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보/전기.전자

알려져 있지 않은 캐논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5. 22:33

日本 다이아몬드誌「캐논」社 特輯 報道 '05. 2.28

 題    目 : 알려져 있지 않은 캐논

 

□ 導入部

   높은 受益力, 강한 財務體質, 우수한 經營 수완.
   세 박자를 다 갖춘 캐논이 새로운 개혁에 나서 더 높이 성장하려 한다.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社長이 시작하는 전략의 핵심은  TV를 비롯한 디지털家電 사업에의 신규 참여와 공장의「無人化」를
   포함한 국제적인 社業 再編이다. 캐논의 끊임없는 대변신을   들여다보았다.

 

□ 1部: 캐논이 TV를 만드는 날
   - SED 패널 개발에 勝算
   - 2,000億円 거액투자의 진심
   캐논은 도시바와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 SED의 실용화를
   추진한다. 오래도록 열망해온 TV 사업에의 참여는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이 그리는 새로운 성장노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TV 업체를
   引受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캐논의「빅터」와
  「파이오니아」브랜드 引受 시뮬레이션을 함께 분석해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年 전, 미국투자은행이 제록스社의 引受를 고려해
   볼 것을 캐논에게 상담한 적이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은
   소유기술의 중복을 이유로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살 수만 있다면 샤프를 사고 싶다.」 그 당시에 미타라이 社長이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다. 거기에는 30年 가까이 키워 온
   액정기술을 무기로 박형 TV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샤프에 대한 높은
   평가와 TV 사업 참여에 대한 의욕이 엿보인다.
   카메라, 복사기, 프린터 등 정지화면에서는 톱을 달려온 캐논의  
   차세대 成長 戰略의 핵심은 TV이다.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가
   현실이 되고 동영상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캐논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TV를 만들어야 한다고
   미타라이 社長은 일찍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미타라이 社長 인터뷰
   참조). 그가 선택한 것은 샤프와 마찬가지로 기간부품이 되는
   디스플레이의 개발이었다.


   액정과 프라즈마에 비해 원재료비는 30~50% 싸다
   액정, 프라즈마 디스플레이 等 박형 패널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캐논이 선택한 SED는 브라운관과 같은 원리로 영상을
   비춰 낸다. 따라서「소비자에게 익숙한 화질을 재현할 수 있다」고
   캐논의 SED 개발본부장인 우자와 순이치 理事는 말했다. 더구나
   플라즈마의 1/3, 액정의 1/2 정도 밖에 전력을 소비하지 않아   
   경쟁 우위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캐논의 TV」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04年 10月 5日에 개막한 日本
   최대급의 電子 쇼인「크리에이티드 재팬」에서는 SED 부스에 사람이
   산더미처럼 몰렸다. '86年부터 연구개발에 착수한지 18年, 도시바를
   파트너로 얻어 공동개발을 하기 시작한지 5年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이 날 처음으로 36인치 패널이 일반 공개된 것이다. 캐논과
   도시바는 '04年 10月에 합자회사인「SED」社를 설립하고, '05年
   8月에는 200億円을 투자하여 SED 패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07年에는 1,800億円을 추가로 투자하여 대량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10부터는 300만장 내외를 출하, 매출액 2,000億円을
   예상하고 있다. 주력인 카메라 사업의 매출액 6,450億円('03年度
   기준)의 1/3 규모에 달하는 기간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경쟁은 치열하다. SED 진영이 最大 戰場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40 ~ 50인치 대형 TV 시장은 액정과 플라즈마의
   가격인하 경쟁으로 값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 SED 패널이
   量産될 예정인 '10年에는 1인치당 5,000円 정도가 시세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캐논과 도시바는 '10年에는 SED 패널 사업을
   흑자화시킬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반값을 밑도는 가격으로
   출하를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SED 패널은 액정처럼 백라이트도 필요없고,
   플라즈마처럼 손이 많이 가는 구동용 IC(집적회로)도 필요 없다.
   따라서 원자재비가 30~50%는 싸다. 그러나 한편으로 캐논과
   도시바의 오리지널 패널인 만큼 제조장치에 범용품은 없고
   독자적으로 개발, 제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용은 올라간다.
   그러나 캐논은 오히려 自社의 강점인 생산 개혁을 통해 비용절감을
   도모하는 중이다.
   물론 디스플레이만 가지고는 자기 會社만의 TV를 만들 수는 없다.
   전파를 수신하고 화상데이터를 늘리는 심장부의 IC, 畵像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IC, 구동용 IC 및 방대한 공정수의 소프트웨어
   개발도 필요하다.
   캐논은 당초 도시바에게 TV의 OEM 생산을 의뢰할 예정이었으나
   구동용 IC는「SED」社로, 그 외의 IC 및 소프트웨어는 캐논의
   SED 개발본부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해 어디까지나 자체 제품을
   고집하고 있다. 최근 半導體 부문과 소프트웨어 부문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할 예정이다.
   캐논의 도전이 적정한 비용에서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자. 美國의
   조사회사인「디스플레이 서치」社가 계산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年間 300万장 내외를 출하했을 경우, 40인치 이상의 대형 TV
   시장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획득할 수 있다. 그 제품 모두에
   캐논 브랜드를 넣을 수 있다면 현재의 소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TV 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단, 거기에는 캐논의 높은 이익율의 원천이 되고 있는 소모품의
   비즈니스 모델인「프린터가 팔리면 잉크나 종이까지 계속적으로
   팔린다」는 플러스의 나선구조는 통용되지 않는다. 빈번한
   모델 변화와 가격저하 압력이 항상 따라다니는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더구나 신규 진출 업체는 
   캐논 뿐만이 아니다. 델社를 비롯해 수평적 분업을 잘하는
   컴퓨터 분야의 글로벌 플레이어들도 戰線에 참가한다.

