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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부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성공을 도와주기 2016. 4. 20. 09:30

 

 4.13, 부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정희준의 어퍼컷] 부산의 선거 혁명

 

지난 1월 21일 조경태 의원이 돌연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하기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내부에서 회자되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17(여당) 대 1(야당)이었다. 다 떨어지고 조경태 하나만 당선되는 상황 말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전패가 낫겠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부산에 다선 의원들이 즐비한 새누리당은 조경태 의원 정도는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해 입당시켰겠지만 이제 한 번 직접 당해보라!)

그런데 조경태가 탈당해 버리니 18 대 0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래서 부산에 더민주 간판으로 나서는 후보들은 당연히 문재인 의원의 출마를 원했다. 그러나 문 의원은 불출마하고 전국 선거를 지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버렸다. 부산 야권에서는 전패의 공포가 스멀스멀 엄습해왔다. 

없어도 있는 척 하는 게 정치다. 더민주 부산시당은 20대 총선 목표를 6석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전패 가능성이 뻔한데 6석은 너무 많아보였다. 새누리당은 공공연하게 부산 석권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6석은 무모해보였다. 그래서 '3분의 1만 주십시오'로 바꿨다. 6석 보다는 '3분의 1'이 왠지 덜 무모해보였다. 

그렇지만 그게 그거였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후보는 전재수 단 한 명이었다. 그나마도 선거 직전 무슨 일이 터져 금방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선거 직전 부산 야권의 상황은 '주육야빵'이었다. 낮에는 6석을 외치고는 밤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전패를 염려하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선거를 챙기고 밤에 뒤풀이 자리에서는 이번에 세 번째, 네 번째 도전하는 후보들을 두고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을 했다. 

주어진 기회, 만들어낸 기적 

이번 총선은 여론조사 기관과 정치평론가를 바보로 만든 선거다. 새누리의 과반 실패, 더민주의 영남 선전 및 호남 참패와 제1당 등극, 그리고 국민의당의 대약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런데 수도권이나 호남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산의 경우는 기적이었다. 

흔히 부산 야권의 '빅 4'로 김영춘 시당위원장을 비롯해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를 꼽았는데 당선 가능성은 그 역순이었다. 전재수를 제외하면 10% 이상 뒤지는 여론조사가 수두룩했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이 모두 당선됐을 뿐 아니라, 혜성과 같이 나타난 30대의 김해영이 장관 출신으로 친박의 전략 공천 수혜자인 김희정마저 꺾어버렸다.

기적 같았다. 원래 부산은 민주 개혁 세력의 불모지였다. 12년 전 기회가 있긴 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5개 지역구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을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앞서 나가며 기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 막판 터진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열흘 만에 몽땅 뒤집혔다. 전패였다. 

이후 부산은 더욱 보수화됐다. 2006년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 구의원 후보는 실종된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는데 당선됐다. 사망한 상태라서 유세장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당선된 것이다. '부산은 새누리당이라면 죽은 사람마저 당선시키는 곳'이라는 전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 시의회도 새누리당이 지역구 42석 전석을 홀로 독식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 민주 개혁 세력의 노력과 열정은 눈물겨웠다.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후보가 부산에서 고작 13.5%를 얻는데 그쳤지만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지방 선거, 총선, 대선에서 이들은 부산에서의 정당 득표율을 평균 41.4%까지 끌어올렸다. 새누리당의 일당 독재에 대한 피로감도 상당해 지난 지방 선거에서는 무소속이었지만 오거돈 후보가 49.3%의 놀라운 득표 끝에 석패하기도 했다. 이제 부산에서는 인물과 구도만 받쳐준다면 해볼 만한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이들 빅 4는 그러나 4~8%포인트 정도 뒤지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지난 4년간 이들의 노력은 이를 뒤집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부산의 경쟁력 있는 야권 후보는 기본 35%에서 출발해 개인의 능력으로 추가로 10%를 올렸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여기에 5% 이상을 더 얹어야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시당한 민심+야당의 준비 

5% 부족했던 더민주에게 집권 여당은 큰 선물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당직자는 부산 승리의 첫째 요인으로 새누리의 오만과 박근혜의 경제 실패를 꼽았다. 청와대의 독선적 국정 운영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으로 비춰지며 민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새누리당은 부산 시민의 현역 교체 요구가 높았음에도 부산의 현역 의원들을 단 한명도 바꾸지 않고 또다시 공천했다. 부산 시민은 2중으로 무시당한 것이다. 

중앙과 대구에서 친박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는 와중에 조원진은 신공항 유치를 염원하는 부산 시민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보따리'를 줄 거라는 오만한 발언을 했다. 곧 부산에서는 'PK 시다바리론'이 등장했다. 부산시당은 즉각 새누리당 부산시당과 김무성 대표에게 신공항 관련해서 입장이 뭐냐는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고 이는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집권 여당의 오만에 부산의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야당은 돌아선 민심을 잡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해왔다. 그러니까 이 둘이 맞아 떨어졌기에 획기적인 결과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5명 모두 정말 열심히 지역을 돌봤다. 바닥을 기었다.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는 모두 부산에서 네 번째 도전이었다.

