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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금형산업 메카 꿈 부천 금형업체들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14. 07:01

산학연 협동으로 고부가 첨단산업 ‘날개’ [경제 재도약] 패러다임을 바꾼다 /
동북아 금형산업 메카 꿈 부천 금형업체들

 

금형은 ‘물건 만들기’의 처음이자 끝이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재료를 녹여 넣거나 압축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틀’이다. 금형의 정밀도에 따라 생산품의 품질도 달라진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3차원 설계를 한 뒤 이 정보를 초정밀 가공기계에 전달해 금형을 만들지만, 마지막 1000분의 1㎜의 오차를 잡아내는 것은 사포나 끌을 잡은 사람의 손길이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 산업국가들이 막대한 규모의 설비투자에 나서면서도 핵심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선 흔히 기피(3D)업종의 하나쯤으로 치부되는 금형은 실상 반도체나 자동차 못지않은 간판 수출품목이다. 60조원 규모의 세계 금형시장에서 한국은 6조여원의 매출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일본 교역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분야이기도 하다.

 

전국의 금형회사 3700여곳 가운데 800여곳이 몰려 있는 경기도 부천시가 ‘동북아 금형산업의 메카’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 고유의 ‘손끝기술’을 이어가면서 첨단·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강소기업’으로 변신 중인 금형업체들이 몰려 있다.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정우정밀은 서울 영등포 일대의 ‘마찌꼬바’(영세한 동네공장을 가리키던 일본식 표현)에서 출발해 25년 만에 연간 30억원어치를 일본 미쓰비시에 수출하는 정밀금형업체로 거듭났다. 이 회사의 구인모(44) 대표는 금형의 마무리 작업인 ‘사상’ 일부터 배워 창업까지 나아간 전형적인 현장기능직 출신 경영자다. 그가 2004년 생산효율을 기존 제품보다 70%까지 높이는 이중금형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의 손끝기술을 바탕으로 금형업계의 구조적 변화에 적극 대처한 결과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2억여원을 들여 전자제어설비를 갖추는 등 정보기술(IT) 관련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부천디지털금형센터를 통해 기술개발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 구 대표는 “재료와 작업장 상태에 따라 정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만으론 금형을 만들 수 없다”며 “무엇보다 정밀금형업체로 변신에 성공한 핵심 배경은 오랜 세월 함께 일한 엔지니어들”이라고 말했다.

 

부천시 원미동의 엠앤드엠은 노트북 컴퓨터의 플라스틱 외장을 얇게 하면서 동시에 휨 현상을 방지하는 박판금형 전문업체다. 요즘 주로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기업들과 거래한다. 이 회사의 김계훈(43) 대표는 “외국 기업들은 중국 업체에 금형을 100% 맡기지 못한다”며 “원천기술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마무리 작업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밀공작기계로 가공한 곡선면도 현미경 단위로 들여다보면 톱니바퀴처럼 거칠기 마련인데, 사람이 직접 그라인더로 쓸어내 매끈한 표면을 만드는 사상 작업을 중국 업체는 흉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엠앤드엠은 자체개발한 첨단기술과 숙련 기술인력의 노하우 모두를 국외시장 공략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내 대형 금형공장들의 사상작업 관리를 주업무로 하는 독자 법인을 홍콩에 설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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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기술’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부천 금형업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이 지역 금형산업의 탄탄한 역사, 기업인들의 기술개발 도전과 설비투자, 산·학·연 네트워크 및 청년인력의 확보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1970년대 서울의 공해업소 철거 방침에 따라 이 지역에 몰려든 금형업체들은 이후 생활가전, 자동차, 휴대전화 등 수출 주력품목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숨은 주역들이었다.

 

여기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운영하는 부천디지털금형센터는 박사급 5명을 비롯한 19명의 연구인력을 갖추고 기술개발, 인력양성 등을 통한 ‘업그레이드’를 돕고 있다. 부천디지털금형센터의 차백순 박사는 “1년여 전부터 부천지역 업체들이 이곳 연구인력을 활용해 새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정우정밀을 비롯한 많은 업체들이 조만간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자신했다. 해마다 100여명씩 금형을 전공한 신규인력이 공급되는 것도 희망적이다. 가까이 있는 아주자동차대학, 유한대학 등이 정규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인천인력개발원과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도 ‘단기교육-업체연수’ 형식의 청년채용 패키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부천 금형업체들은 지금 중국의 추격에 따라잡혀 침몰하느냐 아니면 공동의 노력으로 도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산업화 과정에서 어렵게 축적한 손끝기술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전통제조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