   5兆円의 매출액을 지향하며 확대성장 노선으로
  「經營은 숫자다」라고 말하며 미타라이 社長은 이익율과 현금흐름의
   改選을 최고 과제로 하는 改革을 단행, 캐논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優良企業으로 끌어올렸다. 도요타자동차도 능가하는
   14.8%의 ROE를 확보하는 等, 강력한 財務構造는 미타라이 社長의
   높은 經營 수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 미타라이 改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종전의
   효율화 노선을 가속화하는 한편, 새로운 다각화를 통해 확대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06年부터 시작되는 5개년 계획에서는 매출액
   5兆円, 순이익 5,000億円 ('03年度 실적은 각각 3兆 1,980億円과
   2,757億円)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확대성장 전략의 기둥은 TV 외에 또 하나, 생산효율의
   비약적인 향상을 포함한 국제적 사업재편에 있다.
   캐논은 지금까지 셀 방식 채용, 3차원 CAD를 도입을 통한 시제품
   없애기 等 잇따라 선진적인 생산개혁으로 연간 500億円 ~
   1000億円의 비용절감을 실현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無人化
   (완전자동화)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수법으로 한 차원 더 높은
   비용절감을 실현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캐논의 세계시장 공략, 특히 對中國 전략이 숨겨져 있다.
   향후 中國은 경제성장에 따라 거대한 소비시장이 될 것이며, 동시에
   생산비의 상승 또한 불가피하다. 따라서 비용 경쟁력이 높은
   궁극적인 생산 시스템을 확립, 이를 中國으로 옮겨가 시장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미타라이 社長은 歐美의 판매거점을 新社業의 개발거점으로
   육성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000億円 규모의 대형기업
   引受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자세이다. 이미 두 군데의 거점에서는
   社長 직속의 M&A 관련 조사부대가 활동하고 있다. 캐논은
   7,000億円이라는 유동성 현금(현 예금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주식시장도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빅터」와「파이오니아」, 引受 시세는 1,000億円
   여기서 얘기를 TV로 돌려 시점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자체 제품을
   고집한다 해도 M&A로 노하우와 기술, 그리고 시간을 버는 방법도
   남아 있을 것이다. TV의 선구자인 마쓰시타電機조차 심장부 IC와
   화상재현 IC를 일체화한 새로운 엔진개발에 3年이라는 세월과
   수백억円을 투입한 바 있다.
   여기서는 브라운관의 노하우를 가진 日本「빅터」를 인수했을 경우,
   캐논의 기업가치를 어느 정도 올릴 수 있는지 等을 공표된 수치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았다. (물론 실현가능성은 52%의 주식을
   보유한 母會社 마쓰시타電機의 의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또한
   플라즈마 TV와 DVD 레코더를 중심으로 한「파이오니아」의
   家電사업의 營業 讓渡 상황에 대해서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모두다 1,000億円 이상의 引受 금액이 타당할
   것이다. 日本의 디지털 家電 업체들은 기술혁신과 가격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너무 피폐해진 상태다. 고용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정에 얽매여 재편 움직임도 현재로는 둔하다. 따라서
   캐논이 결단을 내릴 경우, 그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 2部: 8가지 지표로 보는 강인함의 원천
   - 高利益, 돈 벌어들이는 특허, 無負債
   - 도요타를 능가하는 강력한 財務構造
  「전 세계를 돌아봐도 벤치마킹 대상은 도요타자동차 외에는
   없다.」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8개의
   경영지표를 이용해 비교해 보았다. 그 중 6개 지표에서 캐논이
   도요타자동차를 웃돌고 있었다. 이익율과 현금흐름의 개선에 역량을
   발휘해온 미타라이 개혁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① 종합 평가: 6개의 지표에서 도요타를 능가
      매출액 총이익률, 매출액 당기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ROE(주주자본이익률), 매출액 성장률, 총자산성장률,
      주주자본비율, 유동비율. 이상 8개의 지표에서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同種業인 리코,
      향후 공략할 電子 산업 분야에서 경쟁할 소니와 비교해 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출액 총이익률이다. 도요타자동차가
      19.8%인데 비해 캐논은 50.3%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한마디로 프린터가 팔리면 잉크, 종이 등 소모품이 계속적으로
      팔린다는 善循環의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효율성을 나타내는 두 개의 지표, ROIC는 17.9%, ROE는
      14.8%로 모두 歐美 기업 수준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소니의 1.4%, 3.7%를 크게 앞서고 있다.
      미타라이가 社長으로 취임한 '95年度에는 8,431億円이나 되던
      有利子 부채잔액은 '03年度에는 1,000億円으로 줄어들어
      주주자본비율을 크게 올리고 있다.

   ② 부채의존도: 자금조달 리스크를 철저하게 극소화
      창업 이래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가 최우선으로
      이루어진 결과, 有利子 부채잔액을 끌어올린 경향이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타라이 社長 취임시의 有利子 부채잔액은
      8,431億円, 有利子 부채 의존도는 34.3%로 껑충 뛰어 있었다.
     「신제품의 개발 等 사업 리스크와 자금조달 리스크를 이중으로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타나카 專務는 회상한다.
      미타라이 社長은 경쟁이 더욱 더 치열해지는 사업환경을
      고려하여 자금조달 리스크의 우려를 없애고 사업 리스크에
      전 에너지를 투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재고자산의 압축,
      채산성이 없는 사업 철수 等 23年間 美國에서 주재하며 배운
      현금흐름 經營을 철저히 하였으며 이익에서 창출된 잉여금을
      有利子 부채 변제에 충당한 것이었다.
      현재 캐논은 사실상 無負債 經營으로 바뀌었다. 지난 12月 15日에는
      美國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社가 장기 평가를 Aa3에서 Aa2로
      올렸다.

   ③ 특허의 수익성: 쓸데없는 취득을 없애고 돈 벌 수 있는 특허에 집중
      캐논에서는 사업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개발자조차, 자신과
      관련된 기술에 대해 출원특허의 동향을 암기하고 있다. 개발이나
      사업을 개시하는 조건으로 제 3자의 특허에 저촉되지 않고
      특허로 시장을 효과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즉 그 특허에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빠뜨리는 사항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이중의 안전장치가
      있다. '03年에 설립된 캐논기술정보서비스에서는 30여명의
     「걸어다니는 사전」들이 사업부가 출원하는 특허에 눈을 빛내고
      있다. 이미 출원이 끝난 특허와 겹쳐서 특허가 제출될 경우
      그것을 지적하고 쓸데없는 비용과 시간 낭비를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효율적인 특허취득 덕분에 日本의 제조업 중에서 캐논은
      특허 1건당 수익력·생산성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또한, 우선 기존사업에 인접한 분야부터 다각화를 추진한다는
      캐논의 經營 戰略도 취득특허를 유효기간 중에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이다. 특허 침해와 부딪히면 단호히 싸운다. '03年 日本
      기업이 제기한 모방품이나 특허침해품의 차압청구 총 건수의
      80%이상이 캐논에 의한 것이었다.
 
