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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이어온 두산 ‘最古기업’ 대한민국 경제 이끈 장수 기업 현주소

성공을 도와주기 2008. 11. 25. 08:10

고비 넘고 넘어 오늘에… 112년 이어온 두산 ‘最古기업’
대한민국 경제 이끈 장수 기업 현주소
한국 경제 60년의 여정은 기업들이 만들어 온 한 편의 드라마다. 봉건적 상업 질서 위에 시장경제의 싹을 틔우고, 변방의 최빈국을 세계 13위 경제 대국으로 이끈 주인공이 바로 우리 기업들이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정부보다 먼저 태어나 숱한 고비를 넘기며 오늘에 다다른 연륜의 기업들이 있다. 끈기와 도전정신을 자양분 삼아 체력과 지혜를 키워 온, 대한민국 60년의 진정한 챔피언들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연령은 26세. 대한상의가 최근 대한민국 1000대 기업의 평균을 내 본 결과다. 한국 경제가 근대화의 발걸음을 내디딘 지 60년이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젊은’ 나이인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들의 생로병사가 쉴 새 없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평균 100개 이상의 기업이 1000대 기업에서 탈락하고 신생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통에 평균 연령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이다. 대한상의 분석에 따르면 5년 전인 2002년의 1000대 기업 가운데 잔존한 기업은 71%에 불과하다.

범위를 중소기업으로 좁히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지난 5월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설립 후 5년 이상 지속하는 중소기업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그나마 30년 이상 간판을 올리고 있는 곳은 전체의 1.5% 정도다. ‘작지만 탄탄한 강소기업’은 사실 몇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 경영의 세계에서 생존이 곧 전쟁이 된 지 오래다. 비단 한국 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출발해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은 ‘기업 평균 수명이 40~50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게다가 21세기 글로벌 경쟁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수명 늘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숨 막히는 국내외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발전은커녕 제자리 버티기조차 어렵다.

이를 감안하면 하나의 기업이 50년, 100년의 역사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오랜 식민지 시대와 참혹한 전쟁을 치러,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산업화의 역사가 짧다. 누구랄 것 없이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구고 시장을 만들어야만 했다. 한국 경제 60년 여정을 함께한 기업이라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한 셈이다.

130만 개 기업 중 145개만 ‘환갑’넘겨

그렇다면 한국의 ‘장수 기업’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환갑인 60세를 기준으로 보자. 대한상의는 ‘1000대 기업 가운데 60년을 견딘 곳은 50곳 뿐’이라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상위 0.3%의 간판 기업들 가운데 환갑을 넘긴 기업이 50개라는 뜻이다.

하지만 조사 범위를 더 넓히면 더 많은 장수 기업들을 찾을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정보의 기업 정보 허브 KISLINE(www .kisline.com)에 수록된 130만 개 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1948년 이전에 창업 또는 설립된 기업은 총 145개사(금융사, 언론사, 개인 사업체 제외)로 나타났다. 1, 2차 오일 쇼크,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 거대한 경제 파고를 넘어 지금까지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개중에는 경영 혁신으로 볼륨을 키워 대기업 반열에 오른 기업이 있는가 하면 작지만 탄탄하게 역사를 잇는 기업도 있다. 수차례 흡수 합병을 통해 회사명을 ‘현대식’으로 바꾼 곳이 있는 반면 초창기 경영 방식을 고집스레 고수하는 곳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 세기 가까이 비즈니스를 계속하는 기업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점이다. 경영학계에서는 ‘장수 기업의 비결’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월마트, GE, 3M, 노키아, P&G 등 글로벌 장수 기업들은 기업 경영의 교본으로 통할 정도다.

한국의 장수 기업들은 적어도 연륜 면에서 글로벌 장수 기업에 뒤처지지 않는다. 수많은 파고에도 굴하지 않은 만큼 기본 체력도 튼튼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외환위기에 웬만한 기업이 나가떨어졌지만 이들은 살아남았다. 당시 30대 그룹 중 절반이 1~2년 사이 사라진 점을 감안하면, 극심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 또한 인정받은 셈이다.

환갑을 넘긴 한국의 장수 기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은 의약품 제조업과 음료 및 식료품 제조업이다. 제약업 분야는 1897년 창업한 동화약품공업을 필두로 총 15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음식료품 분야에서도 1896년 창업한 최고(最古) 기업 두산을 비롯해 15개 기업이 역사를 잇고 있다. 대한민국 장수 기업의 20% 이상이 제약 및 음식료품 관련 기업인 것이다. 근대화 초기에 기초 생활에 꼭 필요한 분야에서 사업을 일으켜 지금에 이르렀다. 이 밖에 건설, 운송, 자동차 및 기계의 비중도 높았다.

