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30년째 ‘유기농 고집쟁이’ 기업

성공을 도와주기 2010. 10. 14. 11:40

30년째 ‘유기농 고집쟁이’ 기업 생태계도 푸릇푸릇
채소·감귤·토마토·애호박…
‘유기농 마이스터’ 10명 지정
계약땐 협력업체가 ‘갑’
제값주고 350여곳서 납품
한겨레 이태희 기자기자블로그 김진수 기자기자블로그
» ‘풀무원 명장(마이스터)’ 전태은 태춘농장 사장(오른쪽 앉은이)이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진목리 오이농장에서 풀무원의 유기농 전문 유통회사인 ‘올가 홀푸드’ 신선식품팀의 유희웅 대리(전 사장 뒤 서있는 이) 등과 함께 납품할 오이를 살펴보고 있다. 용인/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착한 기업’이 경쟁력이다] 풀무원

“풀무원 명장(마이스터)으로 인정됐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보람이예요.”

건물은 높고, 차들은 복잡한 도시를 남쪽으로 계속 벗어나다 보면 아직 개발의 바람이 닿지 않은 경기도 용인의 남쪽과 만나게 된다. 고향인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서 30년 넘게 오이와 함께 살아온 전태은 태춘농장 사장. 그는 지난해 풀무원으로부터 명장의 명칭을 받았다.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은 최고로 고집 센 사람들인데, 풀무원 마이스터라면 다 인정을 해줍니다.”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고집 이외에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기 힘든 과정이다. 전 사장의 경우만 해도 천수만의 갈대를 베어다가, 방생해서 키우는 닭의 계분을 구해 퇴비를 만든다. 네덜란드까지 찾아가 직접 개발한 식물성분 배양액으로 화학비료를 대신하고, 천적으로 비닐하우스 안의 해충들을 없앤다. 그는 “풀무원은 제대로 만든 상품은 인정해 주고 제값을 쳐준다”며 “풀무원이 없었다면 이런 고집을 끝까지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풀무원은 전 사장을 포함해 쌈채소(박태성), 감귤(송상훈), 잡곡(임영규), 토마토(윤동현, 김현성), 딸기(곽해석), 애호박(홍이선) 등 유기농을 하는 10명의 마이스터들을 지정했다.

유기농은 협력과 순환이다. 풀무원의 유기농 전문 유통회사인 ‘올가 홀푸드’의 남제안 부사장은 “풀무원이 협력업체와 일을 할 때의 정신은 상호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올가의 경우 농수산물 공급업체가 100여곳, 이를 재료로 만든 가공식품 공급업체가 250여곳이 넘는다. 이 업체들과 계약할 때 협력업체는 ‘갑’이고, 풀무원이 ‘을’이 되는 계약을 맺는다. 올가 신선식품팀의 유희웅 대리는 “저희는 정기적으로 생산자와 ‘얼마 만큼의 상품을 얼마의 가격에 사겠다’는 약정을 한다”며 “생산자들이 시장상황에 상관없이 저희들에게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해 ‘원칙을 지키는 생산’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유기농을 생산하는 것도 고집이지만, 유통하는 것도 고집이다. 연 매출 750억원대의 풀무원 올가에는 식품분야 구매담당 직원(MD)이 23명으로, 다른 대형 유통업체나 식음료회사보다 훨씬 많다. 남제안 부사장은 “유기농산물로 생산하는 가공식품이 국내에 거의 없다보니, 대부분 제품을 직접 기획해서 생산을 의뢰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먼저 기준에 맞는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업체를 찾고, 유기농 재료들을 공급해 주고 생산된 제품을 납품받는 번거로운 과정이 늘 필요하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이들 업체들을 위해 제품의 포장디자인까지 대신해 준다.

유기농이 자연의 생태계를 살리듯, 유기농 유통은 기업의 생태계를 살린다. 유기농 농부들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물을 먹여 키운 동물의 배설물을 다시 식물의 유기농 비료로 쓰듯, 풀무원은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재료를 공급하고 건강한 제품을 납품받는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유기농 경영’을 이어간다.


이런 경영은 까다롭다. 전세계 식품업체들이 쓰는 650여가지 식품첨가물 중 풀무원은 165가지만 쓴다. 저명한 교수와 의사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풀무원 과학위원회’가 승인한 것들이다. 올가 경영지원실의 이지윤 대리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유기농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그것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기농으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남제안 부사장은 “1997년 네추럴하우스로 시작한 이 사업이 지금까지 계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생산자에게 적절한 대가를 주고 소비자에게도 역시 적절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원칙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기획연재 : ‘착한 기업’이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