   ④ 시가총액: 소니는 앞질러, 도요타에는 미치지 못해
      '03年, 시가총액에서 지금까지 결코 손이 닿지 않던 소니를
      드디어 앞질렀다. 이는 시가총액이 前年 末에 비해
      1兆 1,417億円(25%)이나 대폭감소된 소니의 사정 때문이기는
      하다. 캐논의 시가총액은 동경증권거래소 제 1부에 상장된
      전 거래품목 중에서 8位. 1位는 도요타자동차로 13兆円. 캐논을
      3배 이상 웃돈다. TV 사업에의 참여 등 成長戰略의 향방에
      주식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3部: 제 3차 생산혁명 진행 중!
   - 中國 시장 공략의 히든카드
   - 오이타「無人工場」의 충격
   캐논의 强占의 비밀은 생산현장에 있다. 특히「셀 생산방식」의    도입으로 대차대조표는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캐논이 다음으로
   지향하는 것은「제 3차 생산혁명」이다. 공장의 자동화와 中國의  거대 소비시장을 내다본 그 혁명의 전모를 찾아냈다.
   최근 몇 년간 캐논의 대차대조표와 현금흐름 개선의 최대 공로자는   '99年부터 공장에 도입된「셀 생산방식」이다.「동경돔 (日本의
   야구장) 18개분의 공장 면적 절약」,「2万 2,000명의 현장작업원   절감」,「3,000億円 이상의 재고 감소」等 셀 도입의 효과는 방대하다.
   셀이란 작은 섬처럼 작업대 주변에 작업원이 모여 팀 단위로 완성품과 중간부품을 조립하는 생산방식이다.
   이에 비해 몇 십명이나 되는 작업원이 일렬로 서서 상류에서  흘러오는 부품을 가공하고 끝난 것은 다음으로 흘러가는 방법이
   벨트 컨베어 방식이다.
   셀의 최대의 장점은「유연성」에 있다. 예를 들어 100대를 출하할 예정이던 A 상품이 예상외로 잘 팔려 급히 증산이 결정되었다고 치자.  

  본래 능력이 정해져 있는 컨베어의 경우, 증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설비의 변경 등 보통 몇 주일이 걸린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항상 재고도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셀이라면 작업원 수를 두 배로 늘리기만 하면 증산체제가 정비된다. 작업에 사용하는 설비는 캐스터가 달린 플라스틱 제품이므

   로 간단하게 움직일 수 있다.
   셀에서는 작업원이 자신이 하는 일의 전후공정도 함께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업속도가 늦은 작업원의 일을 도와주거나 출하량이 적은 제품

   의 생산에 할당하는 인원수를 줄일 수 있다. 즉 작업원 자신이   생산속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작업원이 많은 공정을 습득하고자 하는 의욕을 높이기 때문에 생산성이 더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컨베어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작업속도는 컨베어가 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숙련공이 컨베어보다 빨리 작업을 진행시키면 중간부품이 늘어나든지 상류에서 다음 일이 올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캐논이 셀을 도입한 것은 같은 업종의 他社에 비해 오히려 늦었다.
그러나 그룹의 모든 공장에 셀 방식을 전개하는 속도와 이를 철저하게 실시한 점, 그리고 3,000億円 이상의 재고 감축 효과를
올린 점 등을 고려하면 日本 업체 중에서 아마도 가장 셀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마이이다 시게루(今飯田 滋) 생산본부장에 따르면「그 개선효과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논은 셀 방식을 그만두려고 한다. 미타라이 社長으로 하여금「제 3차 생산혁명」이라는 말을 하게 한 「無人工場」의 실현을 위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를 끈 채로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라」 미타라이 社長은 최근에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자동화된 無人工場이라면 조명을 켤 필요가 없어지며 전기세 절약으로도 이어진다. 빨리 그런 상태를 목표로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자동화 공장의 확대는 빠른 속도로 추진될 예정이다.
「'07년도에는 국내 생산액 1兆円의 25%에 해당되는 2,500億円 분을
자동화 라인으로 바꿔 놓겠다」고 미타라이 社長은 단언한다.

 

캐논 최초의 자동화 공장에 잠입!
눈앞에 오이타灣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진 언덕 위에 서 있는 오이타캐논머테리얼(이하 OCM). 레이저빔 프린터용 토너 카트리지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완전자동화」를 전제로 세워진 캐논 최초의 자동화 모델 공장이다.
자동화라고 하는 말에서 자동차 공장에 있는 듯한 거대한 기계가 토너를 순식간에 대량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더니, 약간
김이 센다. 양산형의 거대한 기계는 한대도 없다.
세미 크린룸에는 사람의 키만한 몇 개의 투명 박스가 있고, 그 박스 안에서 몇 개의 은색의 가는 로봇팔이 소리내며 움직이고 있다.
한대의 로봇이 토너 카트리지의 부품을 하나 잡는다. 마치 사람이 손바닥을 뒤집듯이 해서 나사를 조인다. 다 조이고 나면 팔을 조금 비틀듯이 해서 옆 박스의 로봇에 건네준다. 옆에 있던 로봇은 받은 부품에 작은 스프링을 집어넣고 그리곤 그 옆에 있던 로봇에게 준다.
「산업용 로봇」이라기보다는「직접 만든 전동장치」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어쩐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로봇에 의한 자동조립은 거리로 해서 20미터쯤 이어지고 유니트부품이 완성된다. 방진복을 입은 작업원이 가끔 부품의
보충이나 순시를 할 뿐 인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잠시 거기에 작업원이 서서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자동화 공장은 「셀 방식으로 라인을 잡을 것을 가정하고 공정의 낭비를 없앤 후 작업원과 기계의 구성을 바꿔치기 하는」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자동화라도 '80年代에 유행한 것 같은 대량 생산 공장에서 말하는 자동화와는 완전히 다른
자동화이다.
셀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로봇팔의 움직임은 작업원의 팔움직임과 똑같다. 중간 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나씩 부품을 가공하는 소량생산도 셀과 같은 방식이다.
참고로 이들 로봇팔은 도치기현에 있는 생산기술센터에서 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 냈다. 그렇다곤 해도 「자동화로 얻은 반 년의 비용 절감분으로 운영비가 상각된다」고 이마이이다 본부장이 말할 만큼 경비가 들지 않는 로봇들이다. 지금까지 셀 방식으로 인간이 작업하고 있던 공정을 자동기(로봇)로 바꿔 놓는 것, 이것이야말로 캐논의 자동화 공장의 실태인 것이다.

