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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플러스] 이제 곤충을 먹어야 할 때

성공을 도와주기 2017. 7. 27. 11:18


필자는 새우가 참 좋다. 연한 비릿함 속에 녹아있는 고소한 맛과 씹을 때의 탱탱한 리듬감이 좋다. 바다 느낌이 난다. 껍질을 까야 하는 수고로움조차 식욕을 적절히 눌러 줘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집에서는 언감생심. 아이들이 새우라면 질색을 한다. 골고루 먹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며 회유도 하고 윽박도 질러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이유는 딱 하나, 새우의 인상착의 때문이란다. 솔직히 좀 그렇긴 하다. 긴 수염과 날카로운 코, 시꺼먼 눈과 단호한 껍질. 아, 그리고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그 많은 다리들. 역시 생긴 건 비호감이다.

사실 새우야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먹을 게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70억 인 인구는 2050년에는 90억을 넘어설 거라는데, 지금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판에 앞으로 그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식량 생산은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이 마구 늘릴 수가 없다. 특히 곡물과 가축을 키울 땅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미 가축을 키우는데 육지 면적의 40%와 전체 담수의 70%를 사용하는 마당에 더 늘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동물 단백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개도국의 1인당 동물 단백질 소비량은 연간 25kg 정도인데, 소득이 증가할수록 선진국 수준인 100kg으로 늘어날 게 분명하다.

한마디로 인류가 직면한 먹거리 문제의 요지는 초과 수요, 즉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데 있다. 선택은 셋 중 하나다. 가격을 올리든지, 수요를 줄이든지,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가격을 올리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굶게 된다. 수요를 줄이려면 전쟁이든 전염병이든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 결국 공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와게닝겐(Waginegen) 대학의 마르셀 디케(Marcel Dicke) 교수는 공급을 늘릴 확실한 ‘정답’을 알려준다.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이나 [설국열차]의 승객들처럼 눈 딱 감고 바퀴벌레를 먹으면 된다(이하에서는 작고 징그러운 동물은 그냥 퉁쳐서 곤충이라고 부르겠으니, 종속과목강문계에 민감하신 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배고픈 세계를 위한 해법은?

사실상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곤충이다. 지구상에는 모든 동물 종의 80%에 해당하는 약 600만 종의 곤충이 존재한다. 곤충은 몸 전체가 머리·가슴·배의 세 부분으로 나눠지고 다리가 6개 달린 소(小)동물을 말한다(순수 우리말인 ‘벌레’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벌레가 좀 더 넓은 개념이다). 대부분의 곤충은 인간에게 매우 유익하다. 해충을 잡아 먹고 작물에 수분도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먹이사슬의 시작점에 위치해서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불행히도 생김새와 하는 짓이 징그럽다는 거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제 곤충을 먹어야만 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명의 인구가 1900여 종의 식용 곤충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 사람들이지만,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곤충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사실 생긴 것만 빼면 곤충은 꽤 먹음직하다. 우선 맛이 좋다(고 한다). 새우처럼 고소한 맛이 나고, 바삭거리는 식감도 좋다(고 한다). 영양가도 만점이다. 불포화지방산과 무기질 함유량이 많고, 고단백·저칼로리이다. 같은 중량(100g) 당 단백질 함유량이 소고기는 21g, 돼지고기는 16g이지만 말린 메뚜기 고기(?)는 70g이다. 두 번째 이유는 매우 경제적이라는 점. 사료 10kg을 가지고 소고기는 1kg, 돼지고기는 3kg, 닭고기는 5kg을 얻을 수 있지만, 메뚜기는 무려 9kg을 얻을 수 있다. 기르는 데 넓은 땅이 필요하지도 않고, 소나 돼지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시지도 않으니 더더욱 좋다. 세 번째 이유는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다. 소나 돼지처럼 콜레라, 구제역, 광우병 걱정이 없다. 배설물도 적고 트림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도 기존 가축의 100분이 1에 불과하단다.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곤충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지 하는 분들을 위해 디케 교수는 불편한 진실 하나를 들려 준다. 이미 우리 모두는 매년 500g 정도의 곤충을 먹어왔고, 어쩌면 오늘 아침에도 먹었을지도 모른다. 토마토 스프, 땅콩 버터, 초콜릿, 면류 등에는 대개 곤충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해서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우리 혀는 이미 곤충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일례로 게맛살처럼 빨간 색이 나는 식료품들은 코치닐(cochineal)이라는 천연염료로 염색이 되는데, 코치닐은 페루 등지의 선인장에 서식하는 곤충에서 나온다.

거부감 없애는 게 관건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13년에 인류의 식량난과 환경 파괴를 해결해줄 대안으로 곤충을 꼽았고, 내친 김에 곤충에게 ‘작은 가축’이라는 사랑스런 닉네임을 붙인 바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식용곤충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엑소(EXO)라는 이름의 귀뚜라미 단백질 바가 카카오, 블루베리, 사과계피, 땅콩 버터와 젤리 등 4가지 맛으로 시판 중이다. 벨기에는 자국 내에서 온전한 형태의 곤충 10종을 식용으로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디케 교수가 속한 네덜란드의 와게닝겐 대학은 세계적인 식용곤충 연구처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식용 곤충식 연구의 초점은 곤충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없애는 데 모아지고 있다(새우에 기겁하는 필자의 아이들도 새우깡은 잘만 먹는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발 빠른 일부 업체들이 식용 곤충을 분말이나 액상으로 만들어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식품의 제조·가공·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식용 곤충은 누에번데기, 벼메뚜기, 백강잠(누에 새끼벌레), 쌍별귀뚜라미, 갈색거저리 유충(고소애), 흰점박이꽃무지유충(굼벵이), 장수풍뎅이유충 등 모두 7종인데, 이를 재료로 환자식이나 어린이 간식용으로 푸딩, 쿠키, 팝콘, 약과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어디 먹기만 하랴. 바르기도 한다. 곤충을 이용해 화장품을 만들고 여드름이나 아토피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2009년에는 누에고치를 이용한 고막용 실크패치(고막 재생을 촉진하는 물질), 2014년에는 치과용 차폐막(임플란트 시술시 잇몸 뼈 형성을 촉진하는 막) 등이 개발됐다. 귀뚜라미 성분으로 탈모예방, 발모촉진제도 만들고 있다. 이래 저래 곤충은 허기진 인간을 위해 신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싶다.

가뜩이나 우울한 우리 경제에 곤충이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왕년에 메뚜기 볶아먹고 번데기 삶아먹던 헝그리 정신으로 한국에서 곤충산업의 선도기업이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특히 식용 곤충을 가지고 스위스의 네슬레나 미국의 제너럴 밀스를 능가하는 식품회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분위기는 딱 좋다. TV를 켜면 수십 개 채널에서 셰프들이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그 옆 채널들에서는 유명인들이 뭔가를 허겁지겁 먹는 중이다. 이 참에 군침나는 곤충요리를 만들고, 맛나게 먹는 모습도 보여주면 좋겠다. 스타 셰프와 연예인들이 큰 맘먹고 앞장서 주시라. 국가와 인류를 위한 일이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1329호 (2016.04.11)
http://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10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