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➎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줄여야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0년대 초반 현대차 정규직의 75%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당시 현대차 1차 부품협력업체 임금은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보다도 낮게 조사됐다. 2차 부품협력업체 임금은 사내 하청의 절반에 그쳤다. 후속 연구가 없지만 상황은 지금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중화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연구한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와 노동시장의 계층성’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고용이 거의 보장된 완성차업체 및 대규모 부품업체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나 소규모 또는 2~3차 부품업체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 및 고용보장 정도가 매우 낮다”고 밝혔다.
노동시장의 ‘계층화’ 또는 ‘분절체제’로도 불리는 이런 특징은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기업 내에서 직종별, 학력별 격차가 1987년 이후 크게 줄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가 커졌다”며 “이게 다시 문제가 되니까 기업들이 아주 소수를 제외하곤 과거 해왔던 단순노동을 사외 하청 등에 내맡기는 식으로 자꾸 기업 밖으로 밀어내면서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된 까닭은 양쪽의 임금 지불 능력의 차이가 계속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00~2009년 현대기아차와 그 하도급업체 간 연평균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을 비교해봤더니, 각각 5.44%와 3.51%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임금 1994년 대기업의 77%
지난해엔 62%까지 떨어져
대기업, 하도급 이용하는 전략
값싼 인건비에 기대 일자리 질 낮춰
사회 양극화 초래 원인
원청이 물건을 팔아 더 많은 이익을 내는 이런 재무구조는 비단 현대·기아차만의 사례는 아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연평균 13.2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하도급업체의 6.71%를 크게 웃돌았다. 이들 하도급업체 이익률은 부침이 있으나 20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하락 추세를 보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 등의 원사업자는 하도급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만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전반에 견줘 후반에 더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대기업들이 핵심 인력은 직접 고용하는 반면에 그 밖의 단순인력은 하도급기업을 통해서 간접 관리하는 전략을 강화하면서 한국의 노동시장이 중심과 주변으로 이중구조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영업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뿐만 아니라 매출 등 성장 지표의 격차도 커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6일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과제 가운데 하나로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을 꼽으면서, “중소기업의 생산성(총요소생산성 기준)은 2005년 이전까지 대기업에 견줘 다소 높았으나 이후엔 크게 낮아졌다”고 밝혔다. 생산성 하락은 결국 중소기업의 이윤구조를 압박해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상승 능력을 떨어뜨린다. 김상조 교수는 “(하도급구조가) 대-중소기업 간 상호협력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 측면보다는 중소기업의 저렴한 인건비에 기초한 대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 측면에 더 강조점이 놓여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 제공하는 고용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일자리 질의 하락은 임금 격차 확대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임금은 1994년 대기업의 77% 수준이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 추세를 이어가다 2007년엔 65%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통계는 2007년 통계 개편으로 이후 연속된 흐름을 볼 순 없다. 새로운 방식의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임금은 지난해 대기업의 62% 수준이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지표의 변화’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들 통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의 종업원수 300인 이상 대기업과 300인 미만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확대돼 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업규모에 따른 격차는 적정 납품단가 보장 등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꾀하지 않으면 해소되기 어렵다. 임금노동자의 80% 이상이 중소기업 노동자란 점을 고려할 때, 대기업의 독식을 막는 것은 단순히 대-중소 간 공정경쟁질서 확립 차원을 넘어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소기업에서 다시 가계로 소득이 흘러가도록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류이근 김경락 기자 ryuyigeun@hani.co.kr
이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➎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줄여야
굳어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일차적으로 중소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을 키워야 한다. 대·중소기업이 성과를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익률, 생산지수 등 경영지표 격차는 여전히 크다. 납품단가연동제,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 강화, 이익공유제 등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방지하고, 중소기업한테 정당한 몫을 보장해주기 위한 법·제도 마련과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21일 통계청의 광업·제조업 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대·중소기업 생산지수 격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확대된 상태다. <한겨레>가 2005년을 기준점(100)으로 삼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생산지수를 계산해 격차를 비교한 결과, 2008년 10.44포인트였던 대·중소기업 격차는 2013년엔 28.52포인트로 커졌다. 5년 새 18.08포인트나 더 벌어진 것이다. 출하지수도 같은 방식으로 따져본 결과, 대·중소기업 격차는 최근 5년 새 7.42포인트에서 19.83포인트로 두배 이상 불어났다.
수익성 지표도 여전히 1%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인다. 2012년도까지 집계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2012년 대·중소기업(제조업)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격차는 1.12%포인트이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중소기업 이익률이 (대기업보다) 낮을 논리적 근거는 없다”며 “1%포인트 이상 격차는 독일 등 유럽 국가에 견줘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익배분 협약’ 등 성과 나누는 공존 시스템 도입해야
단가협상 범위 확장해
완성품으로 얻은 이익 공유해야
‘재료값 변동분 단가에 반영’
납품단가연동제 도입하고
중기 적합업종, 대기업 진출 막아야
주요 경영지표로 뚜렷이 확인되는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격차는 동반성장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근거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경제양극화 해소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8월 보고서를 내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는 수급사업자(납품업체)에 납품 단가 조정 신청권과 협의권이, 원사업자(납품받는 대기업)엔 여기에 응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약한 수급사업자의 협상력을 고려해 원재료값 변동이 일정 규모 이상 커질 때는 자동으로 재료값 변동분을 단가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원자재값이 급등하던 2008년께 도입 논의가 됐으나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재계 반발에 발이 묶여 있다. 그 대신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을 대신해서 대기업을 상대로 단가조정 협상을 제기할 수 있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가 운영되고 있다.
