남편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도 있고 금전문제도 해결하다보니까 스트레스가 컸더라구요. 두 달 전에 알게 됐습니다. 1년 가까이 힘들었는데, 남편이 언젠부턴가 혼잣말을 하고 샤워하러 들어가서 상상할 수 없는 혼잣말을 하더라구요. 몇 차례 반복되고 해서.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를 사실이냐고 물으니까 생각없이 한 이야기라고 하더라구요. 회사에서도 가끔씩 혼잣을 해서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해서 자기도 스트레스가 커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데 일을 그만두어야 치료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 “진작 이야기 왜 안해주었느냐”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혼자서 일을 그만둔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정신분석 받는다든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남편이 똑똑한 사람이라 전문가 도움 받기가 쉽지 않은가봐요. 제가 남편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고, 전문가 도움을 받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질문2.]
아이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육아서적 읽다보면 아이에게 공감을 많이 해줘라하는데 공감을 표현해주다가도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아이가 공감할 수 있다고 느끼는 노하우는 뭘까요.(아이는 초여4.) 다른 질문은 아이 입장에서요. 저희 아이가 감정표현이 확실한 편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설적인 말을 합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싶은데 잔소리가 됩니다.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줘야 할까요.

[질문3.]
타인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하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내 행동이나 언행. 저는 이렇게 발표하거나 당연한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하지 말라고 말할 때 몸이 떨려와요. 갑자기 시작됐어요. 한번도 도망치려한 적도 숨기려 한 적도 없는데 제가 제 행동에 대해서 공감이 안돼요. 제가 왜 떨까 공감이 안되니까,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질문4.]
저는 듣다보니까 수많은 공감을 수행하는 의사 선생님은 괜찮으실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슬퍼보이시고요. 공감이라는 것 자체가 타인의 스트레스를 같이 갖는 작업이 아닌지

[질문5.]
아이가 스무살이 됐어요. 아이의 스무살의 상상을 했어요. 다른 분들은 그 벽을 소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종교나 정치나 주입 안 시키려고 조심했는데 컸으니까 이야기를 듣는다고 듣는데 아이의 발언에 대해서 지적하려고 했는데 주저하게 되고. 아이가 스무살이 되니까 다시 백지상태가 되는 것 같다. 내가 공감한다고 하는게 아이에게 불편하면 어쩌지? 아이에게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세대가 다르니까.

[질문6.]
30대 중반인데요. 부모님을 보면서 두 분이 서로 소통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그래서 공감이라는 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인데 온전히 받아들여지려면 이해가 되고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가끔 엄마 아빠 다투실 때 보면 평행선을 달린다고 하는데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소통의 장애를. 두 분 모두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소통이 안 될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이 다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자식도 부모도 그렇고 공감하려고 하다보면 제 기준을 제시하고 잔소리가 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 건지.

[질문 한 가지만 더. 7]
2번 질문과 유사한데. 아이에 해당하는게 아니라 어른들도 사실은 제가하는 직장 업무 중 업무가 힘든 사람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충분히 공감해주고 싶고 이해해주고 싶은데 나이가 들다보니 고집이 있어 공감을 해주는게 아니라 한편으로 그분들이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생긴다. 공감 하는 척 하지만 공감 안된다. 공감 잘 할 수 있는 법이 있는지.






#정혜신 선생님 답


초등학교 4학년 엄마. 아이와 공감하는 법 물어보셨는데요. 2번 6번. 공감하고픈데 그게 가능하냐. 하고픈데 하다보면 이해가 안되고 생각이 다르다. 약간 제 자랑을 하면 우리 아이가 셋인데 막내가 22살이니까 다 성인이다. 아이가 없는 거죠. 그런데 세 아이 모두 공통적으로 남편도 저는 잔소리를 안 한다. 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직업적으로도 그렇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상담 현장에서 느낌이나 깨달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가 돼서 누군가를 고쳐주는 건 모르겠지만 내 삶은 확실히 건졌다. 그 메카니즘 설명드리면 초4라고 했는데, 아이들도 6~7살 넘으면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얘기를 하다보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게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리게 보고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모자른다는 느낌 때문에 자꾸 이야기를 하게 된다. 6~7살만 되면 질문을 하게되면 꼬투리잡는 느낌 들지 않게 물어보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이야기를 할 필요 없단 느낌 받는다. 저런 정도의 생각까지 하는구나. 구태여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낀다. 진심으로 잔소리를 안 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면 되는데 그 대상이 6~7살만 넘으면 된다. 성인, 사춘기 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


저희 아이가 예전에 영화 관심있다고 해서 연출부 막내 현장에서 시다바리 같은 일들을 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어떤 영화 촬영중에 그 아이가 집에와서 그 감독이 너무 실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면에서 실력이 없다고 하더라. 그 영화 감독이 연출부 막내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대상인데, 중요한 존재가 아니고 스무살이니까 너무 어린 나이.