해외 인건비 시세에 좌우되지 않는 體質 만들기그렇다고 해도 지금 왜 제 3차 생산혁명인가.
단기적인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中國과의 비용 경쟁에 이기기 위함이다. OCM에서는 같은 토너 카트리지를 만드는 中國 다이렌
(대련) 공장의 생산 비용을「거의 따라잡아, 좀 있으면 추월할 수있는 곳까지 왔다」고 후지와라 켄지 OCM 社長이 말했다.
또한 근년에는 기존 셀 방식으로 생산해도 반드시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 제품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 예가 극단적인 수요변동이 일어나기 힘든 토너 카트리지 等의 소모품과 완성품에 사용되는 부품 유니트이다. '05年에는 OCM의 자동화 라인을 참고로 하면서 日本 國內의 주요 소모품 공장 3개 거점에서 완전 자동화를 도입하기로 되어 있다.
한편 제품의 수요변동이 심하고 자동화와는 인연이 없을 듯 보이는 제품의 공장에서도 사실은 이미 자동화가 일부 도입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공장인 오이타캐논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오이타캐논은 자동화를 통해 '02年에 대비 사람의 공정수를 40%나 삭감했다고
한다.
그 비밀병기는 자동검사 장치이다. 검은 마분지로 뒤덮인 상부에 창이 열려, 중고 PC의 모니터처럼 보이는 화면이 드러난다. OCM처럼
역시 손으로 만든 장치이다. 이 檢査 裝置의 도입으로 검사공정을 담당하고 있던 두 사람이 필요없어졌다.「하기에 따라서 무엇이든
자동화 대상이 된다」고 이마이이다 본부장은 말했다. 이런 檢査 裝置나 로봇팔과 같은 자동기기를 셀 방식으로 조립해가는 것이
캐논式이다.


제 3차 생산 혁명에는 그 밖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동기 그 자체는 어떤 환경변화가 있든지 간에 日本 이외의 나라에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기를 만들 때 「검사를 자동으로 할 수 있게 半導體 프로그램을 바꿔달라」,「자동기로 조립할 수 있도록 렌즈 부품을 유니트화할 수 없냐」는 식으로 실시간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그 자리에서 검증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오이타공장 생산관리부의 생산CAD와 東京本社의 카메라 설계개발 부문의 설계CAD는 전용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 작업은 공작기계 기술의 인프라가 있고 개발부문과 시차도 언어장벽도 없이 밀접하게 연계를 할 수 있는 日本에서만 할 수 있다.「자동기의 개발, 설계가 캐논 日本 거점의 향후 주요
업무가 될 가능성도 있다.」미타라이 社長의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제조에 관련되었던 작업원들은 자동기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 어쨌거나 생산기술본부만 보더라도 인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현재의 400명을 1,000명 체제로 하고 싶다」고 이마이이다 본부장은 말했다.
자동화는 나아가 다른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캐논의 공장은 臺灣, 東南亞, 中國 등 보다
「싼 인건비」를 제공해주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온 세계를 방황했다. 臺灣의 인건비가 급등하면 東南亞로, 그 다음은 中國으로 인건비
시세의 변동과 함께 생산지를 이전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동기의 도입으로 인건비가 원가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0에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어디서 만들든 생산비용은 같아진다.
예를 들어 위안貨의 절상과 인건비 급등 등이 우려되는 中國 지역에 캐논은 8개의 공장을 갖고 있으나 이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시켜서 中國으로 가지고 가면 그러한 리스크를 없앨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소비시장 속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미타라이 社長이 제창하는 제 3차 생산혁명에 해외 노동시장이라는 변동변수에 휘둘려 왔던 日本 제조업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캐논이 전사적으로 자동화에 임하는 진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 4部: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 핵심 인터뷰
    - TV를 자체 제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캐논의 존재의미가 없다.
미타라이 개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효율화를 가속화하는 한편,「신 다각화」라는 신규사업에의 참여를 통해 처음으로 규모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이 TV 개발과 생산라인의
「無人化」이다. 미타라이 社長이 처음으로 새로운 成長戰略의 전모를 밝힌다.

 

ㅇ 왜 자체 TV 기술에 집착하는가.
  - 시대에 뒤쳐질 수는 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대란   이노베이션, 즉 기술혁신이다. 카메라와 프린터 등 우리들의
    주력제품은 이미 디지털 네트워크화가 끝났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정지화면의 분야에서 만이다.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초고속 인터넷, 즉 동영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그 때 가정의 정보 스테이션이 되는 것은 TV임에 틀림없다.  
    캐논의 他 제품군과의 인터페이스를 정비하고 가정에서  단절없는 무선 네트워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핵심이 되는
    TV기술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어느 정도 감정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주변기기는 갖고 있으면서 그 중심이 되는
    기기는 다른 회사의 브랜드라는 것은 재미없지 않는가?

 

ㅇ 몇 년 정도 전부터 참여를 노리고 있었는가?
  - 社長에 취임한 '95年에는 이미 동영상의 시대를 내다보고  제휴처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브라운관에 대해서는 완전히
    아마추어이다. 그런데 브라운관을 잘 아는 도시바라는 베스트 파트너가 나타나 독자적인 기술인 SED를 같이 이끌어 주게
    되었다.
ㅇ 액정이든 플라즈마든 TV는 치열한 가격경쟁 단계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SED가 양산되기 시작하는 '07年가 샤프로 보자면
   액정공장에 대한 설비투자의 감가상각이 거의 끝날 때여서 가격 경쟁력에서는 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 TV 하나만 보면 경쟁만 심하고 돈을 벌지 못한다. 그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돈이 안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없으면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캐논의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정지화면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주변기기가
    죽어 버린다.
    우리들은 TV 하나만으로 양판점 등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합친 토탈시스템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가령 시간이 걸려도 진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후발이든 선발이든 상관이 없다. 실제로
    복사기는 2年, 디지털 카메라는 3年 씩이나 다른 회사보다 늦게 작했지만 성능을 좌우하는 기간 디바이스, CMOS 센서의
    자체 개발을 고집한 결과, 현재는 최고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ㅇ 7,000億円에 가까운 현금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M&A가 있다.
  - 항상 검토는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M&A 전략은 기술을 사는   것이지 매출, 이익의 단순한 확대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ㅇ 예전에 투자회사로부터 美國 제록스社의 引受 얘기가 있었을   때는  거절하지 않았나.
  - 그들과 같은 기술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ㅇ 신형 TV에 브라운관 시대의 노하우를 빼놓을 수 없다면 빅터」등 AV기기 업체를 인수하는 수도 있다.
  - 확실히 우리와 AV기기 업체는 기술적으로는 공통점이 있는데,  제품군이라든지 판로는 같지 않아서 함께 하는 것이 합리적이긴
    하다. 그러나 브랜드가 이미 만들어진 큰 회사를 사기 위해서는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ㅇ 美國 실리콘밸리와 유럽에 M&A 조사부대를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목적과 성과는?
  - 앞으로 10年, 20年에 걸친 장기적인 구상이지만 국제적인
    다각화를 생각하고 있다. 美國과 유럽의 지사는 이미 캐논의  판매거점으로서 종업원 1万명, 매출액 1兆円 규모로 성장했다. 
    이렇게 큰 회사가 되면 단지 商社로만 활용하는 것은 아깝다.
    그래서 日本이 갖고 있지 않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장래성이 있는 업체를 사들여 歐美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日本으로 또는
    세계에 수출하고 싶다. 그 포석으로서 조사부대를 파견하고 다. 그들에게는 1건당 1,000億円까지의 투자를 허가하고 있다.
    1億円, 2億円이라면 금방 찾아오지만 이만큼의 규모라면 허술한 있는 물건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신중해진다.


