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시가지 남동쪽에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 마을이 있다. 안동댐이 생긴 후, 이른 아침엔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다가 해가 나면 마법같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 이 오밀조밀한 마을에 사는 한 부부의 작은 집 이야기다.
집들이 각자의 조그만 마당을 가지고 이웃집과 어깨를 마주하며 사는 마을. 오래됐지만 정돈되어 추레하기보단 단정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기느리길'이라 불리는 작은 소로를 따라 부락이 형성된 안동의 작은 마을이다.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 조용한 시골을 찾은 부부에게는 그리 넓은 땅도 필요 없었고 좋은 풍광도 중요치 않았다. 사진가인 남편과 미술가인 아내에게는 각각의 작업실, 그리고 작은 거실과 안방 하나만 있으면 족했기에 대궐 같이 큰 집도 필요치 않았다. 마침 마음에 쏙 드는 동네 땅을 발견했고, 좋은 건축가와 믿음직한 시공자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서승덕, 류경화 씨 부부에게 집짓기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고마운 일투성이다.
↑ 주방 끝에서 바라본 1층 실내. 콘크리트 노출면의 다양한 마감과 2층까지 열린 경사지붕선이 실내의 공간감을 깊게 만든다.
↑ 계단 아래 방은 아내 경화 씨의 미술 작업공간이, 계단 위 다락방은 남편 승덕 씨의 사진 작업실이다.
"둘이 쓰기엔 넉넉해요!" 아내 경화 씨가 이렇게 외치는 집은 90㎡가 채 되지 않는 면적이다. 안방 하나에 작업실 두 개. 그리고 햇빛 잘 드는 거실과 단아한 주방 하나가 이 집의 전부다.
1층 현관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아늑한 거실이 나온다. 발코니 창으로 따뜻한 햇볕이 한가득 들어서인지, 쌀쌀한 늦가을이었음에도 실내는 따뜻하다. 두 식구의 단출한 밥상이 차려지는 아일랜드 식탁과 명료한 동선의 주방은 단순한 듯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미술가인 아내의 손길을 거쳐 각종 마감재로 단장한 실내다.
주방 위쪽으로는 남편의 작업실로 오르는 계단이 높게 트여 있어, 집의 정면에서 보이는 뾰쪽한 삼각 지붕의 정체가 이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스듬히 난 천창으로는 간접광이 온종일 은은하게 드는 공간이다.
작은 집이기에 더욱 꼼꼼하게 공간을 나누고 재료를 선정하는 일은 설계를 맡은 이진경 소장의 몫이었다. 그동안 한 가족처럼 서로를 잘 알게 된 이 소장은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가로 느낀 소감이 남다르다.
"건축의 과정은 작은 집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그 절차를 준비하고 행정을 처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죠.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집은 이 소장의 작은 집 연작, 'UNION LOVE' 시리즈 중 하나다. 아파트를 떠나 가족만의 집,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집을 꿈꾸는 사람들의 집을 짓는 게 건축가로서의 작지만 큰 보람이라는 그다.
↑ 건축주의 취향과 품새가 느껴지는 단아한 안방
↑ PLAN - 1F
↑ PLAN - 2F
↑ 두 개의 마당과 두 개의 툇마루로 실내가 한층 풍요롭다.
↑ 남동향으로 오전 내 따스한 햇볕을 받는 아내의 작업실
↑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작은 천창은 은은한 간접광의 역할도 겸한다.
↑ 진입로가 북서방향인 조건 때문에 건물의 뒷면이 남동향이 되었지만 덕분에 더욱 포근하고 개인적인 마당이 생겼다.
'ㄱ' 자의 안쪽 작은 마당은 아내 경화 씨가 꽃씨를 뿌려 손님을 맞이하는 건물의 얼굴이다. 늘 열려 있는 안마당으로,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꽃구경을 하며 거실 쪽 툇마루에 앉아 쉬다 가시곤 한다. 집도 사람도 동네 풍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레 어우러져서인지 동네 사람들도 새 이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호박, 가지, 고추, 상추, 깻잎…. 철마다 이웃의 어르신들이 손수 따다 건네는 채소로 밥상이 늘 풍성한 게 그 증거다.
자연 속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자 이사 왔더니, 새로 지은 집으로 좋을 뿐 아니라 동네 분들의 애정이 그 풍요에 정점을 찍는다. 지을 때부터 고맙더니 짓고 나니 더욱 고마운 일들이 넘쳐난다며 해맑게 웃는 건축주 부부의 표정에 전원생활의 여유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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