궁금해서 가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바닥의 스텝 중 한 아이가 자기를 평가하리라고는 생각을 잘 안 할 것 같다. 기자가 나를 보거나 중요한 스텝이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미한 존재다 감독에게는. 근데 멀쩡하게 그 감독을 판단하고 평가하더라. 모든 사람에게는 생각이 있다. 6~7살만 넘으면 있더라. 그거를 들여다보고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건 점점 줄어든다. 잔소리 안 하려고 참거나 애를 쓰지 않았거든요.

아까 애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모자라는 것도 보이고 뭐도 한다고 교정해줘야 할 것 같거나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거나. 듣다보면 화가 날 수도 있고. 직업적으로 공감하고 치유하는 의사도 한 개인이다.


자기 살아온 역사 가치관 성향이 있고. 하다보면 공감하기 어려워지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예를 들어 내가 레지던트일 때 스승인데 그분이 마흔몇살이고 지금 저보다 어린 나이. 그 분에게 들은 얘기가 그분이 주부들 상담을 많이 했는데 한 케이스가 남편이 알코올 중독인 여자. 남편과 관계에서 힘들고 막막하고 답답한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사람 상담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본인 이야기를 하신다는데 선생님 아버님이 알코올 중독이었는데 그분이 큰아들이었는데 어머니가 큰아들에게 하소연을 한 것. 어린 마음에 답답한 마음들...가정주부가 남편 이야기를 하면 그 느낌이 들어서 힘들다는 것. 


왜  이런 말씀 드리냐면 상담 정신과 의사 트레이닝 중 하나가 자기치유다.
 
나도 치료비 다 내고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하다가 어느날 제가 ‘내가 정신병원 입원했음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상담 받으면서 내 문제에 빠져들면서 그런 절실한 마음들이 있었다. 내 안에 유치한 욕망들, 말하기도 챙피스러운 인정욕구들, 정말 질투심 그런 것들... 그런 내 안에 너무 환자들의 바닥의 바닥에서 보는 감정들이 내 치료과정에서 드러난 것. 경찰들 중 어떤 범죄에만 못 참는 사람 있다. 성폭행도 참지만 거짓말은 못 참는 사람. 내 문제를 들여다보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심리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고. 저는 직업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열심히 대면하고 치유받는 과정을 많이 겪다보니 어떤 경우를 봐도 잘 화가 안 난다. 그 감정에 압도되지는 않는다. 분노는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다. 비난하고 싶지만 그것 때문에 부들부들 못 견뎌서 그 사람 이야기를 찬찬히 못 듣게 되거나 방해받지는 않는다.


내 안에 그런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다보니 누군가를 딱히 비난을 잘 못하겠더라. 결국은 누군가를 폭넓게 공감하는 방법, 방법론은 아니고 나를, 사람마다 유난히 그런게 있다. 그런건 내 굉장히 중요한 문제와 결부된 사건이나 감정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 자꾸 들여다보면 좀더 폭넓게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영역은 좀더 정서적인 측면. 정서적 감정적 영역.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사람, 주는거 없이 좋은사람은 자기문제가 다 결부돼 있는 사람이다. 이유가 있다. 나한테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코드를 갖고 나를 떠올리다보면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사람에 대해 덜 에너지 소모하게 될 것이다.