홍장표 교수는 납품계약 협상의 범위를 이익 배분으로까지 확장하는 성과공유제 도입을 제안한다. 대기업이 납품받은 제품으로 완성품을 만들어 영업을 한 뒤, 최종적으로 발생한 성과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공유하는 수익배분 협약을 납품계약 당시 맺자는 취지다. 2011년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와 비슷한 구상이다. 홍 교수는 “이익공유제 형태의 성과 배분은 국외에서도 실행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국내에선 재계는 물론 정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비행기 엔진 회사인 롤스로이스 등에서 이익공유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외에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 진입을 제한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된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 제도 역시 개선 대상으로 거론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앞선 보고서에서 “적합업종에 진출한 대기업에 공공입찰 참여 자격을 주지 않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일부에선 대기업의 적합업종 진입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현재는 적합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더라도 이를 막을 법적 강제성이 취약하다.
이외에도 대·중소기업 거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감시 환경 개선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인 탓에 대·중소기업 간 거래 실태를 충분히 분석하기 어렵다”며 “정보 투명성만 높아져도 대·중소기업 간 질서도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현실은 여전하지만,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 의지는 약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기업에 유리한 규제 완화를 강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 예로 공정거래위원회는 노대래 위원장이 직접 나서 짬짜미(담합) 업체에 대한 공공입찰을 제한하는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재벌 감시의 고삐를 풀고 있다. 새로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계소득 증대를 강조하면서도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방안을 내지 않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대·중소기업 간 공정한 생태계 조성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정권의 유불리나 치적과 상관없이 꾸준히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스웨덴, 동일노동 동일임금 ‘연대임금제’
일본, 하청-원청기업 초임 차이 매우 적어
임금격차 해소 외국사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는 가계소득 증대의 중요한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임금을 개별기업의 규모와 수익성, 임금지급능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일한 산업·업종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온 나라들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에서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논의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웨덴 연대임금 사례를 연구한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를 겪은 수출부문과 내수부문 간 시간당 임금 격차가 1920년 5.6%에서 1922년에 27.4%로 벌어졌다”며 “노동조합총연맹(LO·엘오) 내부에서 임금 수준이 낮은 노동자를 지원하는 임금정책을 추진하자는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엘오의 경제학자 렌과 마이드너는 정부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긴축재정정책을 시행하며, 노사는 개별기업 혹은 개별산업의 수익성에 관계없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지향하는 연대임금제를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1952년부터 엘오와 스웨덴경영자협회(SAF)가 중앙단체교섭을 맺기 시작하면서 현실화했다. 노사는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을 높이고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억제했다.
중앙에서 결정된 임금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대신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발생할 경우 평균임금의 70~80%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재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주선했다. 1990년대 이후 중앙 차원의 교섭에 갈등이 생기면서 산업별 교섭으로 전환된 상태지만 여전히 연대임금 정책의 취지는 남아 있다.
신정완 교수는 “국내에선 기업별로 단체교섭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선 동일기업 내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균등화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을 억제하고, 저임금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개선하는 방식 등으로 연대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기업별 교섭 관행을 이어온 일본에서는 이른바 ‘춘투 시세’의 형성을 통한 임금 수준 조율을 시도해왔다. 기업별 교섭을 벌이면서도 다른 기업 노조들과 요구 수준과 교섭 및 타결 시기를 맞춰나가는 식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대기업에서 결정된 임금인상 수준이 다른 기업들의 교섭에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철강과 조선, 전기 등 주요 제조부문 대기업에서 임금인상액이 같아졌고, 동일한 업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요구액과 타결액이 근접해가는 경향도 보였다”며 “(일본이 장기불황으로 넘어가는 국면인) 1990년대 중반까지 기업별 교섭의 긴밀한 조율은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본에서는 기업 간 초임이 비슷한데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차이도 매우 작다”며 “현대자동차의 사용자는 경영실적과 시장상황, 투자계획 등을 고려해 임금인상 수준을 제시하지만, 이때 동일 지역 내 다른 기업의 임금 수준이나 자동차업계 전반의 임금 수준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비지니스 정보 > 비지니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잉 공급에 빠진 대한민국] (2) 산업계 실태 어느 정도인가 (0) | 2014.07.24 |
---|---|
이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임금노동자 87%가 중소기업에 대기업 독식 끊어야 가계 ‘숨통’ (0) | 2014.07.22 |
‘원화값 상승’ 악재로만 봐야 하나? (0) | 2014.07.11 |
[단독] 4대그룹 경제력 집중 가속화 고용·생산유발 효과는 적어 (0) | 2014.07.11 |
[나쁜 일자리 만드는 재벌 계열사] 10대그룹 211개사 고용 분석 (0) | 2014.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