연륜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지지 않아

장수 기업들 중에서도 맏형은 두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기네스 인증을 받기도 했다. 1896년 개화기에 배오개(현 종로4가)에 세운 포목상 ‘박승직 상점’이 모체다.

두산이 112년 동안 기업 활동을 이으며 20대 그룹 반열에 오른 과정은 한발 앞선 통찰력과 결단력의 힘으로 요약된다. 전국에 지점까지 둘 정도로 번성했던 박승직 상점은 1946년, 아들인 연강 박두병에 의해 본격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근대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아들의 의지에 박승직은 아들 이름의 첫 자인 ‘두(斗)’에 ‘산(山)’을 붙여 ‘두산’이라는 상호를 지어줬다.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산같이 커지라’는 뜻이다.

두산상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두산의 현대사가 시작됐다. 박두병은 1952년 주류 회사인 OB맥주를 설립하고 두산상회의 무역업을 시작함으로써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또 1960년대엔 두산산업개발, 두산음료, 두산기계 등을 설립해 명실상부한 그룹사로 성장시켰다. 현재 두산은 주류, 출판, 의류 등을 중심으로 하는 (주)두산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20개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100년 기업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산과 함께 1800년대에 창업한 기업이 동화약품공업(1897년)이다. ‘부채표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은 동일 상호 동일 제품으로 기업의 정통성을 유지하며 100년 역사를 넘긴 유일한 기업이다. 특히 국내 최초의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 최초의 등록상표, 최장수 의약품 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동화약품은 고종 임금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한 해에 ‘동화약방’으로 출발했다. 궁중에서만 복용하던 생약 비방에 서양 의약의 장점을 살려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도록 만든 게 활명수다.

수많은 약 중에 유독 소화제인 활명수를 처음으로 만든 까닭은 당시 가장 흔한 질병이 위장장애, 소화불량이었기 때문이다. 활명수는 신속하고도 신통한 효력을 나타내 입소문을 얻었다. 1937년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후로는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활명수 역사에서 독립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연통부(聯通府)를 현 동화약품 순화동 본사에 설치하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 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이 사실은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다가 뒤늦게 문헌 자료 등의 고증을 통해 밝혀졌다. 서울시는 지난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동화약품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를 설치하고 독립운동을 한 뿌리 깊은 기업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활명수는 그동안 1897년 9월 25일 발매 이후 78억 병이 팔렸다.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23바퀴 반이나 도는 양이다. 현재도 액제 소화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지난 한 해만 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장수 기업 가운데 1940년대 창업한 기업이 많다. 전체의 77%인 112개 기업이 1940~48년에 출발한 기업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39년에는 기업 환경이 녹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명성을 떨치는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전 재산의 사회 환원’으로 존경받는 고 유일한 박사가 세운 유한양행을 빼놓을 수 없다. 1926년 미국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해 큰 성공을 했던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설립했다.

유 박사는 유한양행을 ‘사회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소유’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창립 10년 만에 주식회사로 발족시키고 1962년 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한 것도 투명 경영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6·25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이 없을 만큼 견실한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유한양행 ‘신뢰의 82년’ 자랑

고 유일한 박사는 일생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유한양행 설립을 위해 귀국할 당시 동아일보는 ‘적은 자본으로 식료품 장사를 시작해 수백만 원의 큰 회사를 이룬 류일한씨-미국에서 대성공’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등장을 알렸다. 마지막 가는 길도 평범하지 않았다. 1971년 타계하면서 유언을 통해 가지고 있던 유한양행 주식을 공익법인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1976년 재단법인 유한재단과 한교법인 유한학원으로 분리)’에 기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유한양행은 존경받는 기업으로 첫손 꼽히는 무형의 자산을 일굴 수 있었다.

건설 업계에선 대림산업이 뿌리가 가장 깊다. 1939년 목재업으로 출발해 건설 사업으로 분야를 넓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으로도 유명한 대림산업은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생긴 이후 46년 연속 10대 건설사의 위용을 지켜왔다. 또 건설 회사로는 유일하게 1955년부터 53년 동안 100대 기업으로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장수 기업 중에는 요즘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분야도 적지 않다. 버스 운송 사업과 목재, 섬유, 염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버스 운송 사업 분야의 경우 전북고속(1920년), 강원여객자동차(1921년), 동해상사고속(1927년) 등 창업 80년이 넘은 기업들이 지역 기반 여객 운송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취재=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출처: 한경비즈니스  입력일시 : 2008년 8월 21일 11시 7분 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