제가 상담을 하거나 치유를 공부하는 후배들한테 맨날 이야기하는게 조언이나 충고, 판단이나 평가를 멈추고 계몽이나 교훈을 멈추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조언이나 충고, 판단이나 평가, 계몽이나 교훈을 멈춰야만 비로서 치유적 대화가 시작된다는 것. 인간 대 인간의 정서적 영역에서 시시비비 따지는 영역 말고 관계의 영역 정서의 영역에서. 조언이나 충고나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렇고 충고나 조언 남편 부부 간에도 그건 잘못된거야 그건 안돼, 라고 그런게 판단. 그런 말을 멈추는 순간부터 치유가 시작된다. 그럼 할 말이 없는데요. 그러면 얘기를 안 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없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스무살 딸에게 조언도 해주고 싶고 이렇게 판단해야 맞고 그런 생각이 있는데 그런 애기를 붙들어매고 “엄마가 안타깝지만 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 냉전을 하자고 전달이 되질 않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 이미 다 있다. 자식이 부모한테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고 남편이 아내에게도 이런 얘길 하면 와이프가 어떻게 나온다는걸 다 알고 있다. 근데 그 말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만약에 모른다면 충고나 교훈이 필요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다.


아는데 또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엄마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뻔히 아는데 엄마가 아무 말 않고 “니가 그런 상황인 거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라고 하면 ‘엄마가 나를 비난하지 않았네 나를 평가하지 않았네’, ‘어린애 취급하지 않았네’ 하는 많은 메시지가 전달이 된다.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 뻔한 얘기, 짜증낼 것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지 않다.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 이런 것들은 붙들어 매고 그거 안 하면서부터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 이렇다. 마음이 아프다. 공연히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네. 거기까지다. 너 그러면 안돼 그러면 큰일나. 판단이고 평가이고 충고 계몽, 사람을 튕겨져 나가게 하지만 엄마가 마음이 그렇네라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공감은 내가 할 이야기를 참고 누르는 게 아니라 판단 조언 평가 이런 것들 하지 마시되 니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 마음이 이렇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잇겠다. “엄마가 슬프다”, “마음이 이렇다” 그러면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구나 염려하는구나 알아듣는 거죠. 그것이 공감에 중요한 포인트다. 공감이 남에게 좋은 말만 하고 내 이야기를 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아이가 직설적인 말을 하면 친구들이 싫어할 것 같고 그걸 어떻게 가르쳐주지 했을 때, 그럴 때 “ 너 그러면 안돼”라기보다는 이래라 저래라 계몽이고 교훈이고 그런데 사람은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거의 반동적으로 거부감이 들죠 모든 인간은자아가 있으니까 자기 생각을 유지하고 싶어하니까. 일방적으로 나온 모든 말은 무의시적으로 튕겨져 나가죠. “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가 마음이 어떨까” 라고 물어봐준다면 ‘친구가 싫을 것 같애’, 또 친구 마음이 어떨가 물어보는 것까지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러면 안되지”라고 한마디 덧붙이죠. 그럴 필요가 없죠.


사람은 다 느껴요. 어릴수록 더 잘 느껴요. 자기 행동의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걸 생각하게 해주면 다 알게돼요. 모든 인간은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거든요.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고 네가 하는 행동으로 타인이 어떻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 되죠. 설명이나 설득이나 계몽으로는 전혀 느낌이 오지 않고 오히려 튕겨 나가요.

얼마 전 어느 회사에 갔더니 인간을 존중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사훈처럼. 그러다보니 존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회사 내 정책들이 많죠. 회사 사원이 회사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하려고 결혼 기념일에 부인에게 꽃을 준다할지 그런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사람을 존중하자 하면 그 방법론을 이야기하잖아요. 방법을 알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공감을 하면 아이나 심지어는 짐승이나 무의시적으로 아는 거예요.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공감을 어떤 문제에 대해서 사람 관계 영역에서 방법론을 찾는다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까 고민한다면 내가 공감을 진짜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자기 생각을 더 많이 해야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가 스무살 되는데 아이에게 위로하려고 한다는 말이 아이에게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될까 고민이 된다는 분. 어떻게 하세요? 상처가 안 되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하고 싶은데 이 말을 하면 네가 상처가 받을까 걱정이 된다고 그렇게 말하면 된다. 엄마 마음을 알잖아요. 엄마가 나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고민하고 있구나. 상처 안주는 말을 정확한 말을 고르는 게 아니라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되는 거죠. 큰딸과 작은딸이 있는데 같은 말도 상처가 다르고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 다르고.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고. 그래서 정확한 답을 고르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마음 쓰고 있는지 전달이 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죠.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죠.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도. 같은 이치인거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