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없이 식당 하는 시대 온다.. '공유주방' 열풍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19.01.23. 10:01 주방시설 갖추고 원하는 시간만큼 임대해주는 ‘공유 주방’ 인기 16일 오전 10시 서울 공덕동에 있는 공유주방 ‘위쿡’. 푸드 스타트업 ‘할랄투고(Halal to Go)’의 정경훈(43)·이경수(33)씨가 메뉴 개발에 한창이었다. ‘할랄’은 ‘허용된’이란 뜻의 아랍어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5년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처음 도입했다. 심플프로젝트는 그해 서울 삼성동에 ‘위쿡’을 첫 오픈했고 지난해 6월 공덕동 서울창업허브 3층으로 이전했다. 조리시설만 있는 ‘오픈 주방’과 5평 규모 개별 주방 5개가 있는 ‘개별 주방’ 등 2개의 공간으로 크게 나뉜다. 공유주방은 시간 단위, 개별 주방은 월 단위로 사용료를 낸다.
배달전문업체·식당 창업 준비생 몰리며 빠르게 확산
공유 주방 거친 창업자 폐업률 10% 이하로 줄어
할랄투고는 한국을 방문하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중동 등 무슬림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먹을 할랄 음식은 찾기 힘들다는데 착안, ‘할랄 한식 도시락’을 주문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창업했다. 정씨는 "메뉴를 개발·시험할 주방이 필요하지만 식당 임대료가 버거웠다"며 "공유주방은 주방 시설을 시간 단위로 빌려 사용할 수 있어 초기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온라인 판매·유통 가능해지자 주방시설만 있는 공간 수요 급증
‘공유주방’이 식품·외식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공유주방이란 설비를 갖춘 주방을 만들고 원하는 시간만큼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손님이 식사하는 홀(hall)이 없으니 당연히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다크 키친(dark kitchen)’ ‘유령 주방(ghost kitchen)’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음식을 팔려면 반드시 공간 즉 식당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마케팅과 판매,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다. 배달앱이 대표적이다. 식당이 없어도 식당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외식업자들은 비싼 임대료 내가며 목 좋은 가게를 구할 필요가 없어졌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주방시설만 있는 공간을 찾게 됐다. 이 수요에 공유주방이 답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공유주방은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나온 사업모델이다. 국내에서 공유주방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10월 급증했다. 우버 창업자이자 공유경제 거물인 트래비스 캘러닉(42)이 한국에서 공유주방 사업을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한 캘러닉은 서울 시내 빌딩 20여 채를 매입해 빌딩 전체를 공유주방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픈 주방은 최대 6개 팀(업체)이 동시에 이용 가능하다.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워크인(walk-in) 냉장고는 구획을 나눠 공동으로 사용한다. 개별 주방이 있는 공간은 손님들이 식사할 수 있는 넓은 홀을 5평 규모 개별 주방 5개가 감싸안은, 일반적인 푸드코트와 비슷한 형태다.
개별 주방에 입점한 5개 팀은 모두 외부에서 식당을 오픈하기 앞서 자신들이 개발한 메뉴가 손님들이 좋아할 지 확인하고, 메뉴에 맞는 주방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입점했다. 푸드코트 형태는 이러한 ‘실전 테스트’에 적합하다. 위쿡 정고은 매니저는 "서울창조허브 입점 스타트업과 주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점심 300명, 저녁 100명 정도 찾는다"고 했다.
3번 개별 주방에서 ‘훈제오리 김치덮밥’을 파는 ‘푸디푸리(Foodi Foori)’ 문혜란(37) 대표는 동생과 함께 일본식 라멘 전문점을 서울 홍지동 상명대 앞에서 이미 6년 동안 운영해왔음에도 매일 바뀌는 집밥을 컨셉트로 한 새 식당 오픈 준비를 위해 위쿡으로 들어왔다.
"라멘집은 라멘 조리에 맞춰 주방 동선이 짜여 있어요. 동선이 특정 음식용으로 짜여지면 다른 음식 하기가 힘들어요. 그렇다고 가게를 덜컥 임대하자니 위험이 크고요. 공유주방은 식당 임대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주방은 기본 설비만 있어서 메뉴 개발하고 거기 맞는 동선을 실험해볼 수 있어요. 또한 새 식당은 대학생 상대가 아닌 직장인 위주 상권에 들어설 예정이라 이곳을 찾는 분들과 비슷해 입맛이나 선호도를 미릭 파악해볼 수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공유주방은 주방이자 식품공장...동네 밥집 설자리 없어질지도"
공유주방은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배달 전문 공유주방은 배달 위주로 맛집을 모아놓았다. 배달의민족에서 만든 ‘배민키친’이 대표적이다. 커뮤니티 활동이 중심인 공유주방도 있다. 주로 지자체에서 만든 공유주방이 여기 속한다. 이벤트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빌려주는 곳도 있다.
위쿡은 인큐베이팅 전문 공유주방을 내세운다. 그렇다고 모두 외식업으로 성공하도록 돕겠다는 건 아니다. 위쿡을 운영하는 심플프로젝트컴퍼니 김기웅(39) 대표는 "저는 모든 분들을 성공시킨다는 사명감이 없다"고 했다. "식당 하려는 분들이 외식업계 현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식당을 하겠다는 분들은 대개 팬시(fancy)하게 생각하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외식업이 만만찮다는 걸 알게되고, 그것만으로도 진짜로 할 분과 하지 않을 분이 걸러지죠. 그동안 380팀이 위쿡을 거쳐갔고 이중 80%가 외식업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음식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철저히 돕는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인터뷰를 통해 입점 여부를 결정한다. 식품위생법부터 외식 트렌드, 브랜딩, 마케팅 등 음식 사업에 필요한 기본 교육을 해주고 시제품(신 메뉴) 품평회도 해준다.
오는 24일 사직동에 오픈하는 ‘위쿡 사직’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 건물에 공유주방과 개별주방은 물론 공유주방에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카페와 라운지, 제품 촬영 스튜디오 등 식음료업 창업 준비부터 교육, 실습, 메뉴 개발, 판매까지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김기웅 대표는 "공유주방을 거쳐 창업한 경우 5년 생존율이 90%인 반면 거치지 않은 경우는 10%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청은 식당 창업 후 1년 내 폐업하는 확률이 56%, 5년 생존율은 18%라고 발표했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문정훈 교수는 "공유주방은 주방이자 식품공장"이라며 "오피스 중심으로 배달·판매한다면 동네 밥집은 점차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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