ㅇ 매출액 5兆円, 순이익 5,000億円 ('03年度 실적은 각각
   3兆 1,980億円과 2,757億円)이라는 목표는 너무 높다.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다음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06年부터 다시 기반기술에서 생산체제를 재구축할
    생각이다. 그 미션을 맡는 것은 '05年 4月에 완성될
    첨단기술 연구소이다. 또한 SED 개발, 제조를 궤도에 올려
    놓음으로써 기간 부품의 자체생산, 생산 개혁, 자재조달 개혁을
    가속화시킨다.
ㅇ 생산 개혁은 세계에 유례없는 참신한 기법으로 이미 日本
   국내공장의 무인화에 도달했다.
  - 현재 노동비용이 낮다고 해서 세계의 대부분의 기업이 中國을
    생산거점, 수출기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당연히 中國의
    소득수준은 상승한다. 그것은 이미 臺灣에서 경험했다. 中國
    위안貨의 절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더 비용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천지로 생산거점을 옮길 것인가. 이제 그런
   「화전농업」은 그만두고 싶다.
    中國의 성장은 우리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中國 시장의
    매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中國에서 만들고 세계에 내다 팔던
    시대에서 中國에서 만들어 中國에 파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날에 대비하여 개발, 설계와 생산을 無人化했다. 어디보다도
    싼 합리적인 생산시스템을 日本에서 확립하고 中國을 비롯한
    모든 생산거점으로 옮겨 놓을 생각이다.

ㅇ 벤치마킹은 도요타자동차라고 들었는데?
  - 그렇다. 그들은 개발, 생산, 판매 어느 것을 보더라도 매우
    강하다. 우리들의 약점은 생산에 있다.
ㅇ 日本의 생산시스템을 잘아는 東京大學의 후지모토 敎授는 유도에
   비유해서 도요타가 7단이라면 캐논은 6단, 다른 日本의
   대부분의 기업은 초단 수준이라 지적했다.
  - 버블경제가 붕괴한 후유증으로 고민하고 있는 日本 기업 중에서
    약간 뛰어나 봤자 의미가 없다. 나는 세계 표준의 電子
    기업이라는 잣대를 맘속에 갖고 있다.
ㅇ 69歲라는 나이는 세계 표준에서 보면 CEO으로서는 고령인데.
  -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 피곤하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건강할 때 은퇴해 봤자 간섭을 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나에게나
    새 社長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 5部:「포스트 미타라이」에 대한 도전
- 後繼者 선발의 登龍門
-「경영학원」의 비밀스런 의도
캐논에 안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05年에 70歲를 맞이한 名經營人가 그만둘 날이 확실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타라이 社長은 앞으로도 진두지휘를 할 것을 확언했으나 한편으로 차세대를 맡을 後繼者 선정작업에 착수했다. 선정의 장이 되고 있는 미타라이
社長이 스스로 고안한「경영학원」에 잠입해봤다.
'04年 12月 17日 저녁, 오이타현 유후인의 온천여관에 13名의
학원생이 결집했다. 그 곳에 특별강사로서 나타난 것은 미타라이
후지오 社長이었다.
이 날은 미타라이 社長의 발안으로 재작년부터 시작된 간부 양성을 위한 사내 연수프로그램「경영학원」제 2기의 최종회였다. 미타라이 社長의 강연 후 사업부장 및 소장급에서 선발된 13명이 캐논의 향후 10年間의 액션 플랜에 대해 각각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졸업식을 대신했다.
「경영학원」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열리며 기간은 반 년이다. 經營學에서 때로는 武士道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테마로 전문가의 강의를 받는 한편, 미리 방대한 서적 等 자료와 함께 케이스 스터디 연구가 주어지며 코디네이터와 함께 두 시간에 걸친 토의도 있다. 참고로 코디네이터는 제 1기가 요네쿠라 세이이치로
(米倉) 敎授, 제 2기가 노나카(野中) 敎授 등 經營學의 두 거장이
모셔졌다.
미타라이 社長은 적어도 한 해에 3번은 바쁜 스케줄을 조정해서
학원을 방문, 토의에도 참가했다. 가령 불참하게 되더라도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상세하게 인사·노무 담당인 야마시타 專務나 기획담당인 와타베 常務의 보고를 받을 정도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人材 교육에 열심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會長이 시작한「소니 유니버시티」가 차세대 간부 후보생이 되는 30代 초반의 젊은이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데 비해「경영학원」은 50代 전후의 간부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육의 場임과 동시에 다음 임원 인사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정보원이고 나아가서는 미타라이 社長의 후계자 선발의 場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04年 3月에 신임이 된 7명의 理事 중 대부분은 1기생 중에서 올라왔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자신의 후계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經營者로서 필요한 것은 구상력, 그 구상을 납득시킬 만한 표현력, 주위의 신뢰, 그리고 사심이 없는 것」이라고 미타라이 社長은
4개의 조건을 내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구상력은 빼놓을 수 없는 능력이라 생각하고 있다. 가령 앞서 말한「경영학원」의 담화에서 미타라이 社長은 이렇게 강조했다.「리더의 일은 밑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색을 칠하는 것은 부하들이지만 그리고 싶은 것이 가을풍경인지 아니면 여름풍경인지 그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공장시찰이나 勞組와의 협의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되돌아보면 미타라이 社長은「經營은 숫자다」라고 단언하며 이익율과 현금흐름의 개선을 가장 중요시하는 개혁을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추진하여 캐논을 세계에 통용되는 優良企業으로 이끌어 왔다. 미타라이 개혁의 방법을 분석하면 거기에는 명확한 목표설정,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 제시, 그것을 현장 수준까지 침투시키고
「각인」시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구체적 개혁수단의 설정, 침투수법에 이르는 구조는 經營學 교과서의 원리원칙을 뛰어넘는 신기함이라든지 독자성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추구하는 엄격함과 현장으로 파고드는 조직심리 파악 능력을 갖춘
점이야말로 미타라이 社長이 名經營人로 불리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年初에는 반드시 任員, 中間管理職을 따로 모아서 금년도의 전략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한편 국내 14군데의 공장을 자신의 발로 다 돌아보고 종업원과의 대화나 교류에 시간을 낸다. 방침 전환의 국면에서는 더 직접적인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연구, 개발직에 적용하던 변동시간제를 '03年 7月에 폐지했을 때는 勞組와 몇 번이고 무릎을 맞대고 勞組員들이 끈기에서 질만큼
그 비효율성을 호소했다.
이런 조직 운영능력은 반드시 後繼者에게도 있었으면 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시대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 장기적인 시야, 즉 구상력이야말로 필수라고 미타라이 社長은 생각한다.