첫 도전인 김해영은 지역위원장을 맡은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역 내 경로당을 최소 두 번씩 돌았다. 하도 많이 가서 이제 그만 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김영춘 당선자는 쪼그라드는 부산의 경제 현실에 불만이 터질 듯한 상황이었는데 박근혜의 오만불손과 국민을 무시하는 공천 파동이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이 폭발하는 촉매가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그런데 이때 야당에 찍어줄 만한 후보가 있었기에 더민주의 득표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연제구의 경우 주민들이 새누리당 김희정 후보를 찍기는 싫었는데 마침 김해영 같은 참신한 후보가 있었기에 표심이 때맞춰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야당 후보들의 오랜 노력과 준비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준비된 후보+준비된 시당 

선거 전 전패를 우려한 이도 있었지만 희망적 예측은 세 석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야당도 놀라는 다섯 석이 가능했을까. 이를 김영춘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처음부터 '모 아니면 도'라고 봤다. 지게 되면 다 지는 거고 이기면 대여섯 석 나오는 거고. 부글부글 끓는 민심이 분명히 있는데 이게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전패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런데 임계점을 돌파한 거다. 사실 이번에 선거 구도가 일찍 짜였으면 더 많이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아쉽게 진 배재정, 이정환 후보의 경우가 많이 아깝다. 유영민 후보도 일주일만 더 일찍 시작했다면 결과가 달리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듯 민심이 폭발하면서 아무도 예상 못한 5석의 기적을 가져왔지만 부산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부산시당의 준비였다. 부산시당은 선거 딱 1년 전인 작년 4월 13일 중앙당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시-도당 역사상 처음으로 자체 연구소인 오륙도연구소를 발족시켰다. 

오륙도연구소는 이후 부산의 교육, 교통, 경제, 원도심 개발 등 공약을 생산하기 시작해 선거 5개월 전에 이미 부산시 맞춤 공약 100개를 선정해 총선에 대비했다. 물론 자신만의 공약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후보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해당되는 공약을 골라서 쓰면 되는 것이었다. 

선거에 돌입하면서 선대위 체제로 전환한 후엔 부산시당 차원에서 선거 구도를 짜고 프레임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는 보통 중앙당에서나 하던 것이었다. 잘 하지도 못 했지만. 오륙도연구소장과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유정동 변호사는 "후보들 각개 전투도 지원해야 하지만 시당 차원에서 공중전도 같이 벌여야 한다"면서 유세에 바쁜 후보들이 할 수 없는 당 대 당 전투에 나섰다. 가덕신공항 하나 가지고는 부족했고 또 식상했다. 그래서 새로운 이슈를 발굴했다. 

부산 새누리당 의원들의 부동산 재산 대부분이 서울 하고도 강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무늬만 부산 사람' 카드 뉴스를 제작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원 및 구청장 등 공직 재임 기간 재산이 8억에서 33억 원까지 급증한 사실을 밝혀내 공략했다. 선거 2~3일 남겨두고는 일부 후보들이 운동원 사기 떨어뜨린다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전멸만은 막아 달라"는 대 시민 캠페인에 나섰다. 물론 결과론이긴 하지만 더민주 부산시당 한 당직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집권 여당에 실망한 여당 지지층을 어차피 야당은 안 될 것 같도록 안심하게 해 투표를 포기하게 만들고 반면 지지자들은 결집하게 하면서 또 '헬조선'을 피부로 느낀 젊은 층은 투표장에 나가도록 독려하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결국 부산시당이 총선 1년 전부터 선거 막판까지 선거의 흐름을 주도한 것이다. 그 당직자는 "보통 선거 때가 되면 시-도당은 중앙당과의 연락을 주로 담당하는 정도다. 정책을 준비하고 선거 구도나 프레임 싸움에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산시당보다 더 준비한 시-도당은 내가 알기로는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야권 승리, 4년 후에도 이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부산에서 야당의 승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재선 국회의원이던 김영춘이 5년 전 고향 부산으로 돌아올 때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가 내세웠던 이유는 부산에서의 선거 혁명이 우리나라 정치 구도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저 오만한 대구-경북(TK) 중심의 새누리당이 개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영남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고 그래서 영남, 특히 부산-경남이 바뀔 때 새누리당은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오만한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이었고 특히 김영춘, 김부겸, 유승민 등의 승리는 새누리당의 변혁을 이끌어 낼 동력으로 현실화 됐다. 이제 새누리당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당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야당은 4년 후 지금과 같은 좋은 선거 구도를 다시 갖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우선 영남의 의원들이 좋은 정치를 하고 세력을 확장하면 4년 후 더 나은 결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인재 수혈이 용이해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영남에 야권 성향의 인재를 찾기 어려웠다. 전문직 종사자나 교수들은 모두 여당을 기웃거려 그쪽은 득시글거렸지만 야당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0년 넘게 야당에 정책 조언을 해온 부산의 한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는 시당 외에도 무려 세 명의 후보 캠프에 정책을 자문하기도 했다. 앞으로 수적으로 대등하지는 못하더라도 야권이 더 보강된 인재풀을 확보하게 되면 미래 후보든 정책 자문이든 여권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더민주, 이번 승리는 하늘이 준 두 번째 선물 

무엇보다 이번 선거 영남에서 야당의 승리는 김대중과 노무현 때에도 이루지 못했던 전국 정당화의 기틀을 기어코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호남은 더민주를 심판하고, 국민은 새누리를 심판했다. 둘 다 개혁하지 않고는 존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실력이다. 

이번에 하늘은 더민주에게 큰 선물을 줬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총선 승리는 열린우리당이 감당할 수 없는 승리였다. 그때 열린우리당은 무능과 싸움질로 기회를 날려버렸는데 이번에 더민주는 다시 새로운 선물을 받았다. 호남을 빼고 영남을 얹어준 승리인 것이다. 더민주는 이를 잘 살릴 것인가, 걷어찰 것인가. 

그런데 선거 끝난 게 언제라고 또 싸우기 시작하는가. 더민주, 두고 볼 일이다.