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알리바바가 탄생한 항저우에 세운 '후판(湖畔)대학'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로 단연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이 꼽힌다. 20년 전 중국 저장 성 항저우에서 동료들과 6천여만 원으로 창업한 알리바바는, 연 매출 60조 원대의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가 됐다. 기업가를 꿈꾸는 중국 젊은이들에 흙수저 출신 마윈은 희망의 롤모델이다.
그런 마윈이 대학을 세웠다는 게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후판(湖畔)대학'. 일반 대학은 아니고 혁신적인 기업가를 양성하겠다고 만든 이른바 창업 사관학교이다. 2015년 마윈을 비롯해 쟁쟁한 기업가들과 경제경영 분야 학자 9명이 공동 설립했는데, 초대 총장으로 마윈이 추대됐다. 학교 이름도 알리바바가 탄생한 항저우의 허름한 아파트 '후판화위엔(湖畔花園)'에서 따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마윈을 꿈꾸는 신입생들…"영원히 졸업하지 않는 대학"
지난 27일, 후판대학의 5기 신입생 입학식이 열렸다. 마윈 총장이 한 명씩 직접 학교 휘장을 달아준 41명의 신입생들은 1,400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합격의 기쁨을 얻은 이들이다. 신입생이라지만 후판대학은 지원 자격부터가 '창업 3년 이상, 30명 이상 직원을 거느린 기업가로 연간 3,000만 위안(한화 50억 원) 이상 매출이 있어야 할 것 등' 문턱이 높다. 그럼에도 올해 신입생 3명 중 한 명꼴이 1985년 이후 태어난 젊은 피라니 만만치 않은 '제2의 마윈'들인 셈이다.
강사진도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후판대학은 성공 사례만큼이나 실패를 중요하게 가르친다. 마윈이 알리바바를 만들기 전에 몇 번의 실패를 겪었듯, 마 총장은 올해 입학식 연설에서 "실패를 어떻게 뛰어넘을지를 배워라"라고 강조했다.
후판대학 홈페이지에는 벌써 내년 신입생 모집 공고문이 올라와 있다. 학제(學制)를 소개하며 '영원히 졸업하지 않으며, 첫 3년 동안 집중학습'을 받는다고 밝혔다. 졸업하지 않는다는 건, 마윈이 "후판대생의 성적표는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지, 사회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지"라고 기업가로서의 책임감을 역설하는 것과 상통할 것이다.
中 창업 시장, IT 대기업과 신생 기업의 '윈윈' 증가
중국 기업가들이 설립한 대학은 후판대학 뿐만이 아니다. 알리바바와 더불어 중국 최대 IT 기업인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회장과 완다그룹 왕젠린(王健林) 회장 등이 기부해 만든 시후(西湖)대학도 있다. 시후대학은 아예 교육부로부터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인가를 받아 중국의 기초연구 및 미래기술을 책임지는 '중국판 아이비리그'를 꿈꾸고 있다.
이처럼 중국 기업이 창업가를 양성하는 교육에 나서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높은 기술력을 가진 신생 기업들이 과거에는 대기업에 인재와 기술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기업이 투자하고, 신생 업체들은 대기업의 인적 기술적 네트워크 등을 발판삼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후판대학처럼 대기업이 지원하는 창업 교육기관이 늘어나는 건 필연적이다. 중국 왕이연합혁신센터 관계자는 코트라 상하이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창업이 활발해지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인재"라고 밝히기도 했다.
中 "모두가 창업하고 혁신하자(大衆創業, 萬衆創新)"...한국은?
중국은 혁신 창업을 국가 정책으로 삼고 국가 차원에서도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모두가 창업하고 혁신하는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다. 고영화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과거부터 백인계획(百人計劃), 천인계획(千人計劃) 등으로 해외 고급 인력을 흡수해 창업을 장려해 왔고, 내부적으론 국내 대학생들에게 각종 대회와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창업 인재를 양성해 왔다.
우리나라도 '숫자'로 보면 뒤지지 않는 창업이 잘되는 나라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지난해 신설 법인 수는 총 10만 2천여 개로 처음으로 10만 개를 넘어섰다. 세계은행의 '2018년 기업환경평가'에서도 한국의 창업 환경 순위는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이 각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대기업들도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해 창업 기업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창업 기업 4개 중 3개꼴로 5년 내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 체감온도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한국의 창업 환경에 대해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꼽는다. 전 한국혁신센터 중국센터장이기도 한 고영화 연구원은 우리 내수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중국 등으로 진출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마윈의 후판대학을 보면서, 중국의 창업 역량은 정책과 지원만큼이나 마윈 같은 기업가들의 힘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의 '실패'를 겪어도 '시도'로 인정해 주고, 다시 일어서서 결국 성공한 산증인들이 앞장서 이끌어주는 문화 말이다.
최영은 기자 (imlif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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