소모품의 승리의 방정식은 TV에 통용되지 않는다.
초고속 인터넷이 현실적인 것이 되어 동영상의 송수신이 간편해졌다.
정지화면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한 캐논에게 필요한 것은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TV 기술이었다. 그에 따라 '86年부터 연구개발에
착수한 SED를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믿고,
마쓰시타電機 等 많은 TV 업체가 SED의 개발을 단념하는 가운데
참을성 있게 육성해 왔다. 그 성과가 도시바와의 개발·제조 부문
합자회사설립이며, '05年度에는 SED TV의 상품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캐논과 미타라이 社長에게 최대의 도박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캐논의 높은 이익률은 복사기의 제조, 판매 뿐만 아니라 토너교환 等 서비스, 잉크, 종이 等 소모품의 제조·판매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이른바 이「승리의 방정식」이 들어맞지 않는 디지털 家電 세계에서 成長戰略의 활로를 찾아내려 하기 때문에 이는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도박임과
동시에 미타라이 社長의 구상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물론 경쟁은 치열해지기만 한다. 박형 TV, DVD 레코더 모두 본격적인 보급기를 앞두고 이미 가혹한 가격인하 경쟁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百戰老將의 電子 업체들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더 디지털화, 초고속 인터넷화가 나선구조로 진전되어가는 가운데, TV, PC, 기타 주변기기들간의 경계는 더욱 애매모호해진다. 경쟁력의 근원도 알기 힘들게 된다. 비즈니스 모델도 크게 변하여 내일의 경쟁자는 수평분업에서 뛰어난 컴퓨터
분야의 글로벌 플레이어들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시대보다 더 혼탁한 시대가 올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타라이 社長은 특히 後繼者에게 구상력을 요구하는 것일 것이다.

극비 프로젝트로 10年 後의 도메인을 찾는다.
'04年 미타라이 社長은 日本「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社長,
會長職을 지낸 이코마 토시아키(生駒俊明)를 어느 극비 프로젝트의
수뇌로 맞이했다. 이 프로젝트 팀의 미션은 2010年부터 10年間을
내다보고 캐논이 어떤 사업 분야에서 싸워 가야 할 것인지를
구상하고 그 때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미 현황 분석 작업은 시작되었으며 '05年 1月 중에는 미타라이 社長에 대한 보고회가 개최된다. 또 이어서 4月에는 여기에 바로
그 시대를 담당할 젊은이들을 결집시켜 새롭게 조직을 결성할
예정이다.
經營者의 예상 범위를 넘어 시대는 변화할 것이다. 미타라이 社長이 구축한 전통의 이념을 이어 가면서도 현재에 맞춘 새로운 해석을 하고 때로는 과거를 부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새로운 리더의 탄생을 원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미타라이
社長이다.


□ 인터뷰 기사: 미타라이 개혁을 지탱하는 7人의 사무라이

① 하타나카 카츠노리(畑中勝則, 52歲) SED 기술개발센터 소장
   - 10年 넘는 연구개발의 苦鬪
   -「실용화 불가능」의 평판을 뒤집는다.
   캐논이 社運을 거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SED의 실용화 프로젝트에 
   하타나카 카츠노리가 참가한 것은 '93年. 그 후 사내에서
  「신기루」라 불리게 되는 SED와의 고투가 시작되었다.
   SED는 '86年 기술담당임원이던 故 미타라이 하지메 前 社長이
   사내에서 골라낸「미래의 캐논을 이끄는 신기술」후보 중
   하나였다. 디스플레이 연구를 하던 하타나카는 SED의 개발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만큼 苦戰을 각오했다.
   당시는 실용화 불가능이라는 견해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 1年 동안에 어쨌거나 3인치짜리 시제품을 만들었다.
   기술에는 조금이지만 자신을 가졌다.
   그러나 대형화, 양산화 방법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SED는
   유리판 2장을 2밀리미터도 안되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맞추고,
   그 사이에 가정용 전원의 10배가 되는 고전압을 걸어서 畵像을
   표시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 틈새에 먼지 하나 들어가도
   안 된다. 양산에는 진공생산 기술이 불가결했다. 또한 화소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형광체의 기술도 필요했다.
   개발조직은 서서히 확장되어 '96年에는 10인치짜리 패널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양산에 필수적인 기술취득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몇 년간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도시바라는 브라운관
   TV (SED와 원리가 같음)의 경험이 풍부한 파트너를 '99年에
   만난 것은 정말 도움이 되었다」
   도시바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제조 프로세스를 크게 재검토한 
   '01年 2月, 처음으로 30인치의 대화면 SED에 영상이 비친다.
   그리고 저가격화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세스 개량에 2年을 더
   투입. SED는 난산 끝에 '04年에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하타나카의 자택 TV는 수명이 다하기 직전이다. 이를 SED로
   바꾸겠다고 선언,「도대체 언제 만들어지냐」는 가족들의 독촉을
   받으면서 10年만의 개발작업은 최종단계를 맞이하려 한다.


② 사카에기 유지(榮木裕二, 44歲) DCP 설계실장
   - 한 박자 늦음에서 톱으로 약진
   - 통설을 깨는 映像엔진開發者
   8年前 캐논의 디지털 카메라사업은 완전히「한 박자」늦었다.  
   최대의 원인은 엔진(화상처리용 半導體)이다. 당시 경쟁사들은
   모두 다 개발비가 많이 드는 것을 싫어해, 엔진은 탑재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로 화상처리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조작성이나
   응답성을 상당히 희생해야 된다. 카메라 성능을 고집하는
   캐논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自社의 비디오용 엔진을 개조해서 디지털 카메라용
   엔진으로 만들었지만 모델 체인지 때마다 추가개발이 발생했다.
   그 결과 他社에 비해 크게 뒤쳐진 것이다.
   어느 날 사카에기 유지는 상사로부터「어떤 음식에도 잘 맞는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라는 수수께끼문제를 받았다. 그것은
   어떤 기종에도 적합한 범용성이 높은 엔진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카에기는 막막했다. 그것은 ASSP라 불리는 특정용도용
   범용 半導體의 개발을 의미하는데, 업계에서는 당시의
   디지털 카메라용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처음 반년간, 사카에기 한 사람이 담당이었다. 엔진 개발은
   당시의 디지털 카메라 사업의 존속을 좌우하는 것과 같은 최고로
   중요한 과제였다. 압박도 심했지만「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을 쓰라며 회사가 방임해 주었다.」그런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새로운 半導體의 회로구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여기에 캐논
   특유의 개발법이 엿보인다. 도박의 결과는 좋은 쪽으로 나왔다.
   개발한 엔진「DIGIC」는 나중에「업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용
   ASSP」라는 영예의 칭호를 받게 된다. 본업인 半導體 업체를
   포함한 경쟁사들은 성능면에서 아직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화소수만으로 디지털 카메라가 평가되던 풍조를 바꾸고 한 박자
   늦었던 것에서 톱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것 모두 사카에기의
  「DIGIC」가 가져다 준 것이었다.

 

③ 오츠카 유라코(大塚由裸子) 아미공장 영상사무기 조립2과
   - 고효율「셀 생산」의 名工
   - 고액복사기를 혼자서 만들어 낸다
  「수퍼 마이스터」라 불리는 오츠카 유라코의 머리 속에는
   1,800페이지에 걸친 작업지시서(매뉴얼)가 모두 들어있다.
   오츠카는 1대에 100万円 이상하는 복사기를 혼자서 만들어 내는
  「名工」이다. 보통은 몇 명이 함께 팀을 짜야 만들 수 있는
   부품이 3,000개에 달하는 超高級 기종조차 1번도 매뉴얼을
   들여다보지 않고 조립한다. 한 조각의 낭비도 없는 그 움직임은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오츠카도 셀 생산 방식이 도입된 '98年 이전에는 벨트
   컨베어 앞에서 주어진 작업을 반복하는 단순노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셀 생산을 시작한 후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변했다.
   자신의 자리 앞 뒤의 공정도 외워야 해서 점차「前 공정은
   왜 항상 늦어지는지」, 「後 공정에서는 어떤 작업이 기다리고
   있는지」하면서 주위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스킬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취업시간 이외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이 끝난 후의 공장라인에서「자주적인
   트레이닝」을 하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이미지 트레이닝」도
   했다. 그러자 어느 샌가 모든 공정을 외울 수 있는데 까지
   성장했다.
   그런 오츠카에게 '04年 初에 사건이 일어났다. 社長인 미타라이
   후지오 본인으로부터 초콜릿을 선물받은 것이다.「매뉴얼을
   외우기 위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초콜릿을 항상 먹고
   있다」는 오츠카의 얘기를 전해들은 미타라이가 공장시찰 때
   직접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오츠카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것은
   미타라이式 커뮤니케이션의 극치임과 동시에 미타라이가
   생산 현장을 캐논의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캐논은 생산 혁신으로 연간 550億円이나 경비를 절감했다.
   오츠카를 비롯한 마이스터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그것을 받쳐
   주고 있다.

 

④ 오하라 츠네마사 (大原經昌, 48歲) 카메라개발센터 부소장
   - 필름의 전통을 디지털로 계승
   - 10万円의「일안리플렉스)」를 유행시킨 사람
  「귀신 같은 품평」, 카메라의 시제품은 반드시 사원들이 이렇게  
   부르는「품질평가실」로 들어가게 된다. 상주하는 프로
   카메라맨들로부터 화질, 소리, 셔터 속도, 버턴 위치 등 세부에
   걸쳐「重」,「中」,「小」의 결점이 나열된다. 이 결점이 없어질
   때까지 제품화할 수 없다. 이처럼 전통의 카메라 기술에 대한
   캐논의 고집은 대단하다.
   '03年, 캐논은 디지털 일안리플렉스(SLR)에서 세계 점유율
   70%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이에 크게 공헌한 것이
   '03年 9月에 발매되어 1 기종만으로 세계 점유율의 30%분의
   출하를 기록한「EOS 키스 디지털('키스디지')」이다. 개발과
   관련한 오하라의 고집은 高品質과 低原價의 양립에 있었다.
   키스디지의 판매가는 10万円代 전반으로 설정되었다. 디지털
   SLR에서는 획기적이지만 이 가격설정으로 상위기종과 동등한
   이익률을 확보하는 것은 보통 불가능했다. 그래서 몇 개월에
   걸쳐서 일대 비용절감 프로젝트의 시나리오를 써냈다. 그것은
   본체와 기판의 설계개량에 의한 부품점수의 삭감에서 시작해,
   공장에서의 조립라인, 반도체의 수율이나 미세가공레벨, 외주부품
   조달처의 변경에 이르기는 장대한 플랜이었다.
   오하라는「그 비용절감이 나중에 다른 부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각 부서를 돌면서 설득했고 전사 차원의 협력을
   얻어 냈다.
   결과적으로 기판 면적은 전기종의 45%으로 조립 공정수는
   약 반으로 줄었다. 공구까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는 등,
   필름시대부터의 기간기술을 이어받은 완전히「새로운 방법」으로
   키스디지는 태어났고 훌륭하게 시장을 석권했다.
  「키스 디지로 찍고 있는 사람을 보면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느끼는지 아닌지 너무 궁금해서 그 모습을 쭉 몰래 보고 있다」
   고 하는 오하라. 그 높은 프로의식이 전통의 캐논 브랜드를
   지탱하고 있다.

 

⑤ 카스가야마 유키오(春日山幸夫, 59歲) DR기술개발센터 소장
   - 의료기기 사업을 좌절에서 구출한 대단한 비용 절감가

   난국타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책에 명확한 순위를
   매기고 시간을 나누어 전원이 집중, 철저히 시행토록 한다.
   지금은 미타라이 개혁의 요체를 갖춘 리더들이 사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카스가야마도 특기할 만한 사람 중 하나이다.
   '99年「X선 디지털 카메라」를 발매하고 의료기기 분야에 참여한
   캐논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70% 할인이 일상화된 심한
   가격경쟁이었다.
   디지털 X선 장치에서는 지멘스와 GE 등 외국업체와 함께
   후지필름과 코니카미놀타 등이「年間 2万 ~ 3万대」의 시장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카스가야마가 이 사업을 담당하는 DR기술개발센터로 보내진 것은
   '01年 1月. 신규사업 개시에는 3年의 유예, 나아가 2年의
   계속심의 기간이 주어지며 거기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없으면
   가차없이 그 사업은 사라진다.
   손익분기점이 90%를 넘던 X선 디지털 카메라가 사업으로
   성립되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우선 경비를 내리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나 현장은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고기능화에 시선을 뺏기고 있었다.
   그래서 카스가야마는「1%의 성능향상보다도 10%의 경비절감이
   최우선이다」라고 외치며 새로운 기술개발을 억제하고
   제조공정의 혁신에 집중했다. 액정 디스플레이나 감광드럼업체의
   공장을 철저하게 연구한 것이 주효하여 3年만에 경비를 1/3로
   내리는데 성공했다.
   다음 과제는 의료기기 부문에서「캐논 브랜드」의 확립이었다.
   참여 당시는 쳐다보지도 않던 고객이 접촉해주게 되었다. 그러나
   경쟁기반이 굳혀졌다고 할 수는 없다. 기술개발력에는 자신이
   있다. 그것을 어떤 임팩트를 바꾸어 시장에 줄 것인가.
   카스가야마는 새로운 구상을 짜고 있다.

 

⑥ 다카시 후카오리(深堀 隆, 29歲) 캐논판매 전자기기
   가나가와영업부 요코하마판매2과
   - 캐논 제품의 포교에 힘쓰는「거리 설법」의 넘버원
  「신제품(프린터)의 포인트는 잉크, 급지, 양면인쇄. 연말
   販賣戰에서는 반드시 팔립니다」
   '04年 10月 15日, 시나가와의 캐논 판매본사에서 개최된
  「거리 설법 명인전」. 전국에서 선발된 11名의 영업사원 중에서
   우승한 다카시 후카오리의 말은 간결하다. 리드미컬한 느낌으로
   상품 특성을 정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믿음과 기대를 갖게 한다.
   캐논 판매에서는 '01年부터 전국의 家電 양판점과 카메라 전문점의
   판매담당자에게 캐논 제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목적으로
  「年間 1万회」를 목표로 약 200명의 전자기기 영업부원이
  「거리 설법」을 하고 있다.「지금까지 프린터는 설치장소가
   한정되어 있었지만 신제품은 벽에 둘 수도 있고 선반 위에
   놓아도 쓰기 편합니다.」오후 9시를 넘은 폐점 후 판매점.
   다카시의 설명은 고객의 이용 장면에까지 이른다.

   연간 출하대수 약 800万대의 잉크젯 프린터시장은「바뀌는」
   것이 중심이다. 예전 모델과의 차이, 구입 후 생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고객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캐논 제품을
   추천하는 동기부여가 되도록 말이다.
  「아름다움의 엡슨」 對「속도의 캐논」- 한때 정착된 이미지의
   영향 때문에 30% 전반의 점유율로 떨어진 프린터 시장에서
   캐논은 8年만에 수위를 탈환했다. 후발이던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점유율 상위권으로 약진했다. 이런 실적은 개발부대의 상품력
   강화 뿐만 아니라 거리 설법에 의한 꾸준한 영업활동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도 하다.
   판매대수의 저조, 단가하락으로 판매점측도 어렵다. 이에
   거리 설법자들은 매장 전체에서의 단가향상의 방법을 전수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카메라를 사러 온 고객에게 프린터도 권하고,
   연하장 시즌에는 프린터와 연하장 작성 소프트웨어를 세트로
   제안하는 것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신뢰관계는 착실히 강화되고
   있다.

 

⑦ 사노 히로시(佐野 博, 48歲) 소비자 상품 디자인 부장
   - 설계부서와의 협업에 성공
   - 名디자이너의 이상과 집념
  「9年間 정말 많은 디자인을 했지만 제품화된 것은 4개 내지 5개
   밖에 없었다.」
   현재 소비자용 상품의 디자인부대를 통괄하는 사노 히로시는
   중도 입사 후의「암흑기」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당시 하고있던
  「전자 스틸 비디오 카메라」에서의 연전연패가 그의 원점이다. 
   되돌아보면 디자인 본위로 설계, 생산부문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
   '97年에 세이코 엡슨에게 톱 자리를 내준 후 8年만에 연간
   점유율 1위를 획득한 잉크젯 프린터. 부활의 견인차가 된 것은
   '04年 가을에 투입된「칠흑의 직방체 보디」에 둘러싸인
   신제품이다. 프린터의 상식을 뒤엎는 그 참신한 디자인은
   3年 정도 전부터 구상을 하고 있었다.
  「'01年부터 컨셉은 '인테리어'라고 말했다. 助演이라도 좋지만
   스파이스(양념)가 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결론으로 도달한 것이 전통공예인「마키에바코」였다.   
   광택을 내뿜는 검은 패널을 채택하고 주변에서 중앙부에 걸쳐서
   약 1밀리의 곡면을 갖춤으로써「작아 보이는」 디자인을
   실현한 것이다.
   문제는「직방체」의 본체에 있었다. 사노와 설계부서는 한 몸이
   되어 개발을 하여 3年만에 이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종전의 설계 상에서는 기판이나 모터 등의 프린터 엔진의 크기와
   전원의 배치장소, 급지방법이 제약이 되어 직방체의 디자인은
   실현할 수 없었다. 사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설계부대에게 완전히 발상을 바꾸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암흑기의
   교훈을 살렸다.
   디자이너의 의견이「제품 만들기」에 반영되는 풍토와 고도의
   설계기술을 융합시킬 수 있었다. 사노가 이끄는 디자인 부대는
   조연에게 주연급의 존재감을 갖게하는